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지웅 기자] 한국은 소득과 재산 수준에 따라 매달 일정 금액의 보험료를 납부하는 건강보험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전 국민이 평소에 일정 보험료를 내고, 아프거나 약이 필요할 때 저렴한 비용으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사회보장제도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는 다른 국가들도 부러워하는 사회보장제도로 손꼽히고 있지만 갈수록 심각해지는 건강보험 재정 악화로 인해 지속 가능성마저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장기질환의 증가와 인구 고령화, 건강에 대한 사회적 관심 상승 등으로 보험 약제비 지출이 빠르게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송영진 사무관은 16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한-일 의약품 의료기기 민관 공동 심포지엄’에서 "한국의 보험 약제비 비중은 해외 선진국에 비해 높은 수준"이라면서 "건강보험 재정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급여체계 정비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송영진 사무관이 16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한-일 의약품 의료기기 민관 공동 심포지엄’에서 '보험약제 정책 추진 방향'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지웅 기자

국내 보험약제 정책은?

한국은 의약품 가격을 결정할 때 비용효과성을 고려해 식약처 허가를 받은 품목 중 선별적으로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포지티브 리스트 방식을 취하고 있다. 다만 치료 효과 대비 의약품 가격이 너무 높은 경우에는 비급여를 적용한다.

앞서 한국은 2006년까지 모든 의약품에 대해 건강보험 혜택을 제공하는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을 취했다. 하지만 건강보험 지출에서 의약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증하면서 2007년부터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전환했다.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받기 위한 세부절차는 다음과 같다. 식약처에서 의약품 사용 허가를 받은 뒤 제약사가 급여를 신청하면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건강보험 적용 여부를 검토한다. 이후 건강보험 급여 적정성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제약사 간 가격 협상을 진행하고,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의약품 가격을 최종적으로 확정한다.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받기 위한 절차. 출처=보건복지부

건강보험 급여 적용 시 환자들은 의약품을 보다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가격 중 일부만 부담하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암이나 희귀질환 등 중증질환의 경우 전체 악가의 5~10%만 부담하면 된다.

의약품과 더불어 의료비 경감 혜택도 제공된다. 대표적으로 본인부담 상한제와 재난적 의료비 지원을 꼽을 수 있다. 본인부담 상한제는 질병 치료 등으로 인해 지불한 본인부담금이 개인별 상한액을 초과하는 경우, 초과된 금액을 건강보험공단에서 부담하는 제도다. 각 소득 분위별로 본인이 연간 부담할 수 있는 상한액이 정해져 있다. 재난적 의료비 지원은 과도한 의료비로 경제적 부담을 겪는 가구에 의료비를 지원하는 정책이다. 건강보험료 기준으로 소득 하위 50% 가구(4인 기준 월 450만원 이하)를 대상으로 연간 2천만원까지 지원한다. 개별 심사를 통해 추가 지원이 가능하며,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질환도 지원 대상에 포함된다.

건강보험 등재 후 ▲사용량-약가 연동 ▲실거래가 상환제 ▲급여범위 확대에 따른 사전 약가인하 등 각종 사후 관리 제도를 통해 재정 운영의 투명성을 꾀하고 있다. 사용량-약가 연동은 제약사에서 건강보험공단에 실제 청구한 금액이 당초 합의했던 예상금액을 초과하는 경우 가격을 조정하는 제도다. 최대 10%까지 인하 가능하다. 실거래가 상환제는 2년마다 실제로 의료기관에서 의약품을 구입하는 가격을 조사해 고시 가격에 반영한다. 급여범위 확대에 따른 사전 약가인하 제도는 처음 건강보험 등재 이후 적응증 추가 등으로 적용 범위가 확대될 경우 가격 조정이 가능하다. 최대 5%까지 인하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리베이트 제공 사실 적발 시 약가 인하 등의 제재 조치를 실시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수립된 '건강보험 종합계획'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전체 건강보험 진료비는 약 64조 6천원이다. 이중 의약품 지출은 16조 2천원억으로 전체의 25%를 차지한다. 송영진 사무관은 올해도 17~18조원가량이 건강보험 의약품으로 지출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의 약제비 지출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비교해도 높은 편이다. OECD 평균 약제비 지출( 16.1%)보다 5.2% 높은 21.3%를 기록하고 있다.

송 사무관은 "정부는 약제비 지출을 일정 수준 내외로 관리하기 위해 노력 중이지만 여전히 OECD 평균 대비 높다"면서 "때문에 정부는 약제비 규모를 적정 수준으로 관리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고민의 일환으로 탄생한 정책이 '건강보험 종합계획'이다. '국민건강보험법'에 근거한 정부 법정계획으로 오는 2022년까지 건강보험 보장률을 70%까지 올리겠다는 이른바 '문재인 케어' 추진 방향을 담고 있다. 해당 계획은 보건복지부장관이 건강보험의 건전한 운영을 위해 5년마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수립한다. 올해 처음으로 개정된 법률에 따라 건강보험 종합계획이 수립됐다.

▲ 건강보험 종합계획의 주요 추진 내용으 의약품 보장성 강화, 재평가를 통한 급여체계 정비 강화, 약제비 적정 관리 등이다. 출처=보건복지부

주요 추진 내용은 ▲의약품 보장성 강화 ▲재평가를 통한 급여체계 정비 강화 ▲약제비 적정 관리 등이다.

먼저 '의약품 보장성 강화'는 기본적으로 의약품의 선별 등재 방식을 유지하면서도 보장성을 지속적으로 강화해나가는 방향으로 추진되며, '등재비급여'와 '기준비급여'를 중심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등재비급여는 사회적 임상적 요구도가 큰 의약품을 중심으로 건강보험 적용을 확대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제도 개편도 함께 추진한다. 예를 들어 희귀질환치료제의 경우 급여 적용 가격을 유연하게 검토하고 건강보험공단과의 협상 기간을 단축해 신속하게 건강보험에 등재될 수 있도록 개선할 방침이다. 기준비급여란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고 있지만 제한된 인정 범위로 인해 비급여에 해당하는 의약품을 말한다. 복지부는 향후 기준비급여 중 사회적 요구가 높은 의약품을 중심으로 건강보험 적용을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송 사무관은 "기준비급여 대상 목록을 선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급여화 여부를 일차적으로 검토하게 된다"며 "만약 급여화가 어려운 경우 선별급여 적용 여부 및 본인부담률을 높여 급여를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선별급여가 적용되면 본인부담률이 높아지게 된다. 암이나 희귀질환은 30~50%, 일반의약품은 50~80%의 본인부담률이 발생한다. 이는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될 때보다 높은 수치다.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 재정과 사후 관리 제도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재평가를 통한 급여체계 정비도 강화한다. 현재 임상 효능, 재정 영향, 계약 이행사항 등을 포함하는 종합적인 약제 재평가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연내 전문가 자문과 협의체 구성 등을 통해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내년에 시범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송 사무관은 "의약품 허가를 위한 임상 시험 환경과 실제 치료 환경이 달라 임상 시험에서 도출된 의약품 효과가 낮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면서 "지속적으로 임상 결과를 반영해 약제가 적절하게 필요한지, 가격 수준은 적당한지 검토하기 위해 종합적인 약제 재평가 제도를 마련하게 됐다"고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재평가 제도는 의약품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등재 유형별로 평가 방식을 차등화하고 단계적으로 추진된다. 복지부는 재평가 결과를 기초로 약제 가격, 급여기준, 건강보험 급여 유지 여부 등에 활용할 예정이다.

약제비 적정 관리는 재평가 제도와 연계해 의약품의 재정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방안이다. 복지부는 의약품의 합리적 사용을 유도하기 위해 처방조제 약품비 절감 장려금 사업과 그린처방의원 지정해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 특히 해외 약제비 관리 현황 등을 참고해 예측 가능한 적정 약제비 관리 방안을 연구해 2021년에 관련 제도를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지난 3월 식약처와 연계해 제네릭 의약품의 가격 산정 체계 개편방안을 마련했다. 현재 관련 개정안이 행정 예고를 앞두고 있다.

송 사무관은 "그동안 제약사에서 신청한 결과를 바탕으로 약제비를 지출해왔기 때문에 거시적 관점에서 자원 배분에 대한 정부 내부 지침이나 방향성이 없었다"면서 "약제 급여전략 수립을 통해 환자들이 필요로 하는 약제에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형태로 변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