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라이언스의 20달러짜리 스마트 피처폰 지오폰은 출시 2년 도 안돼 6000만대 이상 판매되었다.    출처= Livmint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앞으로 10억 명이 쓸 가장 인기 있는 휴대폰은 스마트폰의 선두주자인 삼성전자나 애플이 만든 전화기가 아니다. 게다가 스마트폰도 아니다.

서아프리카에서부터 인도, 인도네시아에 걸쳐 처음 수 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인터넷에 접속하는 경험을 맛보게 해 주는 장치는 스마트폰이 아니라 겨우 25달러 밖에 들지 않는 새로운 종류의 기기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보도했다.

이 기기는 마치 약 20년 전에 크게 히트를 쳤던 노키아의 저렴한 전화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하이브리드 폰은 낮은 요금으로 모바일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으며, 전화와 문자 메시지 외에도 몇 가지 기본적인 앱과 인터넷 접속을 제공한다.

‘스마트 피처폰’이라고 알려진 이 전화기는 휴대전화 업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면서도 가장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계 최빈곤층의 상당수가 인터넷 경제로 진입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을 제공하고 있다.

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Counterpoint)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판매가 감소세로 돌아섰지만, 스마트 피처폰의 판매량은 2017년 처음 출시한 이후 지난해 7500만대, 올해 8400만 대가 판매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 다른 조사기관인 위아소셜(We Are Social)에 따르면, 부자 나라들이 5G 기술을 선보이기 시작한다고 외치고 있지만 아직 전세계에서 34억 명의 사람들은 인터넷과 단절되어 있다. 그들 대부분은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는 구식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들은 값비싼 스마트폰은 사지 못하더라도 고속 웹 연결이 가능한 유사한 모양의 기기로는 쉽게 전환할 수 있다.

뉴델리의 보도에서 망고, 아보카도, 라이치 같은 과일 행상을 하며 한 달 수입이 고작 80달러 밖에 되지 않는 35세의 카므레시 쿠마르는 2년 전에 웹 접속이 되지 않는 싸구려 전화기를 교체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기본 기능만 있는 가장 싼 것도 100달러를 호가하는 스마트폰을 살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가 인도 이동 통신사 리라이언스 지오 인포컴(Reliance Jio Infocomm Ltd.)이 출시한 지오폰(JioPhone)이라는 스마트 피처폰을 20달러 주고 구입했다.

이제 그는 구글의 내장 도우미를 사용해 유튜브에서 힌두어 노래를 검색하고, 일하면서 발리우드(Bolleywood, 인도 영화산업) 음악을 듣는다. 밤이 되면 가족들이 그의 전화기 주위로 몰려들어 함께 영화를 본다. 쿠마르가 매달 내는 데이터 요금은 월 2.5달러도 채 되지 않는다.

"옛날 구식 휴대전화기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요."

스마트 피처폰은 가격이 저렴하고, 터치 스크린 타입이 아니라 실제 키패드가 있어 기술에 낮선 사람들에게는 더 익숙하다. 배터리도 한 번 충전하면 며칠 동안 지속되기 때문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물론 저가 제품인 만큼 속도가 느리고 구성 부품도 스마트폰처럼 강력하지 않다. 기본 기능의 카메라와 화면도 몇 인치 크기에 불과하다. 물론 그래서 배터리가 장시간 지속되는 것이지만. 또 사용할 수 있는 앱도 많지 않다.

그러나 구글의 ‘차세대 10억 사용자 개발팀’의 케사르 센굽타 부사장은 "신뢰할 수 있는 저렴한 기술에 대한 수요는 전 세계적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며 "스마트 피처폰이 차세대 10억 명의 사용자에게 보다 고급화되고 저렴한 기술로 진입할 수 있는 관문을 제공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 리라이언스 인더스트리(Reliance Industries)는 지난 2017년 9월 인도 시장에 초저가 피처폰 지오폰(JioPhone)을 출시했다.    출처= NDTV Gadgets

스마트 피처폰은 인도 최고 부자 무케시 암바니가 대주주인 통신 회사 리라이언스 지오가 보급을 확대하면서 대중화되었다. 이 회사의 경영진들은 2016년 처음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수 백만 명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구입할 여유가 없어서 가입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리라이언스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는 피처폰 운영체제(OS)를 만든 회사인 홍콩의 카이OS 테크놀로지(KaiOS Technologies Inc.)와 협력해 지오폰을 개발했다. 이 OS는 적은 메모리와 물리적 키패드가 있는 기기(결국 스마트 피처폰에 딱 적합한)를 위해 설계된 소프트웨어다.

리라이언스 지오는 인도레서만 지금까지 6천만 대 이상의 지오폰을 판매했다(사실 지오폰을 판매할 수 있는 곳은 인도뿐이다).

스마트 피처폰이 향후 10억 명의 사용자들을 연결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 페이스북, 왓츠앱(WhatsApp), 구글, 트위터 같은 글로벌 기술 회사들은 자기들의 SNS가 피처폰에서도 사용될 수 있도록 앱을 수정했다. 구글은 지난해 카이OS에 2200만 달러(260억원)를 투자하기도 했다.

카운터포인트는 향후 3년 동안 약 3억 7천만 대의 스마트 피처폰이 판매될 것이며 이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 회사들에게 280억 달러(33조원)의 기회라고 말했다.

지난해에만 15억대가 팔린 스마트폰 시장에 비해서는 작지만, 스마트폰의 전세계적 평균 가격은300달러가 넘어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는 접근하기 어려운 높은 벽이다.

프랑스 이동통신사인 오렌지 SA(Orange SA)도, 최근 서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 말리, 부르키나 파소, 카메룬 등에 저렴한 모바일 데이터 요금제가 결합된 저가 스마트 피처폰을 출시했으며, 조만간 아프리카 다른 지역과 중동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그 수가 많진 않지만 인도네시아에서도 몇 주 후면 스마트 피처폰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전화기 제조사인 위즈폰(WizPhone)이 7달러짜리 스마트 피처폰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폰의 판매를 몇 주 후에 시작할 것이다. 카이OS도 브라질의 스마트폰 제조업체들과 협력해 자체 모델을 만들어 현지에서 출시할 계획이다.

스마트 피처폰을 사용할 차세대 10억명의 사용자는 대부분 인구가 많은 개발도상국에 있지만, 일부 회사들은 부자 나라에서도 이 기기의 틈새 시장을 보고 있다.

노키아 전화기를 판매하는 핀란드의 HMD 글로벌 오이(HMD Global Oy)는 과거에 인기 있었던 캔디바 모양의 전화기에 웹 접속 기능을 추가한 전화기를 선보였다. 그들의 목표는 원조 모델을 좋아하는 복고제품 애호가로, 가격은 100달러가 채 안된다.

스웨덴의 도로 AB(Doro AB)도 지난해 미국과 유럽에서 카이OS가 탑재된 노인 전용 휴대폰 2종을 출시했다. 노인 전용이라 버튼이 큼지막한 이 플립폰의 가격은 50달러에서 150달러 사이다.

카이OS의 세바스티엔 코드빌 최고경영자(CEO)는 "스마트폰은 복잡해서 노인들은 지레 겁을 먹고 사용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