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가는 트럼프 대통령이 조만간 달러 약화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하고 있다.   출처= depositphotos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경제에 활력을 넣기 위해 달러 약세를 원한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늘 경쟁국 통화에 대해 달러가 너무 강하다고 거듭 주장해 왔으며, 이에 동조하는 애널리스트들도 있다. 실제로 미국 달러화가 과대평가되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여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러스트 벨트의 무역 및 생산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

트럼프 정부가 최근 미국 정책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달러 하락을 가져올 수 있는 구체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추측이 커지고 있다고 CNN, CNBC 등이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러나 그러한 전략이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분명하지 않다. 게다가 다른 나라들의 보복을 불러 일으켜 수입 가격이 인상되고 미국 가계의 구매력을 약화시킴으로써 심각한 역효과를 초래할 위험도 있다.

뱅크오브어메리카(BOA)는 최근 고객에게 보낸 메모에서 “정부가 통화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는 달러를 약화시킬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20년 이상 유지해 온 강달러 정책을 확실하게 포기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재무부에 달러를 매각하라고 명령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개입은 1995년 이후로 일어난 적이 없다.

골드만삭스의 마이클 카힐 전략가는 고객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우리는 정부가 직접적인 환율 개입을 할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하지만 위험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에 대해 취한 조치는 '대통령이 원하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이 사실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통화에 대한 과감한 조치를 취할 것임을 시사했다. 지난 3일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서 중국과 유럽이 '환율 조작 게임'을 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에도 “유럽중앙은행의 통화완화 정책으로 유로화가 폭락했다”면서 "미국과 경쟁하는 것을 부당하게 쉽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물론 연방준비제도(연준)가 매파적 입장에서 비둘기적 입장으로 전환하면서 달러 강세를 완화시켰다. 올해 달러화는 바스켓 통화 대비 1%도 오르지 않았다.

통화의 왕, 달러

달러화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 맞다는 증거는 있다. 지난주 발표된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의 빅맥 지수(Big Mac Index)는 거의 모든 통화가 달러에 대해 저평가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캐나다 투자은행 BMO 캐피털마켓(BMO Capital Markets)의 스테판 갈로 유럽 외환전략팀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이 다소 일리가 있다"고 말했다.

바스켓 통화에 대한 미 달러화는 2016년 중반부터 오르기 시작해 비교적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달러화의 이 같은 강세는 세계 다른 나라들의 경제적 취약성을 반영한다. 달러 강세는 또 미국의 감세와 규제완화 등 미국 경제를 자극하고 무역적자를 줄이려는 트럼프 자신의 정책 때문이기도 하다. 갈로 팀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미국 우선주의'는 궁극적으로 달러를 강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요인은 미국 달러가 세계의 준비 통화(reserve currency)라는 것이다. 그 지위 자체가 달러에 대한 지속적인 수요를 창출하며 통화를 적절하게 평가하기 어렵게 만든다. 갈로 팀장의 표현대로 "달러는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있다.

트럼프 자신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그는 지난 3일 트위터를 통해 달러화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가장 우세한 통화"라며 "항상 그런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강달러 정책을 바꾼다고?  

트럼프 정부는 과거에도 달러화 가치 하락을 시도한 적이 있다. 골드만삭스는 그 조치가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했다.

BOA에 따르면, 달러를 약화시키는 가장 쉬운 방법은 트럼프 행정부가 1995년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부터 시작된 강달러 정책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발표하는 것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 전략가들은 "그런 조치가 매우 효과적일 수 있다"며 “과대 평가된 달러를 5% 내지 10% 떨어뜨려 통화간 평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이 굳이 “미국 달러화 약세를 원한다”고 선언할 필요는 없다. 단지 “달러의 공정 가치를 원한다”고만 말하면 된다. BOA는” 강달러 정책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아무도 없고 미국 재무부도 실제로 강달러를 위해 무슨 조치를 취한 것도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이 자국 통화를 약화시킴으로써 미국 달러 정책의 변화에 대한 보복을 모색할 수는 있을 것이다.

연준이 도와주지 않으면…

보다 적극적인 선택은 외환시장에 대한 전면적인 개입이 되겠지만, 애널리스트들은 그것은 현대의 규범을 깨뜨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골드만삭스는 "정부의 직접 개입은 달러화 약세, 엔화 강세, 해외증시 폭락 등 '대규모의 시장 반응'을 불러올 것"이라며 그런 전략에는 몇 가지 합병증이 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제는 트럼프가 자신의 달러화 약세 방침을 펼치려면 연준의 도움이 필수라는 것이다.

미국 통화 정책에 대한 권한은 재무부가 가지고 있지만, 재무부가 달러화를 하락시키기 위해 팔 수 있는 자산의 양은 그렇게 많지 않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미국 재무부의 외환안정기금 (Exchange Stabilization Fund)은 약 220억 달러에 불과하다.

캐피털 이코노미스트의 폴 애슈워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레버리지를 고려하면, 그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진 헤지펀드가 수 없이 많다"며 "연준에 의존하지 않는 한 재무부의 일방적 개입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불 보듯 뻔한 통화 약화 경쟁

연준이 환율시장 개입에 동의했더라도 그런 조치는 상당한 화력을 필요로 한다.

애슈워스 이코노미스트는 외환시장에서 매일 약 5조 달러가 거래되고 있는데 이는 미국이 마지막으로 개입에 나섰던 1995년에 비해 5배나 커진 규모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생길 수도 있다. 애슈워스 이코노미스트는 달러화 약세는 중기적으로는 미국 수출업체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지만, 수입 물가를 끌어올리고 미국 가정과 기업에 "거의 즉각적인 구매력 손실"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달러를 약화시키려는 어떤 조치도 단기 GDP 성장에 부정적인 것으로 볼 것입니다.”

골드만삭스는 "만일 다른 나라까지 똑같이 나올 경우, 노골적인 통화 개입은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통화 약화 경쟁이 촉발될 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 무역전쟁에 환율전쟁을 더한다는 것은 끔찍한 생각이다. 하지만 하려고 맘 먹으면 안 될 일이 뭐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