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다섯가지 감정을 의인화하여 2015년 국내 개봉 당시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킨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포스터.

인간의 무의식 속에는 어린 시절의 아픔과 상처로 인한 자아(내면아이. inner child)가 있다는 이론이 있다. 1990년 미국의 저명한 작가이자 상담사 존 브래드쇼(John Bradshaw)가 저서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를 통해 세상에 널리 알린 상담기법이다. 이 책은 2004년 국내에서도 번역 출간된 바 있다.

위키피디아를 보니, 영문판 위키피디아에서는 ‘내면 아이’가 ‘팝(pop) 심리학’의 범주에 포함되어 있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내면아이 심리치료법은 설득력이 있어 지금도 대중적 관심을 모은다. 최근 출간된 <나는 내 편이라고 생각했는데>(최광현 지음, 부키 펴냄) 역시 내면아이를 주로 다룬다. 책 일부 내용을 소개한다.

남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대부분 문제의 원인을 바깥에서 찾는다. 상대방이 한 말, 상대가 나에게 보인 행동, 당시의 상황 등에 골몰한다. 남들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속마음이 나를 공격하고, 현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나를 속이고 있다고는 추호도 생각지 않는다. 언제나 ‘나는 내 편’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나'는 내 편이 아닐 수도 있다. 사람은 마음 속에 내면아이를 갖고 있다. 내면아이는 사람이 성장하여 어른이 되어도 자라지 않는 채 그대로 남아 있다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불쑥 튀어나와 훼방을 놓고, 면박을 주고, 이간질을 한다.

특히 상처받은 내면아이는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받았어야 했던 따뜻한 보호와 보살핌이 결핍된 탓에 생긴다. 이 아이는 무의식에 숨어 있다가 상처를 입을 당시와 비슷한 상황을 맞닥뜨리면 의식 밖으로 튀어나온다. 그리고 미성숙한 방식으로 대응해 상황을 악화시키고 불행을 자초한다.

△지나친 소심함=대학생 A(21)는 지나치게 남의 눈치를 보고, 사소한 것도 혼자 결정하지 못한다. 매우 소심하다. A는 조별 발표처럼 새로운 사람과 만나게 되면 예민해진다. ‘아까 그 학생이 한 말이 무슨 뜻일까? 내가 대답했을 때 표정이 이상하지 않았나?’ 온종일 남의 행동과 말을 되씹느라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A는 중학교 1학년 때 집단 따돌림을 당한 이후 성격이 바뀌었다.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소심한 나’라는 ‘거짓 자아’를 만들어낸 것이다.

△병적인 절약=B(52)는 중견 기업 임원으로 병적으로 절약하고 산다.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는데도 아내에게 생활비를 하루 3만 원씩 주고, 그 이상의 돈은 수없이 사정해야 내준다. 자신이 바나나가 먹고 싶을 경우 딱 하나만 사와 가족들 앞에서 혼자 먹는다. 사실, B는 어린 시절 극심한 빈곤에 시달렸다. 그는 과거를 극복했다고 믿고 있지만, 그의 내면에는 가난 때문에 매일 불안감 속에서 몸부림치던 어린 B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죄책감과 수치심=C(28)는 극심한 불안증세를 앓고 있다. 얼마 전 여자친구와 함께 밤을 지낸 이후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게 됐다. 일상마저 무너졌다. 상담 결과 그의 기억 밑바닥에는 충격적 경험이 하나 파묻혀 있었다. C는 여섯 살 때 우연히 아버지의 불륜 장면을 목격했다. 그 때 내면아이에게는 분노, 죄책감, 수치심이 뒤섞인 커다란 상처가 생겼고, 20여년 만에 여자친구와의 하룻밤에서 되살아 난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욱’하는 상황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내면아이는 과거의 상처가 건드려지는 지점에서 유치하고 미성숙한 ‘퇴행적 행동’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퇴행’은 자신을 보호하고 현실에 대한 불안을 줄이기 위해서 유년기로 돌아가려는 심리적인 행동이다.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르고, 도망가고 싶고, 숨어버리고 싶은 순간을 면밀하게 살펴볼 때 내면아이를 발견하는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심리적 상처가 크다면 당연히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 정도가 아니라면 셀프치유가 가능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내면아이와 화해하는 셀프치유는 6단계이다.

(1단계) 과거의 상처를 알아내며 자신 안에 내면아이가 있음을 인정한다. (2단계) 상처 입었던 핵심 감정을 찾아 현재의 감정과 연결한다 (3단계) 내면아이에게 이름 붙인다. 상처를 ‘언어’로 표현해 객관화한다. (4단계) 아픔을 공감해 준다. 상처와 감정을 이해하고 스스로 위로한다. (5단계) 자기에 대한 관점 전환한다. 과거의 기억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6단계) 관계를 변화시킨다.

책에는 다양한 상담사례가 나온다. 그 가운데는 가시 돋힌 언행을 일삼는 까칠한 사람에게 들려줄 만한 말이 나온다.

“당신은 어린 시절 깊은 상처를 받았고, 더 이상 상처받지 않으려고 가시를 세우고 살아온 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삶 속에서 당신에게 친절을 베풀고 따뜻한 마음을 준 사람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다만 크나큰 상처의 고통을 들여다보느라 그 따뜻함을 미처 기억하지 못하는 것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