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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철학찾기(22)] 쉰들러는 세상을 구했는가?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1939년 어느 날, 독일이 점령한 폴란드의 크라코프에 낯선 인물이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오스카 쉰들러, 성공을 열망하는 사업가로 유태인이 경영하는 그릇 공장을 헐값에 사이고자 이곳에 온 것이다.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나니 군수 물자로 사용할 그릇 수요는 넘쳐나고, 거리에는 밖으로 내몰린 유태인이 가득해 인건비도 쓸 필요가 없다. 그는 자신의 목표를 향해 그야말로 돌진한다. 나치당에 가입하고, 여자와 술, 값비싼 담배로 SS 요원들을 매수한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죽음이 될 전쟁을 그야말로 '기회'로 마주한 쉰들러이지만, 매일 같이 벌어지는 만행을 보며 이름 모를 가책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특히 그가 경악을 금치 못하는 인물은 아몬 괴트이다. 실존 인물로 알려진 그는 매일 유태인을 학살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고 한다. 자신에게 배달된 스프가 식었다며 사람을 죽였고, 누군가 탈출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그 방 동료를 모두 학살했다. 아이들을 학살하는 순간, 수용소 오케스트라에게 동요를 연주시켰으며, 수 시간 동안 채찍질을 한 뒤 자신이 맞은 횟수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며 재차 채찍질을 벌였다.

학살은 아침부터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독일군을 피해 곳곳에 몸을 숨기지만 그들은 사람들을 용케 찾아내어 무자비하게 살해한다. 사방에서 들리는 비명과 총소리. 이 장면을 쉰들러는 말을 타고 언덕에 올라갔다가 우연히 목격하고, 경악한다.

결국 쉰들러는 마음을 바꾸고 만다. 사람들을 구해내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는 군수품 공장에서 일할 사람이 더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유태인들을 자신의 고향으로 빼돌린다. 이런 식으로 살려낸 사람이 총 1100명. 그가 세운 군수품 공장은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은 채 종전을 맞았으며, 그는 이 기간동안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독일군을 매수하느라 벌어놓은 자산을 모두 탕진한다.

이성에 대한 인간의 믿음은 오랜 시간과 노력을 기울려 쌓아 올려졌지만 그 믿음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에 불과했다. 20세기 초, 조금 더 정확히는 1914년과 1939년에 일어나 수 천 만의 희생자를 낸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인간의, 인간에 대한 믿음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인간의 이성이 끊임 없이 사회 발전과 진보의 밑거름이 되리라 믿은 철학자들의 입장도 바뀌기 시작했다. 프랑크푸르트학파 1세대로 불리는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자신들의 저작 <계몽의 변증법>을 통해 생산력의 발전을 위시한 문명화 과정 전체가 더 이상 인간의 해방을 실현하는 진보의 과정이 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믿어온 역사의 필연적 발전이란 담보되지 못하는 것이며, 미래는 암울하고 의심스러운 것이 되어버렸다고 이야기했다. 즉, 많은 이들이 인간 문명 발전과 진보의 근본 원리라고 믿어 온 ‘이성’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인간 이성에 대한 그간의 믿음을 모두 철회하고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할까? 프랑크푸르트학파 2세대의 대표적 학자인 위르겐 하버마스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우리가 이성을 잘못 사용한 예일뿐, 여전히 우리는 이성을 바탕으로 발전해나가야 한다는 것. 그는 특히 인간 주체 사이의 의사소통 행위에 주목함으로써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성이란 추상적인 진리를 찾거나 이상 세계를 추구하는 능력이 아니다. 그가 생각하는 이성은 자기 자신을 타인에게 정당화하기 위한 능력이다. 가령 우리는 상호간의 대화가 이루어질 때 상대방의 의사를 파악하고자 하며, 그 대답에 질문하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또한 발전해 나간다는 것이 하버마스의 생각이다. 우리는 이를 '하버마스의 공론장'이라고 부른다.

전쟁이 끝나고 쉰들러가 떠나던 날,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리지 못했다며 자책하는 쉰들러를 사람들은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이 곧 세계를 구하는 것"이라는 탈무드의 격언으로 위로한다. 그는 세계를 구했는가? 물론 그렇지는 않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구한 1100명의 사람 중 누군가는 그를 기억하고, 새로운 삶과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을 것이다. 또한 그의 이야기는 책으로, 영화로 전해져 다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되새기고 또 되새겨지고 있다. 그는 어쩌면 세상을 구했는지도 모른다.

이준형 토톨로지 대표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19.07.05  09: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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