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오후 시간에 집안이 왁자지껄해졌습니다.

손위 동서의 딸네 가족들이 부부동반해서 간만에 우리 집을 찾았습니다.

아이 포함 두 가족 5명이 찾아왔는데, 역시 젊음이 좋은 거겠지요? 집안이 환해졌습니다.

간단없는 주제로 이러구 저러구 한참을 떠들다, 목소리들이 잦아들 때쯤

내가 평소 궁금한 것을 물었습니다. 사십대 후반, 사십대 중반의 조카와 조카 사위 들인데,

공교롭게 두 가족 다 아이들이 하나였습니다.

‘너희들은 어찌해서 하나씩만 아이를 가지게 되었는가?’

그날 못 온 여고생 딸을 둔 큰 조카가 먼저 말합니다. 한 아이 키우는데 월 평균 얼마,

이십여 년 동안 그것에 두 배가 더 든다고 생각하니, 둘째는 저절로 접게 되었다고.

그러자 막내 조카가 함께 온 조카 사위와 아이를 슬쩍 쳐다보더니 말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게 너무 힘들고, 모든 면에서 전력 투구해야할 것을 알고는 결정했다고

하네요. 자신들 부부의 인생도 중요하니 하나만 잘 키우며, 서로 살자고.

그 얘기를 듣는 순간, 형제 자매가 넷인 나와 여섯인 집사람이 눈이 마주쳤습니다.

인구 절벽, 그래서 장차 대한민국이 소멸 위기라는 대충의 시대 분위기는 알았지만,

이렇게 당사자들의 입을 통해 그 사정을 직면하니 할 말을 잃게 되었던 게지요.

문제는 여기 이 자리 우리 가족 단위로만 보아도 두 세대 만에 인구가 1/4에서 1/6로

준 것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저들의 저 이유에 대답할 말이 없다는 거였습니다.

그러구 며칠이 지나 시골 친구 부친상이 있어 문상을 갔습니다.

주말 져녁이라 그런지 밤 10시가 안되었는데 썰렁 했습니다.

그것 또한 며칠째 매여 있는 생각, 인구 감소 덕분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자리서 오랜 만에 초등 친구를 만났습니다. 저 멀리 남쪽에서 교편을 잡아 생활하다 이제 퇴직하고 귀향을 해서 시골에 정착한 친구였습니다. 대개의 시골 마을이 그렇듯이 자기 같은 중늙은이(?)가 가장 어린 축에 속하는 영광을 입고 있다고 너스레를 떱니다.

시골 마을에 초등학교가 있는데, 우리가 다녔을 때와 비교해 학생이 정확히

십분의 일로 줄었는데, 귀해진 아이들은 아침에 걸어서 정문을 통과하는 게 아니라

노란 버스로 교사(校舍) 앞까지 들어가더라는 소식을 전하며 쯧쯧 합니다.

그러며 옛날 자신들이 젊었을 때 예비군 훈련 가서 정관 수술하면 훈련을 면제해준

그놈의 인구 정책 때문에 요즘 시골 마을이 이렇게 절간이 되었다고 다소 흥분을 합니다.

친구가 말한 것은 예전에 둘만 낳아 잘 키우자는 취지 하에 셋 이상을 낳지 않도록

정책적으로 남자에게 정관 수술을 권했고, 학교 현장에서도 둘 까지의 자녀까지만 혜택을

주는 등의 정책들을 말한 겁니다. 이십여 년 전 잘못된 정책의 후폭풍을 이렇게 맞고 있는데, 현재의 인구 정책으로 이십여년 후의 우리나라를 건질 수 있겠느냐는 정치 얘기로

갑자기 흘러갔습니다.

늦은 시간 상가 집에서 돌아오는데, 어둡고 텅 빈 고속버스 안이 우리 사정 같아 보였습니다.

근처를 지나는 수원 노선 버스 측면 광고판에 있는 시정(市政) 구호 같아 보이는

‘사람이 반갑습니다’는 무슨 의미였을까요?

흐르는 세월이 약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