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번, 슈퍼에 가면 한참을 망설이게 된다. ‘살까? 말까? 그냥 살까? 아냐 그래도 왠지 좀 그런데 어쩌지?’ 바로 육류, 달걀 코너를 지날 때마다 보이는 내 모습이다. 최근 들어서는 그래도 나름 기준을 정한 덕분에 양심의 가책(?)이 덜 한 편이지만 이영미 작가의 책 <위대한 식재료>를 본 이후 한동안은 갈등과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 책은 말 그대로 ‘식재료’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위대한’이라는 형용사에 속아 캐비어니 푸아그라니 하는 고급 식재료를 설명하는 책인줄 착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이 책은 그 어느 것보다 평범한 식재료들을 다루고 있다. 작가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제목에는 거창하게 ‘위대한 식재료’라 말했지만, 밥상 위에 오르는 아주 기본적인 품목을 고르고자 노력했다. 소금, 쌀, 달걀, 돼지고기 같은 것 말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가장 기본적인 것이 가장 위대한 것이 아니겠는가."

문제는 책이 단순히 그 식재료들이 왜 위대한지를 다루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그 위대한 식재료를 제대로 위대하게 만드는 과정과 그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목적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자신이 선정한 식재료가 만들어지는 ‘현실’을 낱낱이 밝힌다. 가령, 내가 가장 좋아하는 육류인 돼지고기 사육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부분을 보자

“감금 틀에서 키우는 공장제 축산은 양계에서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나, 실제로는 돼지고기의 태반이 이런 곳에서 생산된다. 닭의 케이지와 마찬가지로 돼지의 스톨 사육도 좁은 공간에서 많이 키우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좁은 공간에서 많은 돼지를 키우다 보면 당연히 돼지끼리 부딪히고 다치기 십상이다. 그러니 딱 한 마리씩만 들어갈 수 있는 철제 스톨을 만들어 가두어 키우는 것이다. 이런 돼지는 운동도 못하고 장난도 칠 수 없으며, 심지어 몸의 방향을 돌리는 것도 불가능하다. 오로지 먹고 싸고 앉았다 일어섰다 하는 것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당연히 몸이 허약해지니 항생제 등을 사료에 섞어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돼지고기뿐만 아니라 다양한 식재료의 현실을 밝히고, ’생태주의적이고 친환경적으로’ 생산하는 곳을 찾아 전국 방방곳곳을 여행한 작가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위대한 소비를 하는 까다로운 소비자들이 많아질수록, 위대한 식재료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 까다롭고 힘든 일을 신명 나게 하게 될 것이다.” 자, 이러니 어찌 내가 고기와 달걀을 함부로 집을 수 있겠냐는 말이다

윤리학자이자 철학자인 피터 싱어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기본 원리로 하는 공리주의 개념을 동물 전체로 확장한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책 <동물 해방>에서 ‘고통은 그 주체가 누구든 상관 없이 고통’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토대로 논지를 전개한다. 그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때, 그로 인해 동물이 느끼게 될 고통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다음과 같이 말이다.

“물론 인간과 다른 동물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차이로 인해 양자가 갖는 권리에는 차등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설령 이러한 명백한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도, 그것이 인간 아닌 동물들에게 평등이라는 기본 권리를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의 걸림돌이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남녀 간에 차이가 있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과 동물의 고통을 나누어 생각하는 것이 ‘종 차별주의’에 불과하다고 말하며, 이를 해결하는 첫 번째 단계로 ‘동물을 더이상 먹지 않을 것’을 제안한다.

물론 동물권과 채식주의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다. 혹자는 연구를 위한 동물실험은 인간을 위한 불가피한 희생이며, 시간과 비용의 측면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캐나다의 생화학자 프레더릭 밴팅의 당뇨병 치료제 인슐린 발견도, 1908년 노벨상을 수상한 일리야 메치니코프의 백혈구 발견도, 2997년 노벨상을 수상한 스탠리 프루지너의 광우별 발생 인자에 대한 발견 성과도 모두 소수의 동물을 실험해 얻은 결과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이다

채식주의에 대한 반발 역시 마찬가지이다. 미국의 의학박사 웨스턴 프라이스는 연구를 통해 세계에서 최상의 건강 상태로 사는 이들은 대부분 영양이 풍부한 식생활을 하고 있다고 결론 내린다. 그동안 식물성 음식만으로 건강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시도가 이어졌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났으며, 오히려 채식을 거의 하지 않고 주로 고기를 먹는 케냐의 마사이족과 북극의 에스키모인들이 유달리 건강하다는 연구 결과를 얻기도 했다는 것이다. 즉, ‘육식이 몸에 해롭다’는 것은 지나친 편견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가 얻은 연구 결과의 요지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솔직히 말해서 <위대한 식재료>와 <동물 해방>을 읽을 때마다 채식을 시도했던 나는 완전한 채식이 (내 능력과 인내심의 범위 내에선)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신 다음과 같은 나름의 원칙을 세우고 실천하고 있다.

- 하나. 가급적 육류보다는 어류를 먹도록 한다.
- 둘. 육류를 구매할 때는 가급적 그 육류가 생산되기까지의 과정을 알 수 있는 제품을 구매하도록 한다.
- 셋. 달걀을 구매할 때는 값이 조금 더 비싸더라도 반드시 동물복지란을 구매한다.

자, 이 글을 읽은 여러분의 선택은 어떠한가? 선택은 각자의 몫이겠으나, ‘위대한 소비를 하는 까다로운 소비자들이 많아질수록’ 위대한 식재료를 만드는 사람들이 많아지리라는, (그리고 생산량의 증가로) 가격 또한 저렴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동물복지에 관한 최소한의 원칙을 제시한 브람벨 위원회의 ‘다섯 가지 자유’에 관한 결의 내용으로 글을 마칠까 한다.

“우리는 한 동물의 자연스러운 행동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주요 활동이 이루어질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감금하는 것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찬성하지 않는다. 최소한 동물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한 바퀴 돈다든가 몸치장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그들은 일어섰다 앉았다 하거나 자신의 사지를 펼칠 수 있을 만큼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