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한일 경제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며 일본이 내달 2일 각의를 통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안을 공식화할 가능성도 높아지는 가운데, SK그룹의 SK머티리얼즈가 불화수소 중 에칭가스 국산화 가능성에 시동을 걸었다는 말이 26일 나오고 있다. 

일본의 제재로 최태원 회장의 승부수로 잘 알려진 SK하이닉스가 큰 어려움에 직면한 가운데, 역시 최태원 회장 특유의 승부수로 여겨지는 SK머티리얼즈가 SK하이닉스의 구원투수로 나서는 격이다.

▲ SK머티리얼즈가 눈길을 끈다. 출처=갈무리

일본은 4일부터 한국을 대상으로 3대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 규제에 돌입하는 한편 추후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할 방침을 공개하며 압박에 나서고 있다. 글로벌 시장을 호령하는 한국의 반도체 인프라를 타격하겠다는 의지다. 

지금은 일본의 제재가 크게 위력을 발휘하고 있지 않으나, 제재 범위를 넓힐 경우 당장 삼성전자 및 SK하이닉스의 피해는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석희 SK하이닉스 CEO가 21일 오후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떠난 이유다. 그는 일본 현지 협력사들을 만나 반도체 원자재 수급 관련 논의를 했으며,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거나 추가 제재에 돌입할 경우를 대비해 플랜B를 모색했다는 설명이다.

이에 앞서 SK하이닉스 대외협력총괄 김동섭 사장은 일본의 원자재 협력사 방문을 위해 16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해 18일 귀국한 바 있으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7월 초 일본에 출장을 간 바 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업계에서는 한일 경제전쟁의 흐름이 소재 분야에 집중되는 지점에 착안해 “우리도 소재 국산화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당장 일본과의 문제를 유연하게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번 기회에 소재 국산화를 통한 ‘탈’일본 전략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다. 

정부는 제품 연구개발(R&D) 등에 필요한 화학물질의 인허가 기간을 줄이는 한편 신규 화학물질의 빠른 출시를 지원하고 해당 분야의 특별연장근로를 인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세액공재까지 불사하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이런 상황에서 26일 SK머티리얼즈가 불화수소 중 에칭가스 국산화에 시동을 걸었다는 소식이 눈길을 끈다. 업계에서는 “아직 상용화 수준에 미치지는 못한다”면서도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는 샘플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일본의 소재 분야 공격이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SK가 SK머티리얼즈를 중심으로 일종의 반격을 시도하는 셈이다.

SK머티리얼즈는 1982년 설립된 기업이며 2005년 OCI가 인수했다. 2015년 SK가 인수해 SK머티리얼즈가 됐다. 당시 김준섭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인수는 SK그룹이 집중 발굴·투자하는 신성장 포트폴리오 중 비어있던 반도체 소재 사업을 채워 넣는 포석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다"며 "OCI머티리얼즈는 SK의 손자회사인 SK하이닉스에도 NF3을 납품하고 있어 SK하이닉스와의 시너지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인수"라고 평가한 바 있다.

업계에서는 SK가 SK머티리얼즈를 중심으로 소재 국산화에 돌입하는 장면에 고무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LG디스플레이에 이어 또 한 번 소재 국산화의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물론 당장 상용화는 어려운데다 일각에서는 일본과의 추후 협상을 위한 ‘여론몰이용 카드’라는 분석도 나오지만, 일본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소재를 수급받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은 그 자체로 의미있다는 평가다.

촤태원 SK그룹 회장의 노림수가 적중했다는 말이 나온다. 일본의 소재 부문 공격이 이어지는 가운데 SK하이닉스의 어려움이 시작됐으나, SK 머티리얼즈라는 플랜B가 부드럽게 작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태원 회장을 중심으로 하는 SK가 일본의 제재를 예상하고 SK머티리얼즈를 인수했을 가능성은 없다”면서 “SK는 최근 각 사업 영역에서 수직적인 밸류체인을 구축하는데 집중했으며, 이러한 전략이 일본의 제재와 같은 예상하지 못한 충격을 버티도록 만드는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 회장은 모두의 반대를 물리치고 SK하이닉스를 인수했고, 이를 통해 반도체 시장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면서 “일본의 제재로 SK하이닉스의 행보에 제동이 걸리고 있으나, 이번에는 밸류체인 극대화를 위해 선택한 SK머티리얼즈가 소재 국산화 시동을 걸며 SK하이닉스를 도울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SK의 SK머티리얼즈가 소재 국산화 로드맵에 시동을 걸면서 최 회장과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설전을 연상하기도 한다. 박 장관은 지난 18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44회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일본의 경제제재를 언급하는 한편 국내에서 불화수소를 자체 수급하지 못하는 책임을 대기업에 돌렸다.

최 회장은 불화수소를 국내에서도 만들 수 있다면서도 “품질의 문제가 있어 디테일하지 못하다”고 말했으나 박 장관은 재차 SNS를 통해 “첫술에 배부를 수 있을까?”라면서 “만약 20년전부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연구개발 투자를 하면서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고 했다면 지금의 상황은 어떠했을까?”라고 반문했다. 이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에게 기회를 주고 용기를 주고 북돋아주는 것”이라면서 “작은 것을 연결하는 강한 힘, 중소벤처기업부가 되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설전 후 SK머티리얼즈가 소재 국산화 시동을 건 장면은, 그 자체로 의미심장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