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덕호 기자] 한일 관계의 판을 바꾸려는 일본의 구상이 현실화되고 있다. 최근 반도체 소재 부문에 대한 수출규제를 단행한 데 이어 오는 18일에는 2차 규제 대상을 발표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단 3가지 조치에 온 나라가 충격에 빠졌고, 여기에 공장기계, 탄소섬유, 자동차 등이 더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이에 민간 차원에서의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번지고 있고, 미국에 도움을 청하거나 중국의 도움을 원하는 등 다양한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 야당 대표 역시 “문재인 대통령은 왜 트럼프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가”하는 식의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사실 일본은 소재 수출에서 최대한 서비스를 해왔다. 그동안 한국 제조업체들의 제품 관세를 3% 이하(의류·직물·가죽제품 제외)로 부과했고, 기계류 제품 대부분에는 관세를 설정하지 않는 특혜까지 줬다. 

그러나 우리 기업은 일본 제품의 경제성과 품질에 중독됐고, 현실적인 문제들을 외면한 것이다. 그리고 이 특혜는 오히려 우리 산업계에 올무가 됐다. 지나치게 의존적인 포트폴리오를 만들었고, 이는 결국 화를 자초했다. 정부와 산업계 모두 일본의 기초과학과 소재기술에 기대 우리 산업을 너무 쉽게 발전시켜온 것은 아닐지 반문해야 하는 현실이다.

이 같은 중독증상은 대부분 산업분야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업들은 개별적인 이익을 위해 달려간다. 산업전체를 관리하는 컨트롤타워 부재에 대한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때문에 산업 소재 분야에서의 일본 의존도는 아직도 절대적이다.

일본산 강관(파이프)이 없다면 당장 자동차 엔진, 중장비의 유압 실린더조차 만들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삼성중공업의 해양플랜트도 대우조선해양의 LNG수송선 건조에 쓰일 제품 역시 일본산이 아니라면 대체품을 찾기 힘들다. 제조업 전반에서 일본산 소재를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 등 ICT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제조업 전반의 문제다.

별것 아닌 듯 보이는 이 ‘파이프’를 제조할 수 있는 업체도 2~3곳 남짓할 뿐이다. 그나마도 설비 수준이나 생산능력, 업체의 규모, 특수강 소재 미비로 인해 그 어떠한 산업 수요도 충족하지 못한다. '글로벌 1위 철강사 보유’ '제철강국'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30년 전 동독을 찾은 고르바초프는 "위험은 변화하지 않는 이들에게만 찾아온다"라고 말했다. 그간 너무 많은 부분의 기초 과학 소재와 부품을 즐기기만 했지 어느 누구도 이 위험을 인지하면서도 그것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기울이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현실을 인정하고 와신상담을 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