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백남준은 말했다. “사람은 미래가 내일이라고 말한다. '미래'는 지금이다.” 그렇다면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사회는 무엇이며, 현대미술은 무엇일까.

안타깝게도 그 개념은 실로 매우 막연하다. 미술에 있어 ‘현대’ 또는 ‘모던(modern, 현대의)’이라는 단어보다 ‘컨템포러리(contemporary, 동시대의)’란 단어가 더 자주 사용된다. 컨템포러리란 ‘최신 유행, 동시, 현재 현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흐름에 몸을 맡긴다’ 등의 깊은 의미를 내포한다. 라틴어 어원을 보면 ‘con(함께)’, ‘tempus(시간)’의 의미로, 존재와 시간 사이 관계를 가리키기도 한다.

모더니티(Modernit)의 종말 이후, 미술의 선택권은 사실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동시대적이 될 것. 이는 아무 생각 없이 현재를 끌어안는 것 이상을 뜻한다. 미술의 역할이 자신을 바라보는 거울이나 추구하는 이상향, 혹은 반항으로 보았던 것 등을 포함하여 모더니티가 공급 및 지속시킨 거대 서사가 끝났다고 보는 광범한 견해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선대와 후대 사람들 사이에서 합의된 정책, 사회 속에서 태어났으며, 이미 형성되어진 세상에서 살아간다. 세계화로 인한 문화적 다양화, 복합성, 어느 곳에서나 정보를 완전하게 교류할 수 있는 즉각성 등 동시대 속에 있는 모든 상황이 오늘날의 미술을 가장 깊게 형성한다. 결국 미술이 현재에도 동시대적이고, 과거에도 동시대적이었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미래에도 여전히 동시대적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견해가 도출된 것이다. (『What is Contemporary Art』, Terry Smith, 2009)

모든 역사가 그러하듯 시간이 흘러 누군가에 의해 정의되지 않는 한 지금 당장 무언가를 구분 짓기는 힘들 것이며, 그 답을 구하려는 기대에 대해 잠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미술계 경향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 팀 아이텔 Tim EITEL, 검은 모래 Schwarzer Sand, 2004, 린넨에 유채, 261×189.9cm, 학고재 소장
© 학고재 Hakgojae (사진=학고재 제공)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이유가 있다. 세계에서 주목받는 예술가들이 어디에서 활동하는가를 살펴보는 것, 현재 생겨나고 있는 주요 미술기관들을 조사하거나 세계 부호 컬렉터들과 갤러리의 동향을 살펴보는 것 등이 중요하다.

세 번째 밀레니엄이 시작된 이래, 유럽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임대료와 생활 조건을 갖춘 베를린은 '창조 도시 베를린(Creative City Berlin, Colomb, 2012)’으로, 문화예술에 대한 독일 정부의 관심과 정책의지 아래 많은 예술가와 ‘문화 창조 산업(Culture and Creative Industries, SenWTF, 2014)’이 유입되었다. 독일은 기본법 제5조 3항에 “예술, 학문, 연구, 교육은 자유롭다”라는 명시에 입각하여 예술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고 공공문화생활의 다양성을 장려했다. 또한 ‘문화국가’로서 협력적 문화 연방주의 원칙에 의거한 문화예술정책의 수행이 지역의 관장 사항임을 기본법 30조에 명기하여 ‘분권화’, ‘보완성’, ‘다원성’의 원칙을 고수했다. 이에 발맞춰 유럽에서 지정학적 중심인 베를린은 예술가를 위한 마케팅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고급 예술 문화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주력했다. 독일의 문화예술정책에서는 지방정부가 중심적인 역할을 하며 재정지출 현황까지 맡는데, 베를린은 2015년 기준, 예산의 50% 정도인 약 1억 2천만 유료(한화 약 1,600억)를 썼다. 대표적으로 40년 이상의 정치적, 물리적 분열에서 통일된 분단국가의 상징적 흔적에 대한 지속적인 재현과 보존에 힘썼고, 예술가 임대 보조 스튜디오(rent-subsidized studios), 아틀리에 플랫 지원(atelier flats) 등 지역 사회 문화예술 지원 목적으로 사용됐다. 뿐만 아니라 베를린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촉진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도 지원했다. 이러한 시민참여형 프로그램은 시민들로 하여금 베를린 내 문화시설에 애착을 갖게 했으며, 문화예술에 대한 높은 사회적 인식 구축과 지역 문화를 풍요롭게 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이렇듯 독일 정부의 문화 정책 지지는 시민의식을 향상시키고, 삶의 질을 높이는 등 사회적 응집력의 중요한 업무를 수행하며 베를린의 전반적인 예술성 생산과 문화 활력을 높여 활발한 문화 향유의 선순환 구조를 촉진해왔다.

▲ 팀 아이텔 Tim Eitel, 모래 Sand, 2003, 캔버스에 유채, 25×20cm, 학고재 소장
© 학고재 Hakgojae (사진=학고재 제공)

우리나라 정부 역시 문화예술에 대한 국민의 수요에 대응하고 문화예술을 통한 국가 발전과 활성화를 목적으로 다양한 지원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문화예술의 정신적, 심미적인 가치들이 개인의 행복 추구를 넘어 사회에서 발생되는 다양한 갈등을 해소하고, 집단의 상생과 공존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정부가 인식하게 된 것이다.

2013년 12월 「문화기본법」 이 제정되면서 문화예술의 진흥을 위한 제도적인 기반이 마련되었다. ‘문화권’을 국민의 권리로 규정하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모든 국민의 문화향유 기회의 제공과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책무가 있음을 명확히 한 것이다. (「예술인 중심의 문화예술 지원정책에 관한 연구」, 김의석, 2017)

그러나 사회적 또는 문화적인 환경 변화에 따라 문화예술의 영역은 계속해서 확장되고, 공공지원의 패러다임이 변화됨을 고려하지 못한 채 현실적이지 않은 정책을 펼치고 있다.

반면에 독일의 베를린만 하더라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그 지역의 다양한 단체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협력하여 즉각적인 피드백으로 효율적인 지역의 문화예술을 육성하고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 점이 우리와 크게 다르다.

▲ 팀 아이텔 Tim Eitel, GfZK 검정 GfZK schwarz, 2001, 캔버스에 유채, 180.3×240cm, 학고재 소장
© 학고재 Hakgojae (사진=학고재 제공)

사실, 세계 주요 도시들 중 베를린은 세계화를 촉진하고 연결 짓기에 경제적 인프라가 매우 부족한 도시였다. (Sassen, S., 2001) 그러나 문화예술정책지원 통해 이제는 아이디어와 영감으로 고동치는 창조적 문화의 중심지가 됐다. 복잡한 분단 역사마저 베를린의 주체성이 되었고, 거기에 타고난 정확성과 합리성 감각까지 더해졌다. 국제적인 예술가들이 정기적으로 발걸음을 하며, 이 도시에 흠뻑 젖기 원하는 문화예술의 요충지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게 됐다.

▲ 팀 아이텔 Tim EITEL, 무제 (간이 침대) Untitled (Cot), 2009, 캔버스에 유채, 22.9×22.9cm, 학고재 소장
© 학고재 Hakgojae (사진=학고재 제공)

2012년 기준, 베를린에 살고 있는 아티스트는 대략 6천여 명으로 집계된다. 독일 갤러리들은 물론 외국 갤러리들이 많이 밀집돼있음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현대미술을 동향을 보고 싶다면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여전히 베를린에 위치한 주요 미술기관들만 둘러보아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이다. 함부르거 반호프 현대 미술관(Hamburger Bahnhof Museum fur Gegenwart), 마틴-그로피우스-바우(Martin-Gropius-Bau), 킨들(KINDL – Zentrum für zeitgenössische Kunst), 쿤스트베르크 베를린(Kunst-Werke Berlin, KW Berlin), 쾨니히 갤러리(König Galerie), 잠룽 보로스(Sammlung Boros), 타이포그래피 박물관(Buchstabenmuseum), 베를린 주립미술관(berlinische galerie), 에스더 쉬퍼 갤러리(Esther Schipper), 갤러리 유딘(Galerie Judin), 갤러리 토마스 피셔(Galerie Thomas Fischer), 스프루스 마거스 갤러리(Sprüth Magers), 갤러리 아이겐 + 아르트(Galerie EIGEN + ART) 등 그 수나 규모가 엄청나다.

세계에서 모인 아티스트들은 창의적 자유가 허락되는 베를린에서 건축물, 예술 공간, 벼룩시장, 아트 서점, 콘셉트 스토어 등 도시 곳곳에 저마다의 개성을 마음껏 표출했다. 이로써 다양한 문화들이 한데 모여 전 세계인을 매혹시키고, 음식과 패션, 음악, 출판업까지 두루 통하는 모든 문화의 장으로 거듭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베를린의 가장 중요한 자산과 경제력이 됐다.

▲ 톰 안홀트 Tom Anholt, 도공 The Potter, 2019, 판넬에 유채, 30×40cm
© Tom Anholt, Courtesy Galerie Eigen + Art, Hakgojae (사진=학고재 제공)

21세기는 문화예술의 시대이다. 경제적인 발전, 민주주의의 성숙과 함께 문화예술에 대한 다양한 욕구와 관심이 꾸준히 증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문화예술이 특정한 영역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분야와 관련되어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으며, 사회적 수요 역시 증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화예술은 풍요로운 삶의 추구를 위한 필요적인 요소인 동시에 국가 산업과 경제력 발전을 꽃피우는 가장 중요한 자원 및 성장 동력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문화예술은 외부의 지속적인 지원 없이는 시장 자체의 형성과 유지가 어렵기 때문에 문화예술의 상품이 생산되고 소비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에 따라 안정적인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 및 합리적인 진흥정책과 함께 기업과 민간영역의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를 중심으로 한국콘텐츠진흥원, 예술경영지원센터 등 관련 공공기관 그리고 현장의 예술가, 크리에이터의 협업으로 풀어나감으로써 문화예술 진흥의 폭발적인 융복합 시너지가 중요해 보인다.

▲ 톰 안홀트 Tom Anholt, 바디 이미지 Body Image, 2019, 판넬에 유채, 60×50cm
© Tom Anholt, Courtesy Galerie Eigen + Art, Hakgojae (사진=학고재 제공)

미국 유력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현재 세계에서 한류만큼 성공한 대중문화를 찾기 힘들다.”라고 평했다. 1990년대에 드라마에서 시작된 한류는 이제 K 뷰티, K 무비, K 팝, K 컬처, K 푸드 등으로 번지며 세계적으로 현지화에 성공했다. 전 세계의 형성된 한류 팬덤은 국가 산업의 경쟁력에 촉매 역할을 가능케 하는 거대한 잠재 재산으로 평가받는다.

이에 한국 미술계 역시 한류와 아트 플랫폼 방안을 도모하여 ‘글로벌화’와 ‘성장 동력화’ 확산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인들의 피부에 와닿는 참신하고 창의력 넘치는 시각예술에 전략적 미술 마케팅이 어우러져 한류의 드높은 위상과 함께 K 미술로 만개하기를.

▲ 토마스 샤이비츠 Thomas Scheibitz, 파스빈더의 초상 Portrait Fassbinder, 2019, 캔버스에 유채, 비닐, 피그먼트 마커, 150×190cm, 학고재 소장
© Thomas Scheibitz, Courtesy the artist and Sprüth Magers, Hakgojae (사진=학고재 제공)

◾ 최고운 학고재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