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일본 경제사업성이 한국에 대한 수출관리 규정 변경을 통해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를 비롯해 리지스트와 에칭가스 등 3개의 수출 규제에 돌입한다고 발표한 가운데, 양국 관계가 경제를 넘어 모든 영역에서 격렬하게 충돌하는 모양새다.

한국 정부는 일제 강점기 시절 징용 노동자 문제로 촉발된 일본 정부의 경제제재가 WTO 협정 위반이라고 반발하고 있으며, 시민들 사이에서는 일본 제품 불매 운동 바람까지 감지되고 있다. 일본은 그러나 추가 체재 가능성을 언급하며 압박의 수위를 올리는 분위기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본의 경제제재는 사실상 보복조치라면서 “국제법에 위반된다”고 단언했다. 나아가 WTO에 제소할 것이라는 점을 밝히는 한편 “국제법 및 국내법상 조치 등으로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유연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점도 확인됐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최근 일본의 경제제재를 두고 “우리의 가장 아픈 곳을 때렸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이에 대비한 롱(long) 리스트를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제제재가 국내 반도체 산업의 국소를 찔렀다는 점에서, 국내 주요 반도체 기업의 공장이 위치한 경기도에도 비상이 걸렸다. 경기도는 현재 일본의 경제제재로 피해를 입을 기업들을 전수조사하는 한편 실질적인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정부의 대응과는 별도로 민간에서는 불매 운동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현재 SNS 및 온라인 공간에서는 일본 여행을 취소하거나 일본 상품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물론 관련된 ‘인증샷’까지 나오며 반일감정이 넘실거리고 있다. 누리꾼들은 한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일본 기업의 명단을 정리해 공유하는 등 발 빠른 행보에 나서고 있다.

소재 분야의 급소를 노린 일본의 행태를 반복하기 위해, 이번 일을 계기로 관련 산업의 자체적인 체력을 키우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4일 업계 등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제조업 르네상스 로드맵의 소재부품 개발에 총 6조원을 투입해 새로운 신성장 동력을 찾는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미 1조원은 예비타당성조사를 마쳤고, 2021년부터 6년간 5조원을 투입하는 것이 골자다.

일본의 경제제재가 생각보다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낙관론도 나온다. 실제로 국내 반도체 및 전자 IT 업계에 따르면, 일본의 소재 수출이 원만하지 않아도 당장 버틸 수 있는 재고는 충분하다는 평가다. 일본이 7월 말 참의원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전략적인 접근으로 경제제재 카드를 빼들었으나, 선거가 끝나는 한편 미중 무역전쟁 휴전 흐름에 계속 역행하기는 어렵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중간재 수출에 특화된 국내 기업의 타격이 심할수록 미국 기업도 피해가 커지기 때문에, 일본이 적절한 수준에서 제재를 멈출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물론 한국에 대한 경제제재가 이어지면 일본 기업도 피해를 볼 수 밖에 없다.

일본의 경제제재를 두고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가운데, 전선의 확장 가능성도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당장 일본이 추가 제재를 검토하고 있다. 산케이신문은 4일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국에서 배제하며 사실상 대부분의 수출을 통제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이렇게 되면 한일 두 나라의 경제전쟁은 일종의 전면전으로 치닫을 수 밖에 없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