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버스터 의약품으로 발돋움한 백신. 출처=픽사베이

[이코노믹리뷰=최지웅 기자] 단순히 예방접종으로만 인식됐던 백신이 어느덧 블록버스터 의약품으로 우뚝 섰다.

화이자의 폐렴구균 백신 '프리베나13'은 2017년 56억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MSD의 자궁경부암 백신 '가다실'은 같은 해 31억 3천만달러를 벌어들였다. 두 제품뿐만 아니라 플루존, 펜타셀, 페디아릭스 등 다수의 백신이 수년 전부터 매출 10억달러를 돌파하며 블록버스터급 의약품으로 발돋움했다.

이에 반해 한국은 아직 블록버스터 백신을 배출하는 건 역부족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부분의 백신이 국내에서 개발되지 않고 전적으로 수입에만 의존해온 탓이다. 그러나 최근 전통의 백신 명가인 GC녹십자뿐만 아니라 SK케미칼과 LG화학 등이 백신 시장에서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며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이들 기업이 일궈낸 성과에 국산 백신의 세계화에 대한 기대도 한층 고조된 분위기다.

토종 백신의 약진  

그동안 수입 의존도가 높았던 한국은 2007년부터 백신 자급률을 50%까지 끌어올리며 분위기 반전을 꾀하고 있다.

특히 백신 명가 GC녹십자는 지난 반세기 동안 축적된 면역학 부문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토종 백신 기업의 자존심을 지켜왔다. 이 회사는 2009년 국내 최초로 독감백신 '지씨플루' 상용화에 성공한 이후 줄곧 국내 백신 시장의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현재 지씨플루는 다국적 제약사의 제품을 따돌리고 국내 독감백신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4월 기준 생산량이 2억도즈를 돌파한 것으로 확인됐다. 1도즈는 성인 1명이 1회 접종할 수 있는 분량으로, 약 2억명의 인구가 GC녹십자의 지씨플루를 접종한 셈이다.

▲ GC녹십자 화순공장 임직원들이 독감백신 누적 생산 2억도즈 돌파를 기념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출처=GC녹십자

후발주자인 SK케미칼은 지난해 7월 백신사업부문을 따로 떼어내 'SK바이오사이언스'를 설립했다. SK케미칼이 선보인 세포배양 독감백신 브랜드 '스카이'가 잘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SK케미칼은 지난해 2월 자사의 핵심 기술인 '세포배양 방식의 백신 생산 기술'을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파스퇴르에 기술수출했다. 해당 계약은 최대 1억5500만달러로 국내 기업의 백신 기술 수출로는 사상 최대 금액이다.

SK케미칼은 이 기술을 활용해 2015년 3가 세포배양 독감백신 '스카이셀플루'를 출시했고, 이듬해 세계에서 최초로 4가 세포배양 독감백신 '스카이셀플루4가'를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두 종류의 독감백신은 출시 이후 4년 만에 국내 누적 판매량이 약 2000만 도즈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LG화학은 전 세계 영·유아 보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6가 혼합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이를 위해 LG화학은 미국의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으로부터 3천340만달러 규모의 자금을 지원받았다.

해당 6가 혼합백신은 영·유아에게서 치사율이 높은 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 B형 간염, 뇌수막염, 소아마비 등 6개 질병을 동시에 예방한다.

LG화학은 현재 6가 혼합백신 임상 2상을 준비하고 있다. 해외 임상시험과 백신 생산설비 확장을 통해 2023년 이후 국제 구호 입찰 기구인 유니세프 등 전 세계에 백신을 공급할 계획이다.

▲ LG화학 신약 연구진의 연구개발 장면. 출처=LG화학

전염병 예방에 가장 효과적

백신은 세상을 바꾼 발명이자 혁신으로 불린다. 만일 백신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천연두와 같은 오래된 전염병에 아직도 시달렸을지도 모른다.

백신은 쉽게 말해 예방접종에 사용되는 의약품을 일컫는다. 백신은 어떤 감염증에 대해 인공적으로 면역을 얻기 위해 감염원과 비슷한 물질 혹은 약화된 물질로 만들어진다. 즉,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 등을 약하게 만들어 체내 주입해 우리 몸의 면역세포가 항체를 형성하고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갖게 되면서 질병을 예방하는 개념이다.

백신 접종은 전염병을 예방하는데 가장 효과적이고 안전한 방법으로 꼽힌다. 대부분 국가에서는 감염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예방접종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 따르면 전염병에 대한 백신 접종은 사망률과 질병 발생을 현저히 감소시킨다. 백신 접종을 통해 매년 250만명의 목숨을 보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백신 접종방법은 경구투여, 근육주사, 피하주사, 피내주사, 정맥주사 등으로 구분된다. 이중 근육주사 백신이 가장 일반적인 투여 형태로 모든 연령대의 환자에게 권장되고 있다. 각각의 백신은 규정된 접종 방법에 따라 투여해야 한다. 접종방법이나 부위가 잘못될 경우 기대했던 예방효과를 얻을 수 없거나 이상 반응이 발생할 수 있다.

▲근육주사 백신이 가장 일반적인 투여 형태. 출처=질병관리본부 KCDC

백신 접종은 개인 건강 및 공중보건 차원에서 일정 수준의 예방접종률을 유지하기 위해 강제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 4월 미국 뉴욕주는 홍역 환자의 급증으로 ‘공공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브루클린 지역의 주민들에게 백신 접종을 명령했다. 6월에는 종교적 이유로 백신 접종 거부를 인정하는 제도를 폐지했다. 미국의 대부분 주는 백신 접종을 요구하는 법을 가지고 있으나, 45개 주가 여전히 종교적인 이유로 접종을 거부할 수 있도록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

현재 백신 시장은 치료용 백신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 치료용 백신은 기존 예방용 백신과 달리 질병 치료를 위해 면역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아울러 개인 맞춤형 백신 개발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측된다. 지난 2017년 11월 미국 바이오텍 모더나 테라퓨틱스는 mRNA를 기반으로 한 맞춤형 항암 백신 'mRNA-4157'의 1상 임상을 시작했다. 환자 본인의 면역체계를 이용해 암과 종양 세포를 공격하도록 하는 맞춤형 항암 백신의 임상개발이 본격화되고 있다.

2028년까지 122조원으로 성장

세계 백신 시장은 빠른 인구 고령화와 감염성 질환의 증가, 블록버스터 백신 출현 등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질병의 전염은 국경을 초월하는 탓에 개발도상국뿐만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도입률이 크게 늘고 있다.

▲전 세계 백신 시장 규모는 2017년 기준으로 335억 7천만달러. 출처=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 따르면 전 세계 백신 시장은 2017년 기준으로 335억 7천만달러(39조 5600억원) 규모를 형성하고 있다. 2028년까지 연평균 11% 성장해 1035억 7천만달러(122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전 세계 백신 시장은 머크앤드컴퍼니,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화이자, 사노피파스퇴르 등 4개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이들 4개 기업의 시장 점유율을 모두 합치면 무려 86.5%에 달한다.

이중 머크는 2017년 기준 점유율 23.6%로 세계 1위 백신 기업으로 군림하고 있다. 그 뒤를 GSK가 22.7%로 바짝 쫓고 있다. 화이자는 20.5%, 사노피는 19.7%의 시장 점유율을 각각 기록하고 있다. 근소한 차이로 이들 4개 기업이 백신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탓에 다른 기업들의 진입이 좀처럼 쉽지 않다.

▲머크앤드컴퍼니,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화이자, 사노피파스퇴르 등 4대 제약사의 백신 시장 점유율만 86.5%에 달한다. 출처=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지역별 시장 규모 역시 이들 빅파마의 주요 활동 거점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백신 시장은 북미(미국, 캐나다)로 33.4%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중 미국은 2017년 기준 88억 3천만 달러 규모로 성장하며, 백신 시장의 최대 수요처로 자리매김했다. 유럽은 점유율 28.5%로 북미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시장이다. 두 지역을 합치면 점유율이 60%를 넘어선다.

엄청난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과 인도는 백신 시장의 기대주다. 최근 눈부신 경제 발전과 건강관리 접근성 증가, 예방 접종 프로그램 확산 등으로 향후 10년 이내 가장 빠른 성장이 기대된다.

한국의 경우 전 세대를 대상으로 국가예방접종사업을 추진하는 등 백신 시장 활성화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국내 백신 시장 규모는 2012년 4087억원에서 2016년 5563억원으로 연평균 8%씩 증가했다. 향후 백신 연구개발을 위한 투자 강화와 예방접종 범위 확대 등을 통해 2021년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