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바야흐로 사과의 계절입니다. 풍요로운 가을이 되어 기름진 과수원에서 거둬올린 먹는 사과가 아닌, 말 그대로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사과(謝過). 세월이 하수상하니 고개를 숙일 일도 많아집니다. 여기서 의미심장한 부분은, 같은 사과라고 해도 대중의 반응은 천차만별이라는 겁니다. 어떤 이는 사과를 하면 갈채를 받고, 어떤 이는 사과를 해도 뭇매를 맞습니다. 이 판이한 결과의 비결을 찾을 수 없을까요? 사과의 정석은 없을까요? 몇몇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유형별로 찾아 봤습니다.

 

최근 사례를 보면 임블리 사태가 있습니다. 소위 호박즙 논란을 거치며 임블리는 거듭 고객를 숙이는 사과를 했습니다. 그런데 대중은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가장 먼저 '속도'가 꼽힙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처음 문제가 불거졌을 때 사과나 해명 등의 외부 메시지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이는 전략적으로 볼 때 대중이 무언가 판단을 내리기 전 일종의 '생각뼈대'를 심어주는 장점이 있다고 합니다. 논란이 불거지고 대중이 본격적인 반응을 보이기 전 '사실은 이러저러해서 그랬다'고 말하면 초반 메시지의 방향이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속도가 붙으면 메시지의 최초 발화점을 관리해 여론을 유리하게 끌어간다고 합니다. 기업 홍보팀이 특정 현안에 대해 '최초 기사'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기도 합니다.

사과의 속도는 진정성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논란이 시작됐을 때 외부 메시지가 늦어지면 대중은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 오해일 가능성이 높지만 메시지를 관리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심각한 리스크입니다. 물론 사과의 속도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현안을 파악한 후 시간이 걸려도 신중한 메시지를 내놓는 것이 좋다'는 반론도 있으니, 곰곰히 더 생각을 할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여담이지만 임블리는 사과의 속도에 대해 '대중이 잘못 알고있다'는 입장입니다. 논란 초기 빠르게 개인적인 사과를 했고, 이후 대응도 메뉴얼에 맞춰 진행했다는 설명입니다. 이 주장의 사실여부는 차치해도, 냉정하게 말해 임블리 사태는 복합적이라는 것이 중론입니다. 잘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쿠팡도 이 부분에서 실수했습니다. 24일 오전 11시부터 모든 상품이 품절됐다는 오류가 발생한 가운데, 쿠팡은 오후 1시가 되어야 늦은 사과문을 냈습니다. 사실 늦은 사과문에 대해서는 쿠팡 입장에서 억울한 것이, 2시간의 차이는 비교적 빠른 대응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커머스 플랫폼이 생활밀착형으로 확립되며 365일, 24시간 시스템이라는 점이 대중에 각인됐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맞습니다.

대중은 어떤 플랫폼에 대해 하루가 지나고 나온 사과문은 '빠른 대응'이라고 하고, 쿠팡은 2시간'만' 걸렸는데도 '늦은 대응'이라고 말합니다. 로켓을 강조하며 속도를 강조하는 쿠팡 특유의 마케팅도 이런 위기상황은 독입니다. 즉, 플랫폼이나 서비스의 정체성에 따라 사과의 속도는 대중에게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진다는 것.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비바리퍼블리카의 토스와 카카오뱅크 사례도 볼 필요가 있습니다. 토스는 23일 한시적으로 서버가 다운됐고, 카카오뱅크도 22일 5% 정기예금 이벤트를 열었다가 10분간 서비스가 막히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두 기업 모두 당일이나 다음날 바로 사과문을 게재했습니다. 전문 마케팅 및 홍보팀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내부 조직력이 탄탄하다는 증거입니다. 대중은 대체로 사과를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보상이 들어갑니다. 토스의 경우 1인 1회 전제로 송금을 할 경우 토스머니 1000원을 지급하는 한편 토스카드 10% 캐시백 이벤트를 열었습니다. 사과의 정석 중 하나가 적절한 보상이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며, 토스는 이 방면에서 프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사과의 정석이 속도나 보상으로 정의되는 것은 아무래도 부족합니다. 역시 진정성입니다. 최소한 진정성이 있다고 보여지는 후속조치. 임블리의 아쉬운 대목이며, 이는 무신사의 대응이 대표적입니다.

무신사는 지난 2일 '속건성 책상을 탁쳤더니 억하고 말라서'라는 광고 문구를 게재했다가 뭇매를 맞았습니다. 박종철 열사 고문 치사사건을 희화화했기 때문입니다. 대중은 분노했고, 무신사는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당일 게시물을 삭제하고 다음날 사과문을 게시했으며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에 방문해 정식 사과를 하는 한편 역사 전문가를 초빙해 사내 교육을 했습니다. 무신사는 이 과정을 지속적으로 알리며 사과의 진정성을 보여줬습니다. 속도와 진정성의 콜래보. 토스처럼 보상은 없지만 속도와 진정성의 콜래보가 위력적인 힘을 발휘한다는 사과의 정석에 가깝습니다.

결국 플랫폼 별 체감이 다른 사과의 속도에, 보상과 진정성이 '사과의 정석'에 가깝다는 결론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유니클로 사태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일 경제전쟁이 벌어지며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졌고, 유니클로는 실적 설명회에서 "한국의 불매운동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으로 뭇매를 맞았습니다. 이후 사과를 했으나 진정성 논란에 휘말렸고, 이후 재차 정식으로 사과했으나 대중의 반응을 냉랭합니다.

유니클로의 행보는 '사과로 더 큰 분노를 끌어내는 방식의 정석'에 가깝다는 평가입니다. 속도도 늦었고, 보상도 없고, 몇 차례 반복된 메시지로 진정성도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외부의 요인도 크게 작용했다는 설명입니다. 반일감정이 극에 달한 상태에서 유니클로는 '뭘 해도 답이 없다'는 분위기가 감지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과의 정석이란 없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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