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 INSIDE > 전문가 칼럼
[구동진 칼럼 : CEO만 보세요] 엄청 열심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비결?
   

임원들 차는 사옥 이미지를 채워주는 액세서리에 불과했다.

옆으로 길쭉한 사옥, 그 정면 마당에 임원들이 열 지어 주차를 했고, 직원들은 사옥 양 옆이나 여기 저기 구석 구석에 세워 두곤 했다. 그도 아니면 회사 인근 아파트 주차장에 도둑 주차를 하기도 했는데, 가끔 직원들이 근무 중에 차를 빼줘야 한다며 급히 다녀올 때도 많았다. 사옥의 주차장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는 거의 100미터가 넘었는데, 검정색 승용차들 수십 대와 회사 CI로 도색 된 영업용 차들이 일렬로 주차된 모습은 나름 장관을 연출했다.

기업 홍보 이미지로 활용하기도 좋아서 늘 찍힌 각도가 정해져 있었다. 사옥 우측에 위치해 있는 다른 회사 3층으로 가서 창 밖으로 찍은 모습이었는데, 실제 보는 것보다 찍혀 나온 이미지가 더 근사했다. 찍힌 이미지에 약간의 뽀샵을 더해서 활용했는데, 문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연출되는 상황이 한결 같다는 데 있었다.

적어도 회사 임원이라면 책상머리에 앉아 있는 시간보다는 스스로 찾아서 외부 이해관계자들과도 수시로 만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회사는 어찌된 일인지 임원씩이나 되는 사람들이 아침에 출근해서 그 자리에 주차를 해 놓으면 밤이 늦도록 차들이 붙박이로 그대로였다.

퇴근 무렵 구내식당에 가서 보면 임원들도 한결같이 야근조 직원들과 저녁을 했다. 급하고 바쁜 일이 있어 구내식당에서 저녁을 먹냐고 물어보면 한결 같은 대답이었다. “별일 없어요.” 그러면, 일이 많아 야근해야 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자신들보다 더 윗선이 아직 퇴근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최고 경영진 사무실에서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회사 앞마당에 일렬로 주차된 차이기에, 차 빼기를 부담스러워 했다. 임원들은 그렇게 저녁을 먹고 최고경영진 차가 언제 빠지나 학수고대하며 하릴없이 책상만 지키기를 매일 같이 반복하고 있었다.

 

이것, 저것 다 싫다! 투정부리는 장단에 귀신같이 적응하는 직원들

몇 해 전 어느 날, 점심을 먹기 위해 구내 식당으로 이동하고 있을 때였다.

“어디야?”

“식사하러 가는 중입니다.”

“해외 출장을 갈려면 손에 뭘 쥐어줘야 하잖아?”

“….. 지금은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긴급히 만들어서 이틀 뒤에 출발하는 부사장 편에 보내 드리겠습니다.”

최고경영진이 인도로 출장을 가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떠나면서 급히 해온 연락이었다. 출장이 있다는 것을 알리지도 않았고, 가져갈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상황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화 난 감정을 쏟아 붇기 위해 전화한 것이었다. 문제의 그 손에 쥐어 줘야 할 것은 회사 소개 브로셔였다. 그런데 브로셔를 만들기 위해 몇 년 동안 수도 없이 노력 했지만, 결과물은 전혀 없었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그 사람의 의사대로 진행해야 했다. 수십 페이지에 이르는 인쇄물의 맨 앞장 표지 사진부터 중간에 들어가는 모든 텍스트 콘텐츠는 말할 것도 없고 맨 뒷장의 로고며 심지어는 주소 표기까지 모든 것을 물어보고 진행해야 했다.

대기업과 중견기업 등 그룹사에서 이십여 년 동안 홈페이지, 브로셔, 지속경영가능보고서와 같은 자료집들을 매년 만들어 왔기에 그런 제작물에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사진 하나 문구 한 구절을 뜻대로 할 수 없으니, 작업 진도가 나갈 턱이 없었다. 거기다 비용은 인쇄만 하기에도 빠듯할 정도였으니, 프로젝트가 늘 시도만 하다가 끝이 났다.

이런 해외 출장이라도 생길 것을 예상하고 미리 만들기 위해, 의견을 물어 보면 본인의 생각은 전혀 얘기도 하지 않을뿐더러, 급한 현안들로 인해 뒤로 밀리기 일쑤였다. 게다가 어렵사리 받아 낸 한 토막의 의견도 일주일만 지나면 얘기가 전혀 달라졌다. 특히나 특수 관계에 있는 최고경영진 두 사람간의 의견도 일치한 적도 거의 없었다.

결국 몇 년에 걸친 수 차례의 시도는 번번이 좌초되었기에, 급한 출장길마다 호통만 쏟아지기 일쑤였다. 그나마 틈틈이 영문번역 작업은 해 둔 것이 있었기에, 급한 대로 이것 저것 화려해 보이는 이미지들을 편집하여 충무로 인쇄소에서 이십여 부만 제작하여 후발대 손에 들려 보냈다. 그렇게 긴급으로 제작한 인쇄물에 대해서는 별로 까탈스럽진 않았다. 그렇게 매번 바쁘고 진땀 나도록 일은 했지만 결과는 아무 것도 없었다.

“차가 뭐 있나? 밟으면 딱 나가고, 딱 서고, 딱 멋지면 되지!”

최근 모 자동차 광고에 등장한 주지훈씨가 이렇게 얘기한다.

‘딱 사진도 멋있게, 글도 딱 멋있게 써서, 딱 멋지게 만들라!’

브로셔 제작에 있어서도 주문은 마찬가지였다.

 

딱 멋진 사진! 딱 멋진 글! 사실 그게 제일 어려워

실은 내가 작업 하고 싶은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말과 달리 실행이라는 것은 쉽지 않았다. 실제로는 불가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 자동차 CF에서는 이렇게 실토한다. ‘사실 그게 제일 어렵습니다’라고.

‘이 사진은 싫다. 저 이미지도 싫다. 기존에 있는 사진들 중에서는 쓸만한 것이 없다.’ 그래서 새로 찍으려면 비용이 드는데, 그렇게 비용 들여서 찍는 게 싫다고 했다. 어렵사리 설득해서 새로 찍어 A컷을 골라 가져가니, 맘에 들지 않는다며 외장 하드를 통째로 가져오면 직접 고르겠다고 했는데, 수천 장의 이미지를 고르다가 지쳐서는 하드를 그대로 되돌려 줬다.

때문에 오래 근무해온 직원들은 뭔가를 새로 만들어 낸다는 것은 애초에 포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시작만 그럴싸하게 덤비다가 몇 차례 보고와 함께 면박을 듣고 나서는 슬그머니 포기하면 됐다. 실은 포기하게 될 거라는 것을 이미 기정사실화 해놓고, 폼만 그럴싸하게 잡았다. 그러다가 경영진이 투정을 부리기 시작하면 직원들은 귀신 같이 그 장단에 맞춰 이러 저러 하다가는 잠잠해졌다. 또 다른 이슈가 이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엄청나게 열심히 아무 것도 하지 않기 위해 최선들을 다하고 있었다.

LG야구 선수단의 변화가 반갑다. 비록 그 팀을 응원하지는 않지만 눈치 보는 문화를 가진 조직에서 눈치 보지 않는 문화로 정착되었다니, 다른 팀을 응원하고 있지만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 그 전까지 LG는 안 되는 팀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안 되는 회사가 보이는 모습과 동일한 그것이다.

조직이 잘 되는 이유는 한 가지지만, 안 되는 이유는 수도 없이 많다. 늦게까지 밀린 업무를 하는 것을 두고 ‘상사에게 잘 보이려 한다’고 하거나, 자기 개발에 노력하는 것을 보고 ‘그렇게 한다고 되겠냐’고 핀잔이나 주는 조직이라면 잘 될 리가 만무하다. 예전의 LG팀이 그랬다고 한다. 선배들이 훈련하는 자리에는 후배들이 피하고, 어쩌다 훈련하는 후배의 모습을 보고는 ‘코칭스태프에게 잘 보이려 쇼한다’는 시선으로 보기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 눈치 볼 생각하지 않고, 스스로 연습량을 늘리면서 매진하고 있으며 선배 후배를 떠나서 스스로의 방법대로 시합에 임하는 분위기가 생활화 되었다고 한다. 서로간에 조언을 해주기에 서스름 없고, 예전보다 더그아웃이 활기차게 바뀌었다고 한다.

이렇게 분위기 바뀌었다고 해서 바로 모든 지표들이 그 전보다 눈에 띄게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사고 방식이 바뀌고 팀 문화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오랫동안 축적이 되다 보면 그 전과는 다른 DNA가 자리잡고 다른 팀이 되는 것이다. 신입 선수들도 위축되지 않고 적극적인 플레이를 펼쳐 보이게 된다. 그만큼 팀이 진화하는 것이다.

사실 어떤 변화라도 늘 해 오던 것을 거스르는 것이기에 그만큼 더 힘들다. 거부하는 사람이 생기고 마찰을 이겨야 한다. 때문에 변화를 시도하다가 단기간에 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원래대로 되돌아가기 십상이다. 그래서 조직 문화가 바뀌지 않는 것이고, 체질과 문화를 바꾸기가 힘든 법이다. ‘실패란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넘어진 자리에 머무는 것이다’는 말이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기 위해 엄청나게 열심히 뭔가를 하는 것이 바로 넘어지기 싫어서 한 치도 나아가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기 싫어하면서 발전하고 성장하기를 기대하는 것이 어불성설이다.

구동진 칼럼니스트·홍보인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19.07.23  14:57:10
구동진 칼럼니스트·홍보인의 다른기사 보기

[태그]

#이코노믹리뷰, #구동진 칼럼니스트·홍보인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SPONSORED
여백
여백
전문가 칼럼
동영상
PREV NEXT
여백
포토뉴스
여백
여백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84 10F, 이코노믹리뷰/이코노빌 (운니동, 가든타워) 대표전화 : 02-6321-3000 팩스 02-6321-3001
기사문의 : 02-6321-3042 광고문의 02-6321-3012 등록번호 : 서울,아03560 등록일자 : 2015년 2월 2일
발행인 겸 편집국장 : 임관호 편집인 : 주태산 청소년보호책임자 : 전진혁
Copyright © 2019 이코노믹리뷰.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 홈페이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