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수술은 흔히 예뻐지길 원하는 10대, 20대, 30대의 젊은 여성이 받는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고, 달라지고 있다. 남자의 성형수술이 급속도로 증가하기도 했을뿐더러, 40대, 50대, 60대의 중, 장년 수술도 많아졌다. 중, 장년층의 성형수술이라면 연부조직의 노화에 맞서 얼굴피부를 당기는 주름제거술이나 눈꺼풀수술을 생각하기 쉽다.

중, 장년에도 얼굴뼈수술을 할까?

물론이다. 필자가 20년 가까이 돌출입수술을 해온 환자 중 최고령 기록이 얼마전 깨졌다. 57년생, 한국 나이로 63세의 여성분을 돌출입 수술했다.

예순 넘은 나이에 무슨 돌출입수술이냐고, 주책이라고 생각한다면, 돌출입인 사람만이 평생 지녀온 상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증거다. 돌출입을 가진 분들이 예순 넘어 필자를 찾아오게 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와 사연이 있다. 한이 될 만큼 사무친 것이다. 필자에게 찾아온 예순 넘은 여성 두 분 중, 한 분은 돌출입수술을 했고, 한 분은 그러지 못했다.

첫 번째 이야기

돌출입 수술을 위해서 필자를 찾았던 61세의 환자분은 평생 입이 튀어나온 것이 한이라며, 자기 나이에도 돌출입 수술을 할 수 있냐고 물었다. 물론 수술이 가능했다. 골다공증이 아니라면 안전하고 아름다운 돌출입수술은 어렵지 않았고, 60의 나이가 되어도 예뻐지고 싶은 여성의 마음을 필자는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 평생 컴플렉스였던 돌출입 환자의 한을 풀어드릴 수 있어 나 또한 행복했다. 수술 날짜를 정하고 피검사, 엑스레이 검사도 마쳤다. 수술 당일이 되었고, 치과 분석을 포함해 모든 수술 준비는 끝나있었다.

그 환자의 돌출입 수술이 당일 아침 갑자기 취소되었다.

문제의 발단은 이랬다.

기분좋게 돌출입 수술을 하나 끝내고 나왔더니, 간호사가 내일 수술할 61세 환자분 따님이 통화를 원한다고 한다. 간호사가 건네준 전화번호로 전화해 통화를 했다.

딸의 요지는 보호자 동의도 없이 전신마취를 하는 큰 수술을 하는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었다. 틀린 이야기다. 미성년자나 금치산자가 아니라면 자신의 일에 대한 법적책임은 자신이 진다. 만 20세가 넘으면 부모의 동의 없이도 결혼할 수 있듯이, 수술이나 전신마취 등의 결정은 스스로 하는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성형외과 의사가 돈을 벌 목적으로 60먹은 노인네에게 치아를 4개나 빼고 뼈를 자르는 큰 수술을 권했다면서 양심이 없고 도덕적이지 못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말이지 어이가 없었다.

필자가 일면식도 없는 환자 보호자로부터 양심과 도덕을 운운하는 일방적인 인신공격을 들을 이유는 없었다. 필자는 날 찾아온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와 수술을 해드릴 뿐이다. 꽤 앳된 목소리의 막말을 듣다못해, 따님, 연배가 어떻게 되십니까하고 정중히 물었으나, 그게 중요하냐면서 광분하더니 결국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필자도 사람인지라 분노의 감정이 들끓었지만, 더 따져들고 싶지도 않았다. 마음을 가다듬느라 심호흡이 꽤 여러 번 필요했다.

돌이켜보면 2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쌍둥이, 모녀, 모자, 형제, 자매를 모두 돌출입수술한 적이 적지 않다. 그 가족들은 서로에게 힘이 되는 존재였다. 이번 경우처럼 가족이 제 가족의 힘을 빼고 의사의 힘도 쏙 빼 놓는 경우는 처음이다. 자기 어머니가 수술받는 게 위험하다고 느껴지고 못마땅하면 어머니를 설득해야지, 담당 의사를 비난하는 게 웬 말인가. 어머니가 정 고집하면, 같이 병원에 와서 의사 이야기도 들어보고 어떤 수술인지 제대로 알아보고 나서 고민하는 것이 순서였을 것이다.

이런 딸의 행동에 대해 정작 61세의 환자 본인은 필자에게 전화로 사과하고 미안해 하셨다. 그러면서 자신은 딸들이 반대해도 꼭 약속대로 수술하러 가겠노라 하셨다. 그러나 수술 당일 날 아침 다시한번 죄송하다면서 수술을 연기하겠다고 했다. 아마 딸 성화에 못이겼을 것이다.

환자는 61세의 어느 화창한 날 드디어 돌출입이 사라지고 아름다운 입매를 가지게 될 기회를 잃었고, 딸은 그 어머니가 평생의 한을 풀 기회를 박탈했으며, 수술장은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로 올스톱이 되었고, 필자는 덕분에 그 날 칼럼과 논문을 쓰며 소일하게 되었다.

필자의 자부심 중 하나는, 환자를 돈 버는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술을 어떻게든 많이 해야만 경영이 되는 구조의 대형병원이 아닌 것도 한 이유다. 필자의 진료철학과 양심을 걸고 이제까지 과잉진료나 불필요한 수술을 한 적이 없다고 자신한다. 그런 필자가 느닷없이 양심없는 의사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가슴에 상처가 된다.

그 61세의 환자가 결국 필자에게 돌출입 수술을 받게 될지는 아직 모른다. 받든 안받든 그 분의 인생이고 운명일 것이다. 그 환자에게는 어떠한 서운한 감정도 없다. 언젠가 다시 찾아와도 수술을 정성껏 해드릴 수 있을 것이다. 그 때는 그 따님도 같이 와주길 희망한다. 환자분의 딸은 수술 전에는 반신반의 할 것이고, 수술 후에는 필자에게 미안해하게 될 것이며, 더 시간이 지나면 감사하게 될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

필자가 수술한 최고령의 돌출입 환자인 63세의 여성분은 머리가 길었다. 머리가 남보다 긴 것 이상으로, 돌출입도 남보다 심했다.

여성분의 남편은 평생 인물화, 초상화를 그려온 화가였다. 얼굴 그림을 그리는 남편에게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분야는 다르지만, 필자도 얼굴을 ‘조각’한다. 의학이라는 과학의 범주 안에서, 해부학과 생리학이 교차하는 안전망 안에서 최대한 아름답게 디자인하고 다듬는다.

사람 얼굴처럼 그리기 어려운 것도 없을 것이다. 눈, 코, 입과 얼굴윤곽선의 비율을 실제와 조금만 다르게 그려도 딴 사람 얼굴이 된다. 사실, 이 63세 환자분의 돌출입수술은 수술 전부터 더 즐거웠다. 환자 본인을 만족시켜 드리는 것은 물론이고, 그에 더해 초상화를 그리는 남편의 예리한 눈에 아내의 얼굴선이 아름답게 변하는 것을 느끼게 해드리는 것은 또 하나의 기쁨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우 과거에는 치과의 분석결과에 의존해서 17세든, 60세든 치과에서 작성한 수술계획을 그대로 수술에 반영했었지만, 현재는 나이와 살성을 고려해서 입을 집어넣는 양을 한번 더 보정하고 조절하고 있다. 이 환자분도 나이를 고려하여 돌출입을 집어넣을 양과 턱끝의 위치를 다시한번 조절하였음은 물론이다. 치과의 엑스레이 분석 수치대로 뚝딱뚝딱 기계적으로 수술하는 것은, 예술이 아니라 기술이다.

당대의 예술가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화폭에 담았고, 화폭에 담다가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모네는 양산을 쓴 까미유를 그렸고, 클림트는 에밀리, 마리 그리고 아델레를, 르누아르는 마고와 알린을 그려냈다.

환자의 남편이 이제 돌출입이 사라져 완전히 다른 입매로 다른 얼굴이 된, 소녀처럼 긴 머리를 가진 아내의 초상화를 그리는 광경을 상상해본다. 그리스 신화 속 피그말리온과 그의 뮤즈처럼, 평생의 반려자와 더욱 아름다운 사랑하시길 소망한다. 황혼까지 붉게 타오르는 아름다운 동행이 되시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