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일본의 한국에 대한 소재 분야 경제제재로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일본이 기어이 추가제재 가능성을 시사해 눈길을 끈다. 최근 일본에서 귀국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급한 불'은 껐다는 반가운 소식도 나오고 있으나 향후 불확실성은 높아지고 있다는 평가다.

한일 경제전쟁 "기습, 반격, 또 반격"
일본은 한국에 대한 수출관리 규정 변경을 통해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를 비롯해 리지스트와 에칭가스 등 3개의 수출 규제에 돌입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모두 반도체 및 가전에 들어가는 핵심 소재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경제제재는 초반 일제 강점기 시절 징용공 처우 문제에서 비화됐으나, 최근에는 북한제재 위반 논란까지 확산됐다. 실제로 일본 후지뉴스네트워크는 10일 한국 정부 문건을 입수했다며 2015년부터 지난 3월까지 한국에서 총 156건의 전략물자밀수사건이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현안이 징용공 문제에서 북한제재 위반 가능성까지 확장되자 한국도 반격에 나섰다. 초반 우왕좌왕하던 모습에서 벗어나 명확한 메시지를 던지며 일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당장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12일 대북제재 위반 혐의에 대해 한일 양국 모두 국제기구의 공동조사를 받자고 제의했다. 일본이 대북제제 위반 가능성까지 운운하며 비정상적인 논리를 펼치자 "공동으로 검증하자"는 역제안을 내놓은 셈이다. 국회 국방위 소속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도 일본 안전보장무역정보센터(CISTEC) 자료를 바탕으로 일본에서 1996년부터 2013년까지 총 30건이 넘는 대북 밀수출 사건이 벌어졌다고 폭로했다.

유엔 보고서에도 일본의 제품이 북한으로 넘어간 사례가 속속 확인되며 일본은 궁지에 몰렸다. 실제로 2015년 2월 북한 고속함에서 미사일이 발사되던 당시 일본의 군함 레이더가 존재하는 것이 확인됐으며 2014년 3월에 백령도에 추락한 북한 무인기의 카메라와 라디오 수신기도 '메이드 인 재팬'으로 확인됐다. 북한 수뇌부의 사치품에 일본 제품이 다수 포함됐다는 점도 밝혀졌다. 사태가 악화되자 일본은 자국 기업 수출에 대한 가이드 라인이 문제라는 다소 모호한 답을 내놓으며 한 발 물러난 상태다.

국내에서는 불매운동이 거세게 벌어지고 있다.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는 5일 일본 제품 판매를 중단할 것이라 발표했으며, 온라인에서는 소니와 니콘, 유니클로 등 일본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이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일본 여행을 자제하며 현지 소도시의 관광 인프라에 타격을 줘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의외의 백기사도 나타났다. 러시아가 에칭가스를 한국 기업에 공급할 수 있다는 깜짝제안을 했기 때문이다. 국내 산업계에서는 현실성을 두고 의문을 가지고 있으나, 최소한 일본의 경제제재에 대항할 수 있는 카드가 하나 더 추가됐다는 의미가 있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경제제재가 강대강 대치로 이어지는 가운데 일본이 추가 경제제재 카드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지며 또 한 번 사태가 출렁이고 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일본은 한국을 안보상 우호국가인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집접회로 및 이온주입기, 블랭크 마스크, 웨이퍼, 전력반도체 수출을 겨냥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블랭크 마스크와 웨이퍼는 일본의 점유율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국내 산업계가 상당한 피해를 입을 전망이다.

제재 규모가 탄소 및 섬유, 공작기계 전반으로 넓어질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다만 생각했던 것 이상의 문제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탄소섬유 규제가 시작되면 한국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수소경제의 인프라가 타격을 받겠지만 다른 수급처가 존재하기에 큰 문제는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공작기계도 큰 타격은 없을 것으로 보이며 자동차 영역에서는 국산화율이 95% 수준이다.

▲ 삼성 반도체 화성 라인이 보인다. 출처=삼성

여론전 시작됐다
한일 경제전쟁이 불거지며 본격적인 여론전도 시작됐다.

일본은 초반 안보상의 이유로 수출규제를 시작했다고 주장하며 한국을 테러단체와 비유하는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일본은 사린가스라는 극단적인 사례까지 들며 한국에 대한 전략물자수출이 위험하다는 궤변을 늘어 놓았다. 일본의 사이비 단체 오옴진리교가 1995년 최악의 사린가스 테러를 벌여 일본 도쿄 등에서 많은 사상자가 난 상태에서, 한국 정부와 사이비 테러단체를 동일시한 셈이다.

여론전의 주 전장은 WTO가 될 전망이다. 백지아 주제네바대표부 한국 대사와 일본의 이하라 주니치 주제네바 일본 대사는 7월 초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WTO 상품무역이사회 회의에 참석, 일본의 경제제재를 두고 격론을 벌이기도 했다. 백 대사는 일본의 경제제재가 양국은 물론 글로벌 전자제품 공급선을 교란시킬 것이라 주장했으며, 이하라 대사는 “금수조치가 아니라 규제”라면서 “한국에 정상적인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고 반박했다.

WTO 일반이사회에 시선이 집중된다. 현재 한국 정부는 미국을 비롯해 주요국에 일본의 제재 부당성을 알리는 한편 WTO 일반이사회를 기점으로 화력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한국 정부는 이미 '일본 수출 제한 조치(Export Restricted Measures by Japan)'를 정식 안건으로 채택시켰으며 오는 23일 WTO 이사회에서 적극적인 행보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한국 정부는 WTO 일반이사회는 물론 국제적인 이벤트가 시작될 때마다 일본의 수출규제 부당성을 알릴 예정이다. 다만 WTO 일반이사회가 특정 국가의 수출 정책을 강제할 수 없기 때문에 실제적인 해답 찾기에 나서야 한다는 반론도 나온다.

대미 여론전도 본격화되고 있다. 급하게 미국으로 날아간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이 14일 귀국한 가운데 미국이 한일 경제전쟁에 있어 누구의 의견에 힘을 실어줄 것인지 귀추가 집중되고 있다.

미국이 일본보다 한국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일본의 경제제재가 이어지면 한국의 반도체 제작이 멈추고, 이는 완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미국 기업에 악재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전쟁이 간신히 휴전된 상황에서 미국이 일본의 경제제재를 좌시할 이유가 없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심지어 한일 경제전쟁이 장기화되면 중국이 어부지리를 얻을 가능성도 제기되기 때문에, 미국이 향후 어떤 방식으로든 사태에 개입할 가능성은 높다는 것이 중론이다.

김 2차장도 비슷한 의견이다. 그는 "(미국은) 일방적 조치, 한일간 갈등이 우려스럽다는 것을 이해했다"면서 향후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뒀다. 미국의 전격적인 개입을 끌어내지 못했으나 한일 경제전쟁 장기화 국면이 결국 미국은 물론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일 가능성이 높고, 이에 따른 미국의 전향적 자세를 기대할 수 있다는 맥락이다.

삼성 "급한 불 껐지만"
한일 경제전쟁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일본 출장을 통해 금융권 인사들과 접촉하는 한편 현지 소재 파트너들과 다양한 논의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14일 긴급 사장단 회의를 주재해 관련 내용을 공유한 가운데 일부 소재의 공급망 확보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장단 회의에서는 컨틴전시 플랜을 주문했다. 급한 물량에 대해서는 일부 공급선을 확보하는 등 소기의 성과를 거뒀지만 사태가 장기화되면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반도체는 물론 스마트폰과 TV 모두 위기 상황이라고 진단했으며, 이에 대비한 삼성전자의 유연한 대응을 주문했다는 말이 나온다. 이 부회장이 확보한 물량도 생각보다 적기 때문에, 어떻게든 플랜B를 세워야 한다는 논리다.

한편 한일 경제전쟁으로 삼성전자의 비상경영이 시작된 가운데,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을 둘러싼 다양한 의혹을 수사하는 당국의 행보에 제동이 걸렸다는 말이 나온다. 이 부회장 승계 과정을 조사하고 있는 검찰이 지난 5일부터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를 잇달아 불러 수사에 속도를 내는 상황에서, 일본의 경제제재가 터지자 이 부회장 소환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