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최근 글로벌 경제의 논리가 패권주의로 물들고 있다. 일반적인 경제 이론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며 논의의 장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분위기다. 미중 무역전쟁부터 미국과 멕시코 관세 국지전, 일본의 한국에 대한 경제제재 및 중국과 일본의 경제제재 등 다양한 장면에서 기존 경제 법칙을 파괴하는 전략들이 충돌하고 있다. 이제 경제는, 패권주의의 도구이자 총알이 되고 있다.

“경제 이론으로 이해할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지난달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을 통해 관세폭탄 유예 및 상대국을 향한 경제제재 중단을 골자로 하는 무역전쟁의 휴전을 선언했다. 언제든 전쟁의 총성이 다시 울릴 수 있다는 말이 나오지만 글로벌 경제는 안도의 안숨을 내 쉬고 있다.

미국과 중국, 두 수퍼파워의 격돌로 표현되는 미중 무역전쟁은 경제가 패권경쟁의 수단이 되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로도 회자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은 지난해 초 미국이 중국을 향해 관세폭탄을 던지며 시작됐다. 이어 중국 화웨이에 대한 압박에 나서는 등 미국은 중국을 향해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중국몽을 바탕으로 샤오캉 시대를 선언하는 한편 스마트 제조 2025,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가동하며 도광양회에서 대국굴기로 나아가는 순간에 벌어진 일이다.

두 나라는 지난해 G20을 정국으로 화해국면에 접어들었으나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이 이란 제제법 위반 혐의로 미국의 요청을 받은 캐나다 정부에 체포되며 논란은 커지기 시작했다. 이어 화웨이는 유럽과 협력해 5G 전선을 구축하는 한편 중국도 미국의 관세폭탄에 적극 대응하며 판이 커지기 시작했다.

두 수퍼파워의 전쟁은 지난 5월 협상이 결렬되며 더욱 불을 뿜었다. 미국은 화웨이와 자국 기업과의 거래를 제한했으며, 미국 국방부는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를 통해 대만을 국가로 분류해 파장을 일으켰다. 미국이 보고서를 통해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는 한편 싱가포르와 뉴질랜드, 몽고를 우방국가로 표기한 점도 눈길을 끈다. 이들 4개 나라가 자유와 개방의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적시하는 한편 중국 주변국을 포섭해 일종의 압박전술을 가동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 바 있다.

홍콩에서 범죄인 인도법과 관련된 시민들의 반발이 커지자 미국은 재빨리 시민의 뜻을 지지하는 등 중국과의 신경전을 이어가기도 했다. 그 사이 시 주석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며 돈독한 관계를 과시하기도 했다. 두 수퍼파워는 이후 G20을 기점으로 휴전에 돌입했다.

업계에서는 미중 무역전쟁의 흐름이 일반적인 경제 법칙이 아닌, 글로벌 패권을 두고 벌어지는 싸움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이면에는 대국굴기에 나서려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정치적 노림수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이 중국에 대한 관세보복에 나설수록 미국 경제도 큰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미국 정부 입장에 따라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했던 구글이 미 상무부에 은밀하게 거래 재개를 요청한 이유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글로벌 패권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중국과 ‘제로섬 경제전쟁’을 벌였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결국 미중 무역전쟁도 세계의 패권을 둘러싼 전투 일부에 불과하며, 이는 경제 분야 하나에 집중해서는 절대 사태 해결의 근본적인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는 주장과도 연결된다.

미국과 멕시코의 관세 국지전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월 초 멕시코가 불법 이민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관세폭탄을 던지겠다고 압박했고, 이에 맥시코 정부는 즉각 협상에 응하며 결과적으로 미국의 의지를 따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행정명령 발동을 통해 불법 이민자 문제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고, 이 과정에서 야당인 민주당은 물론 이민자들이 많은 실리콘밸리 기업들과 충돌하기도 했다. 보수적인 백인 블루컬러의 지지를 통해 당선된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불법 이민자들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있다는 주장을 펼치며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전략이 필요했다는 말도 나온다.

그 연장선에서 이번 멕시코와의 타결은 전장의 확장에 따른 정치적 압박이 병행되며 시너지를 냈다는 평가다. 불법 이민자 문제는 정치 외교적 측면에서 풀어가야할 문제며, 멕시코에 대한 관세 부과는 순수한 경제의 영역이다. 이 지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불법 이민자 근절을 요구하며 멕시코에 관세폭탄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을 시사했고, 결국 멕시코 정부가 백기투항하며 불법 이민자 문제 논란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나의 영역에서 전쟁을 치르는 것이 아니라 정치와 경제, 외교 등 다양한 영역에서 '미국의 이익'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셈이다. 경제는 수단일 뿐이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경제제재도 마찬가지다.

현재 일본은 한국에 대한 수출관리 규정 변경을 통해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를 비롯해 리지스트와 에칭가스 등 3개의 수출 규제에 돌입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모두 반도체 및 가전에 들어가는 핵심 소재다. 추가 제재 가능성도 열어뒀다. 수출 규제 품목을 늘리는 한편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배제하는 방향도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경제는 휘청이고 있다. 일본의 제재는 경제의 핵심인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모리 반도체는 물론 시스템 반도체 전반의 성장동력에 경고등이 들어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본에서 수입해야할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소재 비축분이 생각보다 적다는 말도 나온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정확하게 추산할 수 없지만, 내부 사정은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부정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감산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삼성전자의 경우 이재용 부회장이 일본으로 날아가 직접 활로를 찾았으나, 상황은 여의치 않다는 평가다. 이 부회장이 고육지책으로 제안한 일본 기업들이 대만 등 일본 외 영토에서 생산한 소재 물량을 한국에 수출하는 방안도 사실상 어려운 것으로 알려지며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일단 일본 금융계 인사들을 연이어 만나는 한편, 예정보다 현지 출장 일정을 길게 잡고 물량 확보에 주력하는 전략을 보여줬다.

이 부회장이 현지에서 전력투구에 나선 가운데, 일본 경제계도 이 부회장과 직접적인 스킨십에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다. 실제로 한국의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비슷한 일본의 게이단렌은 이 부회장과 만나지 않는다고 밝히며 거리를 두는 모양새다.

한국 정부는 단호하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대외경제장관회의 모두발언에서 일본의 경제제재에 대해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IMF 연차총회, 한-아세안(ASEAN) 특별 정상회의는 물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 여러 다자적인 논의 기회가 예정돼 있다”면서 “글로벌 경제의 성장과 보호무역주의 확산 방지 등을 위한 국제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주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 부총리는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과 함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4대 그룹 총수와 회동하며 사태해결에 고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나섰다. 10일 30대 그룹 총수와의 간담회를 통해 “우리 정부는 일본의 부당한 수출제한 조치의 철회와 대응책 마련에 비상한 각오로 임하고 있다”면서 “일본 정부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우리 경제에 타격을 주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강경한 메시지를 내놨다. 최근 아베 총리가 지난 7일 참의원 선거 방송 토론에서 한국의 대북제제가 허술하다는 이유로 경제제재 당위성을 찾으려한 것을 두고는 “아무런 근거없이 대북제재와 연결시키는 발언을 하는 것은 양국의 우호와 안보협력 관계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장외 여론전도 벌어지고 있다. 백지아 주제네바대표부 한국 대사와 일본의 이하라 주니치 주제네바 일본 대사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WTO 상품무역이사회 회의에 참석, 일본의 경제제재를 두고 격론을 벌이기도 했다. 백 대사는 일본의 경제제재가 양국은 물론 글로벌 전자제품 공급선을 교란시킬 것이라 주장했으며, 이하라 대사는 “금수조치가 아니라 규제”라면서 “한국에 정상적인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고 반박했다.

한국이 전략물자 관리에 미흡하고, 그 중 일부가 북한에 흘러들갔다는 주장도 나왔다. 실제로 일본 후지뉴스네트워크는 10일 한국 정부 문건을 입수했다며 2015년부터 지난 3월까지 한국에서 총 156건의 전략물자밀수사건이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이는 일본의 소재분야 경제제재의 중요한 이론적 배경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앞서 일본 자민당의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안보조사회장은 후지뉴스네트워크가 공개한 한국 정부의 문건을 기사로 쓴 조선일보 기사를 인용, 한국 정부의 전략물자관리에 의문을 보이기도 했다.

문제의 문건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작성한 것이며 우리공화당 조원진 의원실이 지난 5월 산업부로부터 제출받은 '전략물자 무허가 수출 적발 현황'인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은 이 문건을 바탕으로 자국의 한국에 대한 경제제재 당위성을 강조하는 모양새다. 다만 156건의 사건에 일본을 대상으로 하는 사건은 없고, 실제 수출되지 않은 사례도 많기 때문에 이와 관련해 냉정한 상황판단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일본은 사린가스라는 극단적인 사례까지 들며 한국에 대한 전략물자수출이 위험하다는 궤변까지 보여주고 있다. 일본의 사이비 단체 오옴진리교가 1995년 최악의 사린가스 테러를 벌여 일본 도쿄 등에서 많은 사상자가 난 상태에서, 한국 정부와 사이비 테러단체를 동일시한 셈이다.

한국 정부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산업부는 11일 "일본이 한국 수출 통제 제도의 신뢰성을 폄훼하는 근거 없는 의혹을 계속 제기하고 있다"면서 "한국은 수출입 통관, 전략물자 수출 허가 및 관련 업계 조사를 통해 일본산 불화수소가 북한을 포함한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제재 대상국으로 유출된 어떤 증거도 발견하지 않았음을 밝힌다"고 강조했다.

최근 일본의 경제제재 당위성이 한국 정부의 전략물자관리 기능으로 집중되는 가운데, 일본이 일부 소재에 대한 수출규제 제한에 나설 것이라는 보도가 나와 눈길을 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즈는 10일 일부 관료의 발언을 인용해 “일본 정부가 민수용 반도체 소재에 대해서는 수출규제를 철회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전략물자와 가까운 소재는 엄격하게 수출하되 민수용 소재에 대해서는 규제철회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다.

한일 경제전쟁이 확전 가능성까지 보이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말도 나온다. 일본의 제재가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국 경제계에도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아사히 신문은 4일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고, (일본의 수출 규제가 이어지면) 일본 기업의 피해도 생길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간 수출재를 다루는 한국의 피해가 심해지면 이를 수급받아야 하는 일본 기업의 피해도 커진다는 논리다. 이는 미국 기업에도 통용된다. 당장 삼성디스플레이 등이 일본의 소재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해 부품을 완성하지 못하면 아이폰을 만드는 애플의 피해도 커진다.

특히 OLED가 문제다. 만약 삼성디스플레이가 일본 수출 품목 제한 조치에 따라 원하는 만큼의 OLED를 만들지 못하면 그 피해는 일본의 소니 등도 피해갈 수 없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6일 "일본의 제재가 이어질 경우 일본 기업의 피해도 커질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한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도 화두다. ‘엄청난 피해’는 예상되지 않지만, 일본으로서는 역시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일본이 ‘이기는 게임’을 하면서 ‘제재’에 돌입하는 장면도 관건이다.

한일 두 나라는 정식수교한 이래 수출입에 있어 항상 일본이 흑자, 한국은 적자를 면하지 못한 바 있다. 한국무역협회(KITA)와 관세청의 수출입통계에 따르면 1965년부터 2018년까지 54년간 한국의 대일 무역적자 누적액은 총 6046억 달러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한국에 경제제재를 가한다는 것은 일반 경제논리로 이해할 수 없다.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에서 지속적인 적자가 난다는 이유로 제재를 했으나, 일본은 흑자를 보고 있으면서 모호한 정치적인 이유로 제재에 나서는 리스크를 자초하고 있다.

일본의 제재가 장기화되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큰 타격이 오고, 이는 미국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는 리스크도 있다. 신용평가사 무디스(Moody's)는 8일 보고서를 통해 일본의 제재가 장기화되면 한국의 반도체 제작이 어려워지고, 이는 글로벌 전자업계에 연쇄적인 파급효과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입장에서도 낙관적이지 않은 전망이다. 당장 글로벌 경제계가 미중 무역전쟁을 휴전하고 한 숨을 내쉰 상태에서, 일본이 ‘만악의 근원’이 될 수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일본 정부가 자국 경제의 피해를 고수하면서도 한국에 대한 제재를 추진하는 장면을 ‘패권경쟁’의 일환으로 해석하고 있다. 최근 한국 정부가 일본과의 외교에 있어 감정적인 대응에 집중하고, 대북 문제에 있어 일본의 행보가 좁아지는 등 파열음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일본이 ‘우리의 피해가 예상되어도 한국에 일본의 힘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말이 나온다. 역시 경제가 경제의 논리가 아닌, 동북아시아 패권경쟁의 일환에서 해석되는 순간이다. 

최근에는 중국과 인도의 경제전쟁 가능성도 제기된다. SCMP는 10일 비크람 미스리 주중 인도 대사가 중국을 향해 “만성 무역적자를 간과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IT에 특화된 인도는 생필품 중심의 중국과 지속적인 무역 적자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에는 미중 패권경쟁의 흐름에서 인도의 역할론이 중요해지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지역 패권주의와 관련이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스트롱맨들의 위험한 도박
미중 무역전쟁부터 최근의 일본 경제제재는 수요와 공급으로 설명되는 일반적인 경제논리를 부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시진핑 주석, 아베 총리 등 각 강대국들의 스트롱맨들이 패권을 추구하며 경제를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가 정치 및 사회, 문화, 역사는 물론 각 지역의 정서까지 관통하는 복잡한 전쟁으로 접어드는 순간이다. 결국 ‘유리공 던지기’에 가까운 세밀한 접근과 민관합동의 냉정한 정책적 결정, 여기에 패권경쟁으로 흐르는 글로벌 트렌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유연한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