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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철학찾기(24)] '골드 로저'가 사라진 이유
   

한동안 즐겨본 만화 <원피스>는 해적왕이라 불리우던 인물, 골드 로저의 처형식 장면으로 첫 장을 시작한다. 부와 명성, 권력 등 한때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넣었지만, 세계정부의 손에 잡혀 공개처형을 당하게 된 처지.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된 그는 ‘해적왕다운’ 미소를 지으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긴다.

“나의 보물? 원한다면 주도록 하지. 잘 찾아봐. 이 세상 전부를 거기에 두고 왔으니까.”

비록 <원피스>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런 공개처형 장면은 꽤나 익숙할 것이다. 조선시대를 다룬 사극이나 서양의 중세를 소재로 한 영화,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 혹은 주변 인물들이 못된 정부 관료의 손에 붙잡혀 처형을 당할 위기에 처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공개처형은 오랜 기간 흔히 이루어지는 형벌 중 하나였다. 심지어 사람들은 놀이 보듯 처형 과정을 관람했는데, 사형수를 목매달아 죽인 밧줄을 가져오면 집안에 행복을 가져다 준다거나 사형수의 손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게 해준다는 등의 미신이 생기는 경우도 허다했다고 한다. 1788년 영국에서는 사형당한 죄수에게 군중들이 달려들어 그 시신을 부위별로 나눠 가진 사건이 있었을 정도라 하니.

공개처형의 순간이 되면 사람들은 열광했다. 러시아 작가인 표트르 드미트리예비치 보보리킨은 다음과 같이 그 장면을 회고한다. “파리에 반 년만 살면 알 것이다. ‘라 코케트’ 감옥 근처에서 집행된 공개처형이 얼마나 잔혹한지! (중략) 멀리서는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 매혹적인 구경거리를 기다리며 사형장에 있다는 기쁨으로 환호하며, 즐겁게 밤을 지새웠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만 해도 파리 한복판에서 이뤄지던 공개처형은 이제 거의 모든 나라에서 자취를 감췄다. 중국에서는 2007년을 마지막으로 공개처형이 중단되었으며, 현재는 사우디아라비아나 예멘, 이란 등 극히 일부 국가에서만 해당 방식이 사용되고 있는 상태이다. 뿐만 아니라 사형 자체를 중단하자는 목소리도 점차 높아지고 있는 상황.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은 그 답을 ‘인권’ 혹은 인간 ‘이성’의 발전에서 찾는다. 다시 말해, 일반 시민뿐만 아니라 죄수에 대한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식이 생겨나면서, 자연스레 공개처형을 포함한 각종 신체형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이와는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그는 철학, 의학, 범죄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 생산되는 담론이 불변의 ‘진리’를 담은 것이 아닌, 어떠한 조건들로 생겨나 그 시대의 진리로 통용된다고 보았다. 그는 이처럼 한 시대에 널리 퍼진 세계관 또는 인식의 무의식적 체계를 ‘에피스테메’라고 부른다.

형벌제도의 변화에 관한 그의 입장이 담긴 책 <감시와 처벌>을 살펴보자. 이 책에 따르면 형벌의 방식이 바뀐 이유는 다음과 같다. 중세시대 혹은 근대 초기까지 형벌은 주로 범죄자의 신체에게 고통을 가하는 신체형의 방식을 채택해왔다. 이 형벌의 과정은 일반 대중에게 공개됨으로써 권력자의 권위와 권력이 은연 중에 내세워질 수 있었음은 물론이고 말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부작용이 발생했다. 바로 골드 로저처럼 자신의 생각이나 입장, 사회에 대한 불만을 대중에게 표출하는 경우가 생겨난 것이다. 이전까지 아무런 의심 없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은 곧 삶을 마감할 사람의 절규를 계기로 사회에 의구심을 갖게 된다. 폭동 혹은 혁명의 씨앗이 싹트게 된 것이다.

문제점을 발견한 권력은 형벌의 방식을 바꾸게 되었다. 바로 감옥살이로 대표되는 징역형이 생겨난 것이다. 징역형은 신체형과 비교해 (권력의 입장에서) 다양한 장점을 지닌다. 우선 형벌을 내리는 주체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감옥에 갇힌 이들이 간수를 욕하지 자본가나 권력자를 욕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나)이 첫 번째 장점이며, 징역을 살아가는 동안 권력에 이익이 되는 존재(노동자 등)로 교화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 두 번째 장점이다.

푸코는 현재에도 권력의 영향력이 다양한 방면에서 작동하고 있다고 보았다. 특히 권력은 지식과 결탁하며 그 체제를 공고히 한다. 자신들에게 필요한 학문만을 발전시키고, 교육을 통해 은연중에 권력의 가치관을 주입함으로써 시민 모두를 자신의 입맛에 맞는 존재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럼 다시 <원피스>로 돌아가보자. 골드 로저가 마지막 말을 남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뒤, 사람들은 열광하며 바다로 달려 나간다. ‘대해적시대’가 열린 것이다. 나는 요즘 연재 중인 이 만화의 내용이나 그 결말은 알지 못하지만, 주인공 루피의 적인 세계 정부가 어떤 행동을 하고 있을지는 알 것 같다.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지식만을 전달하고, 사람들을 교화해 그들의 입맛에 맞는 노동자로 바꾸어 나가고 있을 것이란 얘기다.

현실 세계의 루피는 누가 혹은 무엇이 될까? 다음 세대의 에피스테메는 누가 만들어가게 될까?  권력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어떤 형태로 작동하고 있는 걸까? 어쩌면 우리는 바꾸어 가야 할 수많은 문제를 보지 못한 채, 짜여진 틀에 맞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만화 속 무기력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시민들 혹은 악랄한 해군과 해적들처럼 말이다.

이준형 토톨로지 대표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19.07.24  14: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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