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연구에 따르면, 지난 2년 동안 러셀 3000지수에 해당하는 회사들 중 회사를 떠난다고 발표된 CEO의 52%가 실제로는 회사가 해고했을 가능성이 있다.    출처= Insight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기업들이 최고경영자(CEO)가 떠난다고 발표할 때, 그들은 대개 여러 가지 모호한 이유를 제시한다. 적어도 CEO가 ‘해고되었다’라거나 그 외 정확한 이유를 설명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런데 한 연구에 따르면, 지난 2년 동안 러셀 3000지수에 해당하는 회사들 중 회사를 떠난다고 발표된 CEO의 52%가 실제로는 회사가 해고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CNN이 최근 보도했다. 그렇게 회사를 떠나는 CEO들은 대개 ‘사임했다’고 말하거나 ‘후진을위해 물러났다’고 말하거나 ‘떠나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고 말하거나 ‘갑자기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CEO들의 퇴진을 추적하는 서비스인 이그제체인지(Exechange)의 창업자인 다니엘 쇼버는 "적어도 두 명 중 한 명은 사임 압력을 받고 물러난 셈"이라고 말했다.

이그제체인지는 떠나는 CEO들에게 0-10까지의 ‘압력 점수’를 부여한다. 0점은 CEO가 아무런 압력없이 거의 전적으로 자발적으로 사임하는 것을 의미하고, 10점은 공개적으로 강제 사임시킨 것을 나타낸다. 이 점수가 5가 넘으면 그 CEO는 자발적으로 사임했다기 보다는 압력에 의해 쫓겨났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점수를 부여하는 데에는 CEO가 (임기를 채우지못하고) 얼마나 빨리 떠났는지, CEO의 나이와 근속 기간, 회사의 주가, 그리고 공식 발표에서 떠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사용한 문구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한다.

예를 들어 50대 초반의 CEO가 별다른 설명없이 짧은 임기를 마치고 떠나고, 회사 주가가 시들 해지며 후임자 구상이 불투명하고 떠난 CEO에 대한 이사회의 언급이 모호할 때 높은 점수를 부여한다.

회사 주가와 떠나는 CEO의 연령만 고려한, 컨퍼런스보드(The Conference Board)의 또 다른 연구에서는 2001년부터 2017년 사이에 회사를 떠난 CEO의 24%는 저조한 실적 때문에 해고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하고 있다.

▲ 기업들이 최고경영자(CEO)가 떠난다고 발표할 때, 그들은 대개 여러 가지 모호한 이유를 제시하며 정확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출처= VectorStoc

그러나 컨퍼런스보드의 마테오 토넬로 전무에 따르면 이사회는 “실적 이외에 여러 가지 이유로 CEO를 해고한다”며 실제로 해고된 CEO의 비율은 이보다 훨씬 더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CEO 게놈프로젝트(CEO Genome Project)의 연구원들은 해임된 CEO 73명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를 토대로, 이사회가 CEO를 해고하는 이유로 경영실적 부진(30%), 이사회와의 관계(26%), 핵심 역량부족(22%), 경영진으로부터의 왕따(12%) 등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물론, 범죄와 윤리적 부정행위에 대한 연루와 관련된 해고도 있다.

CEO의 해고, 왜 그렇게 비밀스러울까?

이사회는 회사와 이사회의 평판을 보호하고 (공개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소송이나 비난을 피하기 위해 공개 성명에서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CEO와 이사회에 대해 조언해주는 컨설팅회사 보즈웰 그룹(Boswell Group)의 케리 설코위츠 박사는 "이사회가 CEO를 해고할 때에는 그들 자신의 실패도 살펴봐야 합니다. 그 CEO를 고용한 것도 자신들이기 때문에 CEO의 실패는 자신들과 무관한 일이 아니니까요.”

이사회는 또 떠나는 CEO의 명예가 훼손되는 것을 피하고 싶어한다. 대개 CEO와 이사회 간에는 서로 비방을 금지하자는 신사협정(non-disparagement agreement)이 있다. 서로 비방하며 진흙탕 싸움을 하면 후임자로 좋은 후보들을 물색하는 것조차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쫓겨나는 CEO 입장에서도, 부당하게 해고된다고 느낄 때에도 걸리는 게 너무 많다 보니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하지 않는다.

토론토의 노동전문 법률회사 레빗(Lrvitt LPP)의 하워드 레빗 파트너는 "임원급 인사들은 자신의 브랜드에 손상을 입는 것을 매우 우려한다”고 말한다.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메시지가 나와야 또 다른 곳의 자리를 찾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나쁜 이야기보다는 침묵을 지키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다행히 해고가 끝은 아냐

다행히 해고된 CEO들은, 자신이 심각한 범죄나 윤리적 위법행위에 연루된 것만 아니라면, 자신이 제대로 처신할 경우 해고되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경력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CEO 게놈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이웃집 CEO>(The CEO Next Door)의 저자이자 리더십 자문회사 ghSMART의 파트너인 엘레나 리트키나 보텔로는 "좀 더 빨리 새자리를 찾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새로 써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새 자리에 정착한 사람들은 지난 일을 냉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것이 그때(해고되었을 때) 일어났던 일이다. 내가 기대했던 것만큼 일이 잘 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 상황에서 이러저러한 일을 했다’라고 말이지요.”

또 해고된 CEO가 빠르게 새 자리로 복귀할 수 있다는 것은 그가 경력 전반에 걸쳐 신뢰할 만한 성공적 운영 패턴을 달성했으며 그것을 뒷받침할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해고된 후 자신이 잘 아는 산업에 다시 취업해 더 잘 나가는 CEO들도 많다.

보텔로 파트너는 "기업의 이사회에서는 해당 산업의 경험이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보텔로 파트너는 비난의 화살을 회피하기 위해 ‘그저 이사회와 원만한 합의 하에 회사를 떠났다’고 말하는 CEO들도 많이 알고 있다. 그러면 그녀는 그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글쎄, 만약 그것이 상호 원만한 합의였다면 당신이 그대로 머물 수 있는 선택권도 있었단 말입니까?"

보텔로 파트너는 “만약 그들이 여전히 너무 슬퍼하거나 수치심으로 가득 차 있다면, 새 직책을 맡을 기회가 와도 잘 하지 못할 것”이라면서 한 가지 사례를 설명했다.

회사의 부채가 너무 많다며 해고된 CEO가 있었다. 그는 회사를 성장시키기 위해 부채를 끌어들였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재임 중에 부채 시장이 악화되었다. 그리고 사실 그의 강점은 회사를 회생시키는 데 있지 않았다. 어느 날 그에게 완벽히 들어맞는 새로운 CEO 자리가 났고 그는 새 회사와 면접을 보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의 기분과 어조가 너무 패배주의적이어서 이사회에 그의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