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장기호황) 종료에 이어 일본의 한국에 대한 소재 수출 규제로 국내 반도체 업계의 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일각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감산을 통해 당장의 어려움을 극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추가 감산 가능성을 일축하는 한편 당분간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업계에서는 미국의 마이크론이 감산 결정을 내린 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비슷한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일본의 한국에 대한 경제제재로 국내 반도체 업계의 위기감은 커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4일부터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수적인 포토레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의 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했으며, 이는 모두 반도체 제작에 필수적인 소재기 때문이다.

메모리 반도체는 물론 시스템 반도체 전반의 성장동력에 경고등이 들어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본에서 수입해야할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소재 비축분이 생각보다 적다는 말도 나온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정확하게 추산할 수 없지만, 내부 사정은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이재용 부회장이 일본으로 날아가 직접 활로를 찾고 있으나, 상황은 여의치 않다는 평가다. 이 부회장이 고육지책으로 제안한 일본 기업들이 대만 등 일본 외 영토에서 생산한 소재 물량을 한국에 수출하는 방안도 사실상 어려운 것으로 알려지며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일단 일본 금융계 인사들을 연이어 만나는 한편, 예정보다 현지 출장 일정을 길게 잡고 물량 확보에 주력할 전망이다.

이 부회장이 현지에서 전력투구에 나선 가운데, 일본 경제계도 이 부회장과 직접적인 스킨십에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다. 실제로 한국의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비슷한 일본의 게이단렌은 이 부회장과 만나지 않는다고 밝히며 거리를 두는 모양새다. 아베 총리 내각이 한국에 대한 강력한 경제 제재 의지를 보여주는 상황에서, 일본 경제계도 일단 자국 정치권과 협력하는 모양새다.

일본의 경제제재가 확대될 조짐까지 보이는 가운데, 일각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감산에 돌입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일본에서 들어오는 소재 물량이 막히면 어쩔 수 없이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작에 제동이 걸리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추가 감산 계획이 없다”는 공식입장을 밝혔으나, 업계에서는 추후 상황에 따라 감산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한편 일본의 경제제재가 기승을 부리며 양국의 여론전도 치열하게 벌어질 전망이다. 백지아 주제네바대표부 한국 대사와 일본의 이하라 주니치 주제네바 일본 대사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WTO 상품무역이사회 회의에 참석, 일본의 경제제재를 두고 격론을 벌이기도 했다. 백 대사는 일본의 경제제재가 양국은 물론 글로벌 전자제품 공급선을 교란시킬 것이라 주장했으며, 이하라 대사는 “금수조치가 아니라 규제”라면서 “한국에 정상적인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