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권유승 기자] 보장금액·가입연령확대 등으로 장기인보험 출혈경쟁을 벌여왔던 보험사들이 수익성 악화 우려에 보장한도를 줄줄이 내리고 있다. 유사암·어린이·치매보험 등 포화된 보험시장 속 점유율확보를 위한 과도한 보장확대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지적이다.

2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메리츠화재가 이날부터 어린이보험(무해지환급형)의 26세~30세의 유사암 가입금액을 기존 5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축소하기로 했다. 간편건강보험의 2대질환진단비도 50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내렸다.

DB손해보험은 뇌·심혈관, 유사암, 어린이보험 보장금액을 각각 5000만원, 3000만원, 5000만원에서 2000만원, 1000만원, 2000만원으로 축소했다.

동양생명도 내달 1일부터 암보험 최대보장액을 2000만원으로 설정하기로 했다. 기존 3000만원에서 1000만원 하향한 것이다.

보험사들이 보장한도를 잇따라 축소하고 있는 것은 출혈경쟁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은 점유율 확대를 위해 지난 상반기부터 유사암 가입금액을 5000만원 수준으로 대폭 늘려왔다. 유사암은 갑상선암, 기타피부암, 경계성종양, 제자리암 등이 포함되는데, 일반암 대비 발병률이 높고 치료비가 적게 들어 통상 진단비는 일반암의 10~20% 수준인 200만원 내외였다. 어린이보험 역시 유사암 가입금액이 확대됐으며, 가입연령을 30세까지 늘린 일명 ‘어른이 보험’ 출시도 활발했다.

지난해부터는 경증치매보장을 늘린 치매보험도 줄줄이 나왔다. 경증치매에 해당하는 치매임상평가척도(CDR)1은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는 기억장애 상태를 일컫는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전체 치매환자 중 중증치매는 2.1%에 불과하고 대다수는 경증치매를 앓고 있다. 이에 금융당국 및 업계에서는 과당경쟁에 따른 손해율(거둬들인 보험료 대비 지급한 보험금 비율) 악화 우려도 즐비했다.

실제로 출혈경쟁 여파에 보험사들의 실적도 부진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전체 보험사의 올 1분기 당기순이익은 1조9829억원으로 전년 동기(2조1130억원)보다 1301억원(6.2%) 감소했다. 특히 판매경쟁에 따른 사업비 지출이 컸던 손보업계의 경우 당기순익 감소폭이 두드러졌다. 지난 1분기 손보사들의 당기순익은 7189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620억원(18.4%)이나 떨어졌다.

▲ 출처=금융감독원

2분기 실적전망도 부정적이다. 김지영 교보증권 애널리스트에 따르면 삼성화재, 현대해상, DB손해보험, 메리츠화재, 한화손해보험 등 상장 손보사 5곳의 2분기 당기순익은 5021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39.2% 감소할 전망이다. 손해율상승으로 인한 보험영업이익 감소와 신계약 판매증가에 따른 사업비가 늘은 탓이다.

위험손해율 상승 등으로 삼성생명, 한화생명, 오렌지라이프 동양생명, 미래에셋생명 등 상장 생보사 5곳의 2분기 예상당기순익 역시 6019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54.9% 떨어질 전망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당장의 손해율을 개선하기 위한 측면보다는 향후 수익성을 관리하기 위한 차원으로 보험상품의 보장금액을 변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 출처=교보증권 리서치센터

일각에서는 보장금액 축소를 가장한 일명 ‘절판마케팅’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상품보장성을 줄인다고 영업현장에 공표하며 고객들을 끌어들인 뒤 정작 보장한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판매하는 전략이 횡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보장금액을 축소한다고 영업현장에 공표한 뒤 결국 보장금액을 줄이지 않는 절판마케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보장 축소에 대한 소식이 나와도 실제 보장금액이 하향될지는 두고봐야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