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지웅 기자] 국내 바이오벤처 업계에 돈이 몰리고 있다. 제품을 출시하고 매출이 발생하기까지 약 10년의 시간이 걸리고 신약 성공 가능성도 낮다는 점에서 초기 투자 유치에 애를 먹어왔던 바이오벤처 업계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다양한 성공사례를 만들어내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조성되고 있다.

특히 2016년부터 바이오벤처 창업이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해당 업계에 자연스럽게 인재가 몰리고, 돈이 흘러들어오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 3년간 1000여 개가 넘는 신규 바이오벤처 기업들이 창업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바이오협회에서 발표한 '2019년 바이오투자 동향 및 전망'에 관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바이오 분야에 대한 벤처투자는 8417억원으로 전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이는 단순히 벤처투자액을 조사한 수치로, 개인과 자산운용사, 증권회사 등에서 투자한 내역까지 포함하면 무려 2조원이 넘는 자금이 바이오기업으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 업종별 신규투자 비중. 출처 한국벤처캐피탈협회

올해 바이오 투자 1조원 돌파?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벤처투자 규모는 3조4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약 44% 증가했다. 이중 바이오벤처 투자는 24.6%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바이오벤처 투자 비중이 단 2%에 머물렀던 2000년도 상황과 비교하면 참으로 놀라운 변화다. 바이오벤처 투자는 지난 2013년 처음으로 전체 벤처투자액의 10%를 돌파했다. 이듬해인 2014년에는 바이오벤처 투자가 약 3000억원에 이르면서 분야별 벤처투자액 1위로 올라섰다. 이후 매년 꾸준히 투자액이 늘어나면서 올해 처음으로 1조원대 돌파를 넘보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만 바이오벤처 투자액이 5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투자액 8417억원의 60%를 반년 만에 달성했다.

바이오협회에 따르면 바이오벤처 창업이 두드러진 2016년부터 초기투자 비중이 30% 이상 늘어났다. 다양한 기술이전 사례가 발표되면서 투자금 회수 기간이 과거와 달리 크게 줄어들었다는 반응이다. 또 사업 초기 단계부터 100억원 이상 투자 유치에 성공한 신생 기업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빅파마나 국내외 유관 기관에서 경험을 쌓은 인재들이 창업 전선에 뛰어들면서 기대감을 높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게다가 NRDO(개발 중심 바이오벤처) 등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새로운 사업모델이나 바이오에 특화된 액셀러레이터들이 등장하면서 바이오 생태계가 점차 고도화되고 있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관계자는 "주로 성장기에 접어든 기업이나 산업에 주목하는 벤처캐피탈이나 금융회사들은 그동안 전형적인 고위험 고수익 분야인 바이오 업계에 보수적인 태도를 취해왔다"면서 "최근 바이오 생태계가 빠르게 성장하고 다양한 성공 사례를 내놓으면서 이 같은 태도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대표가 연구원과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임형택 기자

NRDO 대표주자 '브릿지바이오'

NRDO와 같이 전문적 개발역량과 네트워크를 갖춘 바이오벤처의 증가도 금융투자 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NRDO의 대표주자로 거론되는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이하 브릿지바이오)는 최근 1조원 규모의 초대형 계약을 성사시키며 NRDO에 대한 기대감을 크게 끌어올렸다. NRDO는 '연구를 하지 않고 개발만 담당한다'(No Research, Development Only)는 의미로 이미 연구된 후보물질을 사들여 비임상·임상을 통해 가치를 높인 후 글로벌 제약사에 수출하는 사업모델이다.

사업 초기부터 NRDO를 앞세운 브릿지바이오는 지난 18일 다국적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과 총 11억4500만유로(약 1조5183억원) 규모의 특발성 폐섬유증 신약후보물질 'BBT-877'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2007년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로부터 기술이전 받은 신약후보물질로 2년 만에 대박을 터뜨렸다. 브릿지바이오가 베링거인겔하임에 기술을 수출했지만, 원천기술을 개발한 레고켐바이오도 마일스톤의 절반 정도를 획득한다. 국내 바이오 업계 특성상 자체 비용으로 임상에 진입하기 어려운 스타트업에게 NRDO는 또 다른 생존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 브릿지바이오는 코스닥시장 입성을 추진 중이다. 이미 지난해와 올해 기술특례로 두 차례나 상장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NRDO 기업은 국내에서 생소한 모델로 거래소나 평가기관이 제시한 잣대를 충족시키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번 기술수출을 통해 실질적 성과가 나왔기 때문에 브릿지바이오의 코스닥 상장에 청신호가 켜졌다. 브릿지바이오가 코스닥 상장에 성공하면 NRDO 기업 중 최초가 된다.

이정규 브릿지바이오 대표는 지난 6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다수의 해외 제약사와 바이오텍 등을 방문해 다양한 신약후보물질을 두루 파악하고, 각 기업과 유사한 신약을 개발하는 경쟁업체를 분석하면서 어떤 후보물질이 성공할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있었다”고 노하우를 밝힌 바 있다.

▲ 2018년 주요 기술수출 사례. 출처=한양증권 리서치센터

유한양행 등 전략적 투자 본격화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한 중견 제약사들의 전략적 투자도 본격화되고 있다. 성장 가능성 높은 바이오벤처에 공격적으로 투자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혁신 신약을 내놓겠다는 전략이다.

대표적으로 유한양행과 한미약품을 꼽을 수 있다. 먼저 유한양행은 최근 8년간 다수의 국내외 바이오벤처 회사에 5천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투자 성과도 적지 않다. 유한양행은 지난해 11월 얀센과 비소세포폐암 신약후보 물질인 '레이저티닙'을 총 12억5500만달러(1조4000억원)에 기술수출 및 공동개발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레이저티닙은 이 회사가 국내 바이오기업인 오스코텍의 미국 자회사인 제노스코에서 10억원의 계약금을 내고 도입한 신약후보 물질이다. 향후 제품 출시까지 이어진다면 투자 대비 수천 배의 이익을 얻게 된다. 이 회사는 올해도 1조원 규모의 대형 딜을 성사시켰다. 지난 1일 유한양행은 베링거인겔하임에 비알코올성 지방간염치료제 후보물질 'YH25724'을 기술수출했다. 지난 1년 사이 총 4건의 기술수출을 이뤄내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기술수출의 선구자로 불리는 한미약품은 지난 2015년 다수의 글로벌 제약사들과 굵직한 기술이전 계약을 추진하며 우리나라 바이오산업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물론 9건의 기술수출 계약 가운데 5건이 해지되면서 한미약품에 대한 평가가 예전만 못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기술수출했던 물질의 개발권이 반환됐다고 해서 신약후보 물질의 가치가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다. 물질을 좀 더 보완해 다른 기업에 새롭게 판매할 수도 있다. 게다가 한미약품은 여전히 가장 많은 신약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고 있는 제약사다. 언제든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비장의 카드를 쥐고 있는 셈이다.

바이오협회 관계자는 "그동안 우리나라 금융권은 주된 수익모델인 기술이전에 대해서 불신이 깊었고, 국내 기업과의 기술거래는 규모가 너무 작아 개발에 투입된 비용을 회수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했다"고 지적하면서 "그러나 최근 5년 전부터 유한양행의 전략적 투자성과가 가시화되고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한 전략적 시너지 창출이 인정받으면서 투자와 협업을 병행하는 양상이 본격화되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