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조직은 ‘침묵의 카르텔’을 조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최근 모 인터넷 매체에 욕먹을 각오로 어느 교사가 쓴 ‘변절한’ 후배 교사의 글을 읽고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용인즉슨 어릴 때부터 교사를 꿈 꿔온 어느 선생의 이야기인데, 교사를 꿈 꾸며 늘 약자의 편에 서서 가난하고 소외된 아이들을 돌보며, 험한 세상 기꺼이 그런 아이들을 위해 살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열심히 했지만 임용고시에 번번이 실패하자 어렵사리 지방의 사립학교에서 기간제 교사가 되었다.

자신의 꿈에 한 발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즐겁고 보람되었기에 아이들을 위해 열정적이고 열심히 가르치는 한편 교사 업무에도 최선을 다했다. 평소 자신의 소신대로 교무회의에서 올곧은 입바른 소리도 서슴지 않았던 결과 얼마 가지 못해 교직생활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재계약에 성공하지를 못했다. 입바른 소리가 인사권자의 심기를 건드린 탓이었다.

운 좋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기간제 교사 자리를 새로 얻었고, 이번에는 입바른 소리 대신 ‘간이고 쓸개를 다 빼내고’ 인고의 시간을 거친 덕에 2년만에 꿈에 그리던 정교사가 되었다. 정교사는 되었지만 그의 간과 쓸개가 없는 처세는 계속됐다. 기간제 교사는 재계약이라는 절벽이 있었고, 정교사에게는 조직의 배신자 낙인이라는 드넓은 강이 있었기에 감히 절벽과 강이 무서워 침묵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그 후배와 술자리에서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 같다는 말로 끝이 났다.

 

영혼까지 팔았기에 결국엔 침묵하고 마는

‘영혼을 팔아서라도 직장을 구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정작 그런 조직에 들어가 보면 이상과 현실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크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악마와의 거래에서 영혼을 팔아 부귀와 명예를 얻는 얘기, 실은 나도 그런 꿈을 숱하게 꿨다. 취준생 때는 ‘영혼을 팔더라도 취직을’ 그리고 작은 기업에 들어갔을 때는 ‘영혼을 팔더라도 크고 더 나은 직장을’ 바랬다. 정작 대기업에 들어갔을 때 조차도 ‘영혼을 팔더라도 제대로 된 조직을’이라는 생각이 간절했고, 지금 역시도 ‘영혼을 팔더라도 부자를’ 꿈꾸고 있다.

‘변절한 그 후배 교사’만큼이나 나도 입바른 소리 잘하는 인간이었다. 그래서 걸핏하면 소위 높으신 양반들과 부딪히기 일쑤였다. 커뮤니케이션의 업무 특성상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섣불리 행동하다가는 오히려 큰 사고만 유발하기에 그런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나의 언성을 낮출 수가 없었다.

심각하고 부담되는 취재 상황에서 느긋하게 대하다가는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기사에 회사는 불 난 집이 되기 일쑤였다. 그래서 그런 비상 상황이다 싶으면 상무, 전무, 부사장, 부회장 가릴 것 없이 문 두드리고 불쑥 불쑥 들어가서 방법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밖에서는 단신이며 기획이며 심층 취재로 소총 대포 미사일을 마구 마구 쏴대고 있는 상황에서 전략회의랍시고 느긋하게 웃음 띤 얼굴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짧은 보도자료 하나 쓰지만 명분과 논리를 제대로 세우기 위해서는 담당 실무진들조차 당황하게 만드는 질문으로 파고 파고 또 팔 수 밖에 없었다.

한 동안은 이런 모습을 높이 사는 상사 밑에서 S등급의 인사고과를 누리는 호사를 누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미인(美人)은 박명(薄命)이라 했던가,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 일 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입바른 소리가 역린을 건드린 탓인지 승진에서도 제외시키고, 난처한 일만 떠넘겼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나대로 소신을 굽히지 않으려 기를 쓰다가 결국은 서서히 침묵에 들어갈 수 밖에 없었고, 다른 길을 찾는 수 밖에 없었다.

입바른 소리 잘 한 사람으로는 급암(汲黯)이 유명하다. 중국 한나라 초기에 승상을 지냈는데, 무소불위 권력의 주인공이던 한무제에게도 직언을 서슴지 않던 간신(諫臣)으로 주작도위(主爵都尉)였던 인물이다. 사실 한고조인 유방을 비롯해서 창업 공신들은 모두가 평민이나 그 이하의 별로 보잘것없는 출신들이었다. 그보다 한참 전에 통일 천하의 주인 노릇을 했던 진시황만 하더라도 출신은 귀족이었다. 당연히 일반 백성들과는 달랐고, 그런 출신 성분을 가진 자들이 권력을 취하는 것은 과거에서부터 늘 있어왔던 일이었다.

하지만 보통의 백성들과 출신 성분이 같으면서도 황제부터 고관대작을 점하고 있어야 했던 자들은 그들의 입지에 걸 맞는 명분이라는 것이 늘 필요했다. 사실 그들의 마음 한 구석에는 출신에 대한 열등감과 피해의식이 늘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무리 직위가 높아도 황제 앞에서 직언을 올릴 수 있던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급암은 당시 거의 유일하게 직언을 올리던 사람으로 사직지신(社稷之臣)으로 불렸다. 사실 급암은 당시 거의 유일한 귀족출신이었다. 때문에 사리분별과 예의를 중요시해서 직언을 올렸고, 가혹한 정치를 일삼던 한무제조차 급암의 직언이 늘 불쾌했지만, 그만은 죽이거나 내치지 않았다. 당연히 조정 내에서 모든 사람들의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지만, 늘 목숨을 담보로 직언을 올리는 충성스런 신하를 어찌하지는 못했다.

직장인들 최고의 술 안주는 상사 뒷담화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지만, ‘을’의 입장에 처한 사람이 남들 듣는 회의실이나 사무실에서는 대놓고 못하는 얘기를 만만한 사람들끼리는 술자리를 빌어 터놓는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까지 시행해 가면서 괜한 피해나 억울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한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의 내면까지 바뀔까는 의문이다.

회의석상에서 궁금한 사항이나 할 얘기가 있으면 권유를 받지만 그런 자리에서는 대부분 서로가 시선을 회피한다. 그러다가도 화장실이나 복도 아니면 흡연 공간 같은 데서 분노를 표출한다. 우리는 아직 공식 자리에서 문제를 제기할 만큼 간이 크지 못하고, 많은 조직들 역시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렇게 제기되는 문제를 담담하게 받아들일 만큼 성숙하지 못하다.

회사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학교 역시 기성세대 조직이 가지고 있는 어줍잖은 조직의 틀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질 못한 듯 하다. 시험 성적이 높은 아이들에게는 인정되는 범위가 크겠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온갖 편견의 시선만이 내리 꽂힐 뿐이다. 얼마 전 친한 지인의 아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반 학기를 지나면서 벌어진 서글픈 에피소드를 술자리 하소연으로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예체능에만 관심을 보여왔기에 학업 성적이 영 신통치 않았다고 한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은 했지만, 입학 직후부터 음악 프로듀싱에 인생을 걸고 싶다며, 스스로가 찾아서 별도로 음악 학원에 다니며 매진을 해왔단다. 여기까지는 대견할 뿐이었다. 그런데 매일 밤 늦게까지 음악 공부를 하느라 피곤해진 나머지 여름이 가까워지면서 수업시간에는 졸기 일쑤였다고 했다.

학기 초에는 담임으로부터 평범한 아이로 그저 그렇게 취급 받았지만, 1학기가 다되어 갈 무렵 툭하면 수업시간에 졸기 일쑤인 그 아이는 지독한 문제아 취급을 받게 되었단다. 급기야 기말고사 기간을 앞둔 며칠 간은 각 과목 선생들이 수업은 않고 자습으로 시험 준비나 하게 했다. 그 애는 선생이 강의도 하지 않고 흥미 없는 과목의 의미 없는 자습은 시간 낭비라 느낀 나머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집에서 음악공부를 혼자 했다고 한다.

그 다음부터는 담임의 시선이 더욱 싸늘해졌고 더 심각한 문제아가 되어 버렸다. 사고를 치거나 문제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위해 거기에 매달려 있는 아이는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보통의 범주를 벗어났다는 이유로 그렇게 취급 당해버린 것이었다. 부모된 심정으로 담임에게 전화로 이런 저런 설명을 하긴 했지만, 하루하루 늘어만 가는 아이의 실망감을 어찌 달래야 할 지를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해 줄 수 있는 얘기는 ‘담임이 그렇게 하는 것이 못 마땅한 생각이 들더라도 대 들거나 버릇없이 대꾸 하지 말고, 차라리 침묵하라’는 것뿐이었다며 연신 술잔을 들이켰다. 그게 지금 우리 나라의 고등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었다.

‘직원들이 회의실보다 복도에서 진실을 얘기한다면, 경영자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조직에 공포가 존재한다면, 공포가 존재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고 경영자는 이런 공포를 유발하는 원인을 찾아내고, 이해하고 근절하는 것이 임무다.’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보고받지 않은 경우 무시당했다고 생각하기 십상인데, 경영자는 이런 착각을 버려야 한다.’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는 것만큼 확실하게 경영자의 시야를 좁히는 실수는 없다.’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회장이자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회장인 에드윈 캣멀이 쓴 ‘창의성을 지휘하라’에서 강조한 말들이다. 하물며 자유분방한 분위기의 픽사 같은 회사에서 이런 말을 할진대, 어느 조직이 이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침묵의 그림자가 조직을 덮쳐오면 구성원의 열정이 차갑게 식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