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우라늄 농축 합의 파기 선언

지금 미중 무역전쟁보다, 한일 무역갈등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바로 이란의 핵개발 우려이다. 이란은 지금 미국이 감당할 수 있는 인내의 한계에 접근하고 있다. 미국이 이란을 공습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세계 경제는 극심한 혼란에 빠질 것이다.

지난 7일 이란이 미국을 향해 도발했다. 서방 국가들과의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에서 규정한 우라늄 농축도를 지키지 않겠다고 밝힌 것이다. ‘구석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는 식으로, 이란은 미국을 강하게 자극한다.

AP, BBC 등 주요 외신은 베흐루즈 카말반디 이란 원자력청 대변인의 발표를 보도했다. “핵합의 이행 범위를 축소하는 2단계 조처로 현재 3.67%인 우라늄 농축도를 원자력 발전에서 필요한 수준으로 올릴 것”이라는 것이었다. 무척 간단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발표에 담긴 함의는 상상이었다. 이란에 대한 제재를 가하는 미국에 대한 정면 대응이었다. 미국이 제재를 풀지 않으면, 이란은 미국이 요구하는 주문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핵무기를 개발하고 말겠다는 것이었다.

이란은 지난 5월 8일 1단계 조처로 핵합의에서 규정한 3.67%의 저농축 우라늄과 저장한도 300kg을 초과했다고 밝혔다. 그때 이란은 60일 내에 유럽이 핵합의를 이행하지 않으면 2단계 조처를 단행하겠다고 예고했다. 그리고 60일이 지났는데도 유럽이 이란산 원유 수입을 재개하지 않자 마침내 행동에 나선 것이다.

이란 외무부의 압바스 아락치 차관은 “이란은 유럽에 미국의 핵합의 탈퇴로 인한 악영향을 상쇄할 수 있도록 60일간의 여유를 줬지만, (유럽은) 이를 지키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유럽이 앞으로도 또 60일 안으로 핵합의를 이행하지 않으면 이란도 핵합의 이행 범위를 더 축소하는 3단계 조처를 하겠다”라고 경고했다. 아마도 이란은 3단계 조처로 원심 분리기의 성능 향상을 위한 개조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

 

이란의 도발에 대한 미국의 반응

이란의 도발 소식이 전해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곧바로 이란에 대해서 위험 수위를 넘고 있다는 경고했다. “이란은 조심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일갈한 것이다. 지난달 3일, 이란이 핵무기 개발의 ‘신호탄’으로 여겨지는 우라늄 농축도 상향 조치에 들어가겠다고 밝혔을 때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경고했었다. “조심하라, 이란”

말을 하다보면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가 찾아오게 된다. 이란과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 그 상황이다. 이란은 포괄적 공동행동계획에서 탈퇴를 문제 삼아 미국을 압박하고 있지만, 본질은 이란의 핵개발 여부이다. 미국이 탈퇴하든 말든, 이란은 핵개발 의지를 드러내지 않으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란은 핵개발을 공식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 이어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트윗을 통해 심경을 밝혔다. “이란의 최근 핵 프로그램 확대는 추가적인 고립과 제재들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핵무기로 무장한 이란 정권은 세계에 더 엄청난 위험을 가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 수준의 강력한 경고는 아니었지만,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발언은 이란에 대한 추가 제제가 분명히 감지되는 심각한 수준의 발언이었다.

서방 선진국들은 이란의 도발과 미국의 대응에 대해 우려하는 모습이다. 지난 2015년 7월 이란과 핵합의를 체결했던 영국은 “이란은 즉각 합의 위반을 중단하고 의무사항에 어긋나는 조처를 복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U 중심국 독일도 “이란이 핵합의를 위반하는 모든 활동을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란은 심각하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 가능성

사실 이란이 미국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미국과 싸워 이긴 경험 때문이다. 반면 미국은 반대이다. 이란에 대한 강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벤 애플렉 감독의 영화 ‘아르고(Argo)’(2012)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미국은 과거 이란 인질사태를 경험했다.

1979년 11월 중동의 친미주의 지도자 팔레비 국왕이 통치하는 이란에 혁명이 일어났다. 종교 지도자 아야툴라 호메이니가 이끄는 혁명 세력의 폭동이었다. 팔레비 국왕은 미국으로 도피했다. 1979년 11월 4일 혁명 세력은 미국 대사관을 점거해 58명 미국인을 인질로 잡고, 팔레비 국왕을 돌려보낼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카터 대통령은 이란 혁명 세력의 요구를 묵살하고, 금수조치를 단행했다. 그러자 이란 혁명 세력 지도자 호메이니는 대미 항전을 선언하고 주미 대사관 인질을 억류했다. 궁지에 몰린 카터 대통령은 이란에 특공대 명령을 내렸지만, 1980년 4월 24일 특공대를 태운 헬기가 사막에서 추락하며 상황은 오히려 더 꼬였다.

이란 인질 사태로 치명타를 입은 카터 대통령은 1년 뒤 선거에서 참패했다. 그러자 알제리가 중재에 나섰고, 이란은 취임을 앞둔 레이건 대통령의 참모들과 협상을 벌였다. 미국 내의 팔레비 국왕의 재산 환수를 조건으로 1981년 1월 20일 52명 인질 전원을 석방했다. 주이란 미국대사관을 점거한지 444일만의 일이었다.

베트남 전쟁에 이어 이란 인질사태는 미국 현대사에서 지울 수 없는 상처다. 따라서 이란에 대한 미국의 기억이 좋을 수가 없다. 트라우마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이란은 미국과 결사항전의 의지가 분명하다. 인질사태에서 승리를 거둔 자부심을 바탕으로, 이미 당하고 있는 경제 제재나 전쟁으로 인한 피해 사이에 차이가 없을 거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란은 한 번 끝까지 미국과 다툴 생각을 하고 있다.

 

미국의 이란 침공 이후 세계 경제의 향방

물론 현재까지 상황으로 볼 때 미국이 이란과 전쟁을 벌일 가능성은 낮다. 이란과 전쟁을 펼칠 경우 국제유가 폭등, 아랍 공동체의 반발 야기, 이란과 중국을 중심으로 반미세력이 형성될 수 있는 까닭이다. 게다가 미국 내부에 테러 위협이 증가할 여지까지 있다. 그러므로 미국은 이란과의 갈등을 전쟁을 통해 해결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이란과 전쟁하게 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보다 유리한 입장이 될 것이다. 이란의 핵개발 의도 포기를 수용한 오바마 대통령의 판단과 달리, 이란은 결국 핵개발 의도를 버리지 못한 것이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이란과의 전쟁을 지지할 수도 반대할 수도 없는 애매한 입장이 된다.

이란은 미국이 경제 제재를 해서 핵개발을 재개하게 됐다고 강변할지 모른다. 하지만 진정으로 핵개발을 포기했다면, 어떤 경우에도 재개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미국과 이란이 전쟁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오바마 대통령의 판단 오류를 트럼프 대통령이 수정하는 교정전쟁이 된다. 미국의 전략적 판단 시한은 이제 60일 남았다.

16개월 뒤에 치러질 미국 대통령 선거 때문에 미국과 이란이 전쟁을 펼칠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북한 핵문제의 원만한 해결이 대통령 선거에 유리하게 작용될 수 있는 것처럼, 이란 핵문제도 그렇게 활용될 수 있다. 세계 경제를 흔들 거대한 태풍이 조만간 불어 닥칠 수 있다. 이제 남은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적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