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애플이 인텔의 스마트폰 모뎀 사업부를 10억달러에 인수한다고 더버지 등 주요 외신이 26일 보도했다. 애플과 퀄컴이 특허분쟁을 마무리한 상황에서 업계에서는 "예상했던 일"이라는 반응이 나오지만 그 후폭풍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 애플이 인텔 스마트폼 모뎀칩 사업부를 인수한다. 출처=갈무리

애플의 결단과 5G 전략
더버지에 따르면 애플은 이번 인수합병을 통해 2200명에 이르는 인텔의 스마트폰 모벰 사업부 인력을 모두 흡수하는 한편 지적재산권 및 장비들도 쓸어담을 예정이다. 최근 대형 인수합병에 미온적이던 애플의 전격적인 승부수다. 

애플의 5G 전략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나아가 '탈'퀄컴 행보도 빨라질 예정이다.

애플은 아이폰을 제조하며 퀄컴의 장비를 사용한 바 있다. 전세계 200여개가 넘는 협력 업체에서 부품을 공급받고 있는데, 특히 모뎀 칩은 지난 2011년 이래 퀄컴과 독점 계약을 맺고 공급받았다.

애플과 퀄컴의 동행은 2017년부터 불안한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통신 네트워크 시장에서 퀄컴이 시장 지배자적 위치를 활용, 제조사들에게 일종의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 배후에는 애플이 있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은 인텔의 손을 잡기 시작했다. 애플 아이폰 오리지널부터 아이폰4까지 모뎀칩을 제공했던 인피니온을 인수한 인텔이 아이폰7부터 애플과 가까워졌고, 퀄컴과 애플의 관계는 틀어지기 시작했다.

애플과 퀄컴의 전면전이 벌어졌다. 애플은 자기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퀄컴의 제조사 파트너들을 규합해 일종의 여론몰이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국내 공정거래위원회가 퀄컴에 시장 독과점을 두고 과징금을 부과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후 모뎀칩 수급에 있어 퀄컴과 인연을 끊은 애플은 인텔과의 공동전선을 구축하며 강대강 대치를 이어갔다.

퀄컴도 물러서지 않았다. 특허 라이선스 비즈니스의 특성을 강조하며 적극적인 공세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소프트웨어 특허계약 위반 논란도 불거졌다. 퀄컴은 2017년 7월 애플을 상대로 소프트웨어 특허계약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는 한편 기밀자료를 빼갔다고 주장했다.

두 회사는 이후 몇 차례 세계를 무대로 한 공방전을 벌이며 올해 3월 진검승부에 돌입했다. 라이선스 특허 공방의 전초전이 법원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전초전의 승자는 퀄컴으로 결론났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3월 15일 미국 샌디에이고 연방지방법원 배심원단은 2주간의 심리를 마친 후 “애플이 퀄컴의 특허 3건을 침해한 사실이 인정된다”면서 “3100만달러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관건은 스마트폰을 켜면 인터넷에 바로 연결되는 기술, 그래픽 처리 및 배터리 수명 보장 기술, 앱과 데이터의 호환 등이다. 퀄컴은 애플이 자사 특허권을 침해해 해당 기술들을 활용한 아이폰을 판매했으며, 2017년 중반부터 2018년 가을까지 판매된 아이폰 한 대당 1.41달러의 배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리고 퀄컴의 주장은 대부분 받아들여졌다.

애플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인텔의 5G 모뎀칩 XMW 8160이 빨라야 2020년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던 가운데, 삼성전자 및 LG전자를 비롯해 중국의 화웨이 등은 빠르게 5G 스마트폰을 출시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급해진 애플이 삼성전자에 5G 모뎀칩 조달을 조심스레 타진했으나 퇴짜를 맞았다는 말도 나왔다. 실제로 폰아레나는 올해 초 애플이 삼성전자에 5G 모뎀칩 공급을 요청했으나 물량 부족을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보도했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10 5G 등 자체 물량에 5G 모뎀을 탑재해야 하기 때문에 애플에 추가 물량을 공급할 수 없는 상태기 때문이다.

화웨이가 먼저 애플에 5G 모뎀칩을 제공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도 나왔다.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주는 4월 15일 미국 CNBC 인터뷰에서 애플에 자사의 5G 모뎀칩을 판매할 수 있다고 언급하며 "우리는 애플에 열려있다"면서 다소 적극적인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 사실 화웨이 카드는 당시 벌어지던 미중 무역전쟁의 흐름을 봤을 때 애플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제안이 아니었다는 말이 나온다.

과도한 라이선스 비즈니스를 추구한다며 퀄컴을 버리고 인텔과 손을 잡았으나 5G 모뎀칩 정국에서 힘을 쓰지 못하던 상황에서, 마땅한 수급처도 찾지 못하던 애플은 결국 4월 17일 백기를 들었다. 

더버지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애플과 퀄컴은 두 회사의 특허 분쟁과 관련해 모든 소송을 중단하고 전격적인 합의를 이뤘다. 애플이 퀄컴에 대해 일회성으로 특허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는 한편 2년 연장 옵션의 6년 단위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텔은 5G 모뎀칩 개발을 포기했다. 이후 애플이 인텔의 5G 스마트폰 모뎀 사업부를 인수하기로 결정한 것이 지금까지 벌어진 일이다.

▲ 퀄컴과 인텔의 로고가 보인다. 사진=최진홍 기자

장기적 관점의 탈퀄컴 전략
애플이 퀄컴과 특허분쟁을 마무리하고 인텔이 5G 모뎀칩 개발에서 손을 뗀 순간 업계에서는 "애플이 인텔의 사업부를 인수할 것"이라는 말이 나온 바 있다. 애플은 퀄컴과의 협력을 통해 5G 아이폰을 2020년 출시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으나, 크게 보면 자체 생태계를 강화하는 것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애플은 이번 인수합병 계약을 마무리하면 자체 생산하고 있는 A10처럼 모뎀칩도 직접 설계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당장 2020년 아이폰 5G에는 퀄컴의 모뎀칩을 사용하겠지만 이후로는 조심스럽게 자체 모뎀칩을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이번 인수합병을 두고 일종의 탈퀄컴 로드맵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애플은 2월 조직개편을 통해 자체 5G 모뎀칩 제작을 타진했으나 별 소득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 인수합병을 통해 자체 기술역량을 키우면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