▲ 뇌막 림프관의 위치와 연령에 따른 구조 변화 과정 모식도. 출처=기초과학연구원

[이코노믹리뷰=황진중 기자] 한국 연구진이 치매를 유발하는 뇌 속 노폐물 배출 경로를 찾았다. 세브란스병원 연구진이 심방세동 치료로 뇌기능이 향상되는 점을 확인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연구진이 암 진단을 받은 환자 중 절반은 흡연을 지속해 집중적 금연 치료가 필요하다고 지적해 주목된다.

29일 연구업계에 따르면 고규영 기초과학연구원(IBS) 혈관연구단 단장 연구진은 치매 등 퇴행성 뇌질환을 유발하는 뇌 속의 노폐물이 뇌 밖으로 배출되는 주요경로(Hotspot)을 규명했다.

연구진은 동물실험에서 뇌의 노폐물을 담은 뇌척수액을 밖으로 배출하는 주요 통로가 뇌 하부에 위치한 뇌막 림프관이라는 사실과 나이가 들수록 뇌막 림프관의 기능이 떨어지는 점을 확인했다. 뇌척수액은 뇌의 수액이라고도 불린다. 이는 뇌를 보호하고, 뇌에서 발생하는 노폐물을 배출시켜 중추신경계의 기능과 항상성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IBS 관계자는 “이번 연구는 뇌 하부 뇌막 림프관의 정확한 위치와 기능, 노화에 따른 변화를 규명한 것이다”면서 “향후 치매를 포함한 퇴행성 뇌질환 연구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뇌에서는 대사활동의 부산물로 상당한 양의 노폐물이 생성되어 뇌척수액을 통해 중추신경계 밖으로 배출된다. 베타-아밀로이드 및 타우 단백질과 같은 노폐물이 배출되지 않고 뇌에 축적되면 기억력 등 뇌 인지 기능이 저하되고, 치매 발병 확률이 높아진다.

뇌막 림프관은 딱딱한 머리뼈 속에서 다른 혈관들과 복잡하게 얽혀있어 정확한 관측이 어려워 아직까지 뇌척수액의 정확한 주요 배출 경로가 밝혀지지 않았었다.

연구진은 생쥐의 머리뼈를 얇게 박피하여 관찰력을 높이고, 뇌척수액에 형광물질을 주입하는 실험과 자기공명영상(MRI)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진은 실험에서 뇌 상부와 하부 뇌막 림프관의 구조가 서로 다르며, 뇌 하부 뇌막 림프관이 뇌에 쌓인 노폐물 등을 밖으로 배출하는 주요 배수구 역할을 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 노화에 따른 뇌 하부 뇌막 림프관의 기능 저하. 출처=기초과학연구원

연구진은 또 노화 생쥐 모델의 뇌막 림프관의 구조와 기능을 규명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진은 실험에서 노화에 따라 뇌 하부 뇌막 림프관이 비정상적으로 붓고, 뇌척수액 배출기능이 저하되는 것을 밝혔다.

이번 연구는 뇌의 기능을 떨어뜨리고 질병을 유발하는 노폐물이 어떻게 뇌 밖으로 빠져나가는 지를 확인한 것이다. 이는 노화에 따른 구조와 기능 저하를 규명해 뇌의 인지기능 저하 및 치매 등 퇴행성 뇌질환 치료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고규영 IBS 혈관연구단 단장은 “앞으로 뇌 하부 뇌막 림프관의 배수기능을 향상시키는 치료제를 개발하면 새로운 퇴행성 뇌질환 치료방법의 실마리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 심방세동 치료로 뇌 기능 향상

심장질환 치료로 뇌졸중은 물론 노령사회의 가장 큰 위협인 치매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박희남·김태훈·진무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와 김어수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한국 심방세동 환자 중 ‘전극도자절제술’과 ‘약물치료’를 각각 받은 두 환자 군의 인지기능 추이를 조사했다.

부정맥의 일종인 심방세동은 심방의 움직임이 불규칙하거나 가늘게 떨리는 증상이다. 심방세동으로 인한 불규칙한 심장박동은 많은 혈전을 심장에서 만든다. 그 혈전이 뇌혈관을 막아 허혈성 뇌졸중(뇌경색)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허혈성 뇌졸중에 인한 지속적인 뇌혈관 기능 약화는 뇌기능 악화로 이어져 ‘혈관성 치매’를 야기한다. 전체 치매환자 중 약 25%는 혈관성 치매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인구고령화에 따른 심뇌혈관질환 발병 증가로 혈관성 치매도 꾸준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연구결과 심장 내 심방세동을 일으키는 부위를 찾아 고주파 전류로 절제하는 전극도자절제술을 받은 환자 군에서 기억력과 인지력 등 인지기능이 향상됨이 확인됐다.

이번 연구는 심방세동이 뇌졸중의 발병위험을 5배나 높이며 치매를 유발할 수 있다는 외국 연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심방세동 환자의 치매 예방과 치료프로세스 개발’을 위해 시작됐다.

▲ 전극도자절제술 시행 환자군이 약물치료 시행 환자군보다 높은 인지기능을 나타냈다. 출처=세브란스병원

연구진은 심방세동으로 진단받고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전극도자절제술을 받은 환자 308명과 약물치료 환자 50명을 선정했다. 이후 치료 전, 치료 후 3개월, 치료 후 1년 등 총 3번에 거쳐 국제적으로 널리 쓰이는 경도인지장애 선별용 ‘몬트리올 인지기능 검사’(MoCA)를 실시했다.

연구결과 전극도자절제술 시행 환자 군은 3번의 검사에서 각각 25.4점, 26.6점, 26.5점을 나타냈다. 약물치료 시행 환자군은 각각 25.4점, 25.2점, 24.8점을 나타냈다.

▲ 전극도자절제술 환자군이 표준약물치료군보다 인지기능 점수가 의미 있게 높아졌다. 출처=세브란스병원

이는 전극도자절제술을 받은 환자 군이 약물치료 군보다 지속적인 인지기능 향상과 유지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난 것으로 풀이된다. 몬트리올 인지기능 검사는 시공간 인지력, 어휘력, 단기 기억력, 주의력 등을 평가하며 총 30점 만점이다. 정상 기준은 23점 이상이며, 22점 이하부터 경도 인지장애로 분류하고 있다.

단기 기억력과 어휘력 분야에서도 전극도자절제술 환자들의 인지기능 점수가 의미 있게 높아졌다.

김태훈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전극도자절제술을 받은 환자 군이 약물치료 군보다 정상적인 심장박동 리듬을 더 되찾으면서 혈전 생성을 효과적으로 억제, 원활한 뇌 혈류 흐름으로 뇌기능 활성화에 도움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치료에 따라 나타날 수 있는 ‘인지기능장애’의 비율에서도 전극도자절제술을 받은 환자 군은 1년 후 악화 비율이 5.3%에 그쳤으나, 약물치료 군은 10%로 두 배의 차이를 보였다.

박희남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인지기능 장애를 보였던 심방세동 환자에게서 전극도자절제술 후 뚜렷한 인지기능 향상을 확인했다”면서 “향후 조기 치매 및 인지기능 저하 환자 중 심방세동이 주요 원인질환으로 판단될 경우 전극도자절제술을 우선 시행하는 표준 치료법이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미국심장협회(AHA)가 발간하는 ‘순환:부정맥 및 전기생리학지’(Circulation:Arrhythmia and Electrophysiology) 7월호에 ‘편집자 선정’(Editor’s pick) 주요 연구 논문으로 발표됐다.

▲ 이기헌 분당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왼쪽)과 길병원 건강증진센터 구혜연 교수. 출처=분당서울대병원

■ 암 진단 후에도 흡연 지속…집중 금연 치료 필요

암을 진단 받은 한국 남성 흡연자의 절반 이상이 진단 후에도 흡연을 지속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돼 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금연 치료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암 진단 후에도 흡연을 지속하는 습관은 암의 재발, 이차암의 발생 및 사망률을 높여 암 생존자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이미 암에 걸렸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금연에 성공하면 암 치료 효과를 높일 뿐 아니라 생존 기간도 늘릴 수 있으므로 오히려 암 진단 시점을 기회로 삼아 집중적 금연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이기헌 분당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교수와 구혜연 가천대 길병원 건강증진센터 교수는 암 생존자의 건강과 삶의 질에 있어 중요한 영향을 갖는 흡연 습관을 조사했다. 연구진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빅데이터를 활용해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처음 암 진단을 받은 40세 이상 남성 1만 5141명을 대상으로 암 진단 전후 흡연 상태 변화를 분석했다.

분석결과 암 진단 전 흡연을 했던 남성 중 51.6%가 암 진단 후에도 여전히 흡연을 지속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령대와 소득 수준이 낮고, 암 진단 전 흡연량이 높으며, 흡연과 연관성이 낮은 암을 진단받은 환자일수록 암 진단 후에도 흡연을 지속할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구혜연 가천대 길병원 건강증진센터 교수는 “암 진단 이후에도 흡연을 지속할 확률이 특히 높은 고위험 그룹을 중심으로 집중적인 금연 치료와 추적관찰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기헌 분당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암 진단을 받고도 무려 절반 이상이 흡연을 지속하는데 이는 금연이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면서 “암 진단 후 담배를 끊는 것은 암환자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으므로 흡연하는 신규 암환자에 대한 금연치료는 우리 사회에서 의학‧보건학적 우선순위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대한암학회(Korean Cancer Association)에서 발간하는 국제 학술지 ‘대한암학회지(Cancer Research and Treatment)’ 최신호에 발표됐다.

▲ 간 오가노이드 제작 및 활용 모식도. 출처=한국생명공학연구원

■ 신약개발용 고기능 ‘간 장기 유사체’ 개발

송명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줄기세포융합연구센터 박사팀이 인간 전분화능 줄기세포를 이용해 증식이 가능한 3차원 형태 ‘인간 간 모사모델’ 개발에 성공했다. 이는 신약개발 단계에서 필수적인 간독성, 유효성 평가용 인사모체 간 모델이다. 간 모델은 동물실험과 임상시험의 간극을 메우는데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인간 전분화능 줄기세포는 인체의 거의 모든 신체세포로 분화 가능한 줄기세포다. 배아줄기세포와 역분화 줄기세포, 유도만능 줄기세포가 전분화능 줄기세포에 해당한다. 이는 특정 세포로만 분화가 가능한 성체 줄기세포와 구별된다.

신약개발 단계에서 활용하기 위해 간 조직을 얻는 것은 쉽지 않다. 간 세포는 또 체외에서 전혀 증식하지 않는 한계를 가지고 있어 전 세계적으로 이를 극복하기 위한 기술개발이 진행됐다.

▲ 간 오가노이드 제작 모식도 및 대표사진. 출처=한국생명공학연구원

줄기세포를 이용한 간 세포모델 개발의 대표적 두 선두그룹은 네덜란드와 일본이다. 네덜란드 연구진이 개발한 간 유사체는 외과적 수술을 통해 간 조직을 확보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 이는 또 성체줄기세포 기반이므로 특정 세포만 얻을 수 있는 단점이 있다.

일본 그룹은 본 연구팀과 같은 인간 전분화능 줄기세포를 활용해 혈관과 면역세포 등 조직의 다양한 세포를 제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제작된 간 모델은 오가노이드 형태가 아닌 세포 덩어리 형태이며 증식하지 않고 기능적으로 실제 간 세포와 유사하지 않은 한계가 있었다.

송명진 박사팀은 두 기술의 장점을 접목해 환자맞춤형의 인간 전분화능 줄기세포를 이용하면서 3차원 오가노이드 형태의 간세포 모델로 분화시키는 기술을 완성했다. 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의 자가조직화(Self-organization) 능력을 이용해 인체 조직과 유사하게 3D 형태로 제작한 장기유사체다.

이번 연구성과는 기존 전분화능 줄기세포 기반 오가노이드 모델이 가지는 한계인 증식하지 않고 기능적으로 미성숙한 점을 극복한 성과다. 송명진 박사팀은 체외에서 장기간 증식이 가능하고 동결·해동이 가능하며 기능적으로 성숙한 간 모델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박사팀이 이번에 개발한 오가노이드는 성숙화 될수록 인체와 유사한 약물반응을 분석할 수 있어 보다 정확한 간독성 평가가 가능함을 확인했다. 또 지방간(fatty liver) 모델을 제작하고 치료제 발굴을 수행해 정상 및 간 질환 플랫폼 활용이 가능함을 입증했다.

연구책임자인 손명진 박사는 “동물실험에서 간독성이 없었으나 임상에서 독성을 나타내 심각한 사례에서는 환자가 사망하고, 막대한 비용을 들여 개발한 약물이 퇴출되는 사례가 발생한다. 결국 신약개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간 장기유사체를 얼마나 인간과 유사한 정도로 성숙화하고, 대량으로 제공 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면서 “개발한 모델과 같이 인체 유사도가 높은 간 모델을 비임상에 활용해 향후 신약개발 효율성 향상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간 연구분야 국제 학술지인 '저널오브헤파톨로지(Journal of Hepatology, IF 18.946)' 온라인 판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