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을 주제로 다룬 대표적 영화 <언페이스풀>(2002년)의 포스터. 리차드 기어와 다이안 레인이 열연했다.

최근 일본서 화제를 모은 뇌 과학자 나카노 노부코의 저서 ‘바람난 유전자’(부키 펴냄)는 원제목이 ‘불륜(不倫)’이다. 출판사의 책 소개는 이러하다. ‘일탈을 부추기는 인간 뇌와 유전자의 정체, 하룻밤 실수가 벌어지는 과학적 배경, 나만은 절대 들키지 않을 거라고 믿는 사람들의 심리, 불륜을 비난하는 인간 내면의 본성 등을 뇌 과학과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풀고 있다.’ 한 마디로, 경영과는 상관없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책 속에는 기업의 인사정책이나 조직관리에 꽤 도움이 될만한 대목이 하나 있다. 바로 불륜과 기업경영을 ‘애착(愛着, attachment)’ 이론으로 각각 분석한 제3장이다. 먼저 애착이론이 무엇인지부터 구글링해 보자.

영국의 정신분석가 존 볼비(John Bowlby, 1907~1990)는 1950년 세계보건기구의 요청으로 부모를 잃고 대형 탁아시설이나 고아원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어떤 심리적 영향을 받는지 연구했다. 그 결과물이 애착이론으로, 1969년 발표된 논문 ‘어머니의 보살핌과 정신건강(Maternal Care and Mental Health)’에 담겼다.

존 볼비에 의하면, 아이가 부모에 대해 갖는 강하고 지속적인 유대, 즉 ‘애착’은 인간 본성의 가장 중요한 기본이다. 애착은 특히 생후 1년간 어머니 등 양육자와 아이 사이의 교류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로 형성된다.

유아기에 양육자의 신뢰와 지지를 받고 자란 아이는 타인과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지적·사회적·정서적 지체를 경험하게 된다.

캐나다의 발달심리학자 에인스워스(Ainsworth, 1913~1999)는 1978년 발표한 ‘낯선 상황(the strange situation) 연구’에서 애착을 안정 애착, 회피 애착, 불안정 애착으로 구분했다. 그는 아이가 분리(分離) 불안을 느끼게 되는 ‘낯선 상황’을 고안했다. 빈 방에 아이를 홀로 두거나 낯선 사람이 들어와 접근하는 등의 상황을 20분간 연출했다.

안정형의 아이는 양육자와 함께 있을 때 탐색 행동이 많았다. 마음이 놓여 양육자 보다는 장난감 등에 관심을 보였다. 양육자가 갑자기 방을 나가 분리 불안이 유도되었을 경우 적절한 불안감을 호소했다. 양육자가 돌아오면 달려가 안겨서 정서적 안정을 얻고 양육자와 상호 교감하는 행동을 했다.

회피형 아이는 양육자와 함께 있더라도 상호작용이 적었다. 양육자가 말도 없이 방에서 나갔다가 돌아와도 별다른 접촉 시도를 하지 않았다. 낯선 상황에 대한 불안감 자체를 별로 느끼지 않았다.  

불안정형은 양육자에게 접촉을 시도하지만 접촉으로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했다. 양육자에게 자주 매달리거나 혹은 밀거나 발로 차는 공격적 행동을 보였다. 양육자가 방을 떠나면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나, 양육자가 다시 방에 들어왔을 때 더 크게 울거나 화를 내는 등의 행동을 보였다.

▲애착이론으로 불륜 문제를 분석한 일본의 뇌 과학자 나카노 노부코의 '바람난 유전자'

연애·결혼을 애착이론으로 분석하면, 안정형은 대부분 일부일처제를 추구한다. 회피형은 누구와도 깊은 관계나 진심어린 관계를 맺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저 남들과 가벼운 관계만을 원한다. 정복욕이나 지배욕 같은 자기애(自己愛)적인 소망에 집중하며, 타인을 자신의 도구를 이용하려는 욕구가 있다. 이런 유형은 문어발 연애와 불륜을 쉽게 저지르며, 심지어 난교로 치닫기도 한다.

불안정형은 버려지는 것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크고 타인에 크게 의존하는 성향이다. 누군가가 곁에 있어 주지 않으면 불안해 한다. 자신에게 애정을 주는 상대가 나타나면 강하게 집착하며 위험천만한 불륜에도 빠진다.

기업 조직을 애착유형으로 분류할 경우 가장 바람직한 경영자는 안정형이다. 회피형, 불안정형이 경영자이거나 조직 내에서 과도한 권한을 갖게 되면 그 기업은 위기에 빠질 우려가 있다.

회피형 경영자는 자신의 업무에 집중하기 보다는 업무 전반에 불필요한 참견을 한다. 남들을 믿지 못해 벌이는 ‘미세경영’이다. 이런 경영자는 부하 임직원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과민할 정도로 신경을 쓴다. 독불장군처럼 회사 내부의 합리적 의사결정 과정을 무시하기도 한다. 이런 의심많은 경영자 밑에서는 기업이 성장하기 힘들다.

불안정형 경영자는 극소수 측근이나 심복에 지나치게 의존한다. 이들의 밀고나 거짓 모략에도 쉽게 이용당한다. 이로 인해 인사관리는 불공정-불합리하고, 경영의 중대한 결정이 경솔하게 내려지기도 한다.

회피형, 불안형 경영자는 인재 활용 면에서도 문제가 있다. 이들은 자기보다 뛰어난 인재를 배제시킨다. 유능한 인재들이 배척되면서 조직력은 갈수록 허약해진다. 경영자 주변에는 도량이 좁고 무능한 측근들만 남아서 제대로 된 후계자가 성장할 수 없다.

이 책의 저자는 “애착 유형은 주위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안정형 사람과 가깝게 지내면 그의 영향을 받아 회피형, 불안형 사람도 안정적인 성향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기업은 안정형 인재를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안정형 직원은 조직 분위기를 좋게 만들고 일이 잘 풀리도록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는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심하게 보살피는 안전기지 역할을 한다. 인간관계에 윤활유가 되어주며, 누구와도 말이 잘 통한다. 누군가 실패하거나 불안해 할 때 편안하게 만들어 주고 완충 역할을 함으로써 조직에 중요한 리소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요즘 기업들은 능력위주, 실적중심으로 구성원을 평가한다. 이 때문에 조직 분위기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안정형’ 인재일지라도 개인의 업무실적이 우수하지 않으면 경시된다.

저자는 “집단을 고양(高揚)시키는 힘은 무시할 수 없는 능력”이라면서 ‘안정형’ 인재를 정당하게 평가하는 인사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기업 뿐 아니라 모든 조직에도 통할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