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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 인사이드] 대의명분은 마지막 무기다
   
 

[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오랫동안 기자생활을 하다 사업에 뛰어들어 이제는 번듯한 중견기업의 대표가 된 이를 오랜만에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한일 경제전쟁이 화두가 된다. 

그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일본의 부당한 경제제재를 한참이나 비판하고는, 조심스럽게 속마음을 꺼내기 시작한다. "사실 일본에게도 배울 것이 많다. 조선시대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고"

궁금증이 일어 구체적으로 물었더니 17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일본의 네덜란드 상관이 있던 데지마(出島) 섬 이야기를 한다. 무슨 뜻일까. 당시 일본 막부는 쇄국을 대외정책으로 삼았으나 규슈의 나가사키 앞에 있는 데지마 섬에 이례적으로 네덜란드 상관을 허락해 무역을 했다. 일본 전국시대부터 서양의 문물 중 우수한 것은 적극 받아들이던 특유의 정책적 결단이다. 이는 페리 제독의 개항 협박과 사쓰마번과 조슈번의 삿초동맹을 거쳐 1867년 대정봉환(大政奉還)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에 큰 영향을 줬고, 일본이 제국주의 열강으로 성장하는데 마중물이 됐다. 우리 입장에서는 불행이지만, 일본 입장에서는 승리의 역사다.

흥미로운 말은 다음에 나왔다. 그는 "일본으로 간 네덜란드 사람들은 무역을 했는데, 조선에 온 네덜란드 사람들은 어떻게 됐나"라고 반문하며 "한 마디로 오랑캐 취급만 받고 끝났다. 새로운 문물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소중화'라는 명분에만 집착해 이방인은 철저히 배척했을 뿐"이라고 단언했다. 생각해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다. 1627년 네덜란드의 얀 야너스 벨테브레이라는 인물이 조선에 우연히 들어와 '박연'이 되어 훈련도감에 소속, 무기를 제조하는 등 큰 역할을 했으나 사후 행적이 묘연할정도로 조용히 사라졌고, 1653년 조선에 우연히 들어온 H. 하멜 일행은 아예 일행과 함께 조선을 탈출했다.

두 나라의 운명을 가른 결정적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대화의 끝에 '개방성과 유연함'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이는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는 쪽에 의견을 함께했다.

개방성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말해 우리의 약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죽하면 "인종차별이 제일 심한 나라가 한국"이라는 자조섞인 농담이 나올까. 그러나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시대는 열림을 지향하고 있으며, 연결은 생존의 전제조건이 되고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유연함의 부재다. 소중화라는 명분에 빠져 서구의 문물을 무조건 배척하면서 척화비만 세우던 조선과, 미중 무역전쟁에 이어 한일 경제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진 대한민국은 여전히 유연함의 부재에서 허덕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과의 관계에서 보여준 역대 한국 정부의 행보는 실망스럽다. 과거사 문제를 둘러싸고 일본의 책임은 명확하지만 그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지나치게 명분에만 몰두, 제대로 된 협상의 기회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소한 지금의 동북아시아 역학관계에서 한국 정부는 일관된 메시지를 내놓으며 '합리적인 행보'를 보였어야 하지만, 정권이 바뀔때마다 대일 메시지는 롤러코스터를 거듭했다. 한국 정부는 일본을 배척해야 한다는 명분에 집착하며 이를 국내 정치용으로 알뜰하게 써먹었다.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초반 일본의 기습적인 제재에 우왕좌왕한 것은 불의의 기습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패착으로 넘어갈 수 있다. 이후 일본의 제재에 대응해 다양한 카드를 꺼내는 한편 국제 여론전에 나서는 것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지나친 반일감정을 내세우며 여론을 들끓게 만드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죽창을 들어라"는 말은 한일 경제전쟁의 링에 선 정부를 지지하기 위해 민간이 해야 할 말이다. 민간이 해도 냉정하고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 말이다. "일본은 절대악"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민족주의적 명분에만 휘말리는 것이 이미 몰락한 명나라의 시신을 붙잡고 "우리라도 대명제국의 유지를 받들어야 한다"며 세계의 급변을 외면하고 정신승리만 했던 조선과 무엇이 다른가.

일본에 필요이상으로 끌려다닐 필요는 없다. 그러나 21세기인 지금 '항일' '반역자'라는 명분에 빠진 메시지가 심지어 정부를 통해 나오는 장면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국제정치는 냉정한 힘의 법칙이 통용되는 정글이다. 19세기에는 제국주의의 총칼이 질서였고, 21세기인 지금은 총칼대신 자본이 그 자리를 대신했을 뿐 달라진 것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명분에 갇혀 최소한의 여지를 스스로 닫지 말고 일본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만 생각해야 한다.

대한제국의 고종 황제는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이상설, 이위종, 이준을 특사로 파견하지만 철저하게 실패했으며 결국 이준 열사는 이국만리에서 순국한다. 만국평화회의가 '세계의 평화'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쟁탈전이라는 점을 꿰뚫어보지 못한 어리석음 때문이다. 그저 '부당한 침략을 당한 우리가 옳으니 명분은 우리에게 있다'는 순진무구함이다.

이를 반복할 셈인가. 명분에 갇힌 감정적 대응은 민간에 맡기고, 그 지지를 자산으로 삼아 무한대의 가능성으로 유연하게 활로를 찾아야 한다. 만약 모든 유연한 전략이 무위로 돌아간다면 그때 명분을 선택하고 전력을 다해 싸우라. 대의명분은 마지막 무기다.

최진홍 기자  |  rgdsz@econovill.com  |  승인 2019.07.28  12:4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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