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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인사이드] TV 시대의 CEO, 아이아코가'카리스마' 전문 경영인의 상징, 파산직전 크라이슬러 살려내
   
▲ 피아트크라이슬러 자동차는 아이아코카가 크라이슬러뿐 아니라 자동차 산업 전체의 위대한 지도자였다고 애도했다.   출처= ClickOnDetroit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리 아이아코가가 포드자동차와 크라이슬러의 경영자가 되기 훨씬 전에도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은 기업 지도자들은 있었다. 존 D. 록펠러, 월트 디즈니, 에스테 로데, 헨리 포드 같은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그러나 아이아코가는 빠른 시간에 기업 명성을 드높이고 폭넓은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며, 이른바 앤디 워홀(대중미술과 순수미술의 경계를 무너뜨리 미국 팝아트의 선구자) 시대의 최고 경영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회사의 고용 사장이 이사회를 주무르고 소비자와 정가를 상대로 능히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온 세상에 보여준 인물이다.

1980년대 크라이슬러를 거의 파산 상태에서 구해낸 것으로 유명한 미국 자동차 산업의 아이콘 리 아이아코카가 94세로 세상을 떠났다. 아이아코카의 막내 딸은 그가 2일(현지시간) 자연사했다고 확인해 주었다.

1924년 10월 15일 펜실베이니아 앨렌타운에서 이탈리아계 이민자 부모에게서 태어난 리도 앤서니 아이아코카는 뒷 날 미국의 두 주요 자동차 회사의 경영자가 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그는 포드 머스탱(Mustang)과 크라이슬러 미니밴 개발의 주역이다.

아이아코카는 1946년부터 포드 자동차에서 일하면서 포드의 주력 자동차인 머스탱의 개발을 주도했다. 1970년에 포드의 회장까지 올랐으나 1978년에 헨리 포드 주니어에 의해 해고되었다.

아이아코카는 1984년 자서전에서 "이민자의 아들로 삶을 시작했으며 포드자동차의 사장까지 올랐다"고 썼다.

"마침내 그곳에 도착했을 때, 나는 세상의 꼭대기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때 운명이 나에게 말했다. '기다려. 아직 안 끝났어. 이제 에베레스트 산에서 쫓겨나는 기분이 어떤 지 알게 될 거야!'”

   
▲ 머스탱의 아버지로 불리던 포드 시절의 아이아코가(왼쪽).    출처= LA Times

포드에서 해고된 그는 그 해에 크라이슬러사에 영입되었고, 이듬해인 1979년에 회사의 CEO가 되었다. 그리고 그가 그 회사를 파산 일보 직전에서 구해낸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아이아코카는 미 재무부가 은행이 크라이슬러에 15억 달러를 대출해 줄 것을 보장하게 하라고 의회에 촉구했다. 크라이슬러는 1980년대 초 잇따른 경기침체에서 살아남기 위해 구제 금융이 필요했다. 아이아코가의 지휘 아래 크라이슬러는 대출금을 조기에 상환했고, 재무부는 구제금융의 일환으로 받은 주식으로 큰 돈을 벌었다.

닷지 에어리스(Dodge Aries)와 플리머스 리라이언트(Plymouth Reliant) 등, 소위 K-카 시리즈로 불리는 연비 좋고 가격 경쟁력을 갖춘 자동차를 잇따라 선보이면서 크라이슬러는 다시 업계의 강자로 복귀했고 이익을 내기 시작했다.

아이아코가는 아시아와 유럽 국가들이 미국 자동차 시장에 진출하면서 미국 시장의 상당 부분을 잠식하기 시작한 시대에 크라이슬러를 이끌었다.

미국 소비자들은 크라이슬러 TV 광고 시리즈에서 그가 직접 출연해 "더 좋은 차를 찾을 수 있다면, 그 차를 사십시오”라고 말한 것을 가장 잘 기억할 것이다.

1986년 월남전 영화 <플래툰>(Platoon)이 나중에 비디오로 출시되었을 때, 첫 부분에 군용 지프 옆에 서 있는 아이아코가가 “전쟁을 위해 또 다른 지프를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헌사가 나온다. 그는 근엄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은 대사로 장면을 마무리한다.

"지금까지 리 아이아코가였습니다.”(I’m Lee Iacocca)

아이아코가는 기업 지도자의 이미지를 점잖은 골퍼에서 열심히 일하고 부지런히 파티를 여는 일꾼으로 바꾼 사람이기도 하다. 미시간대학교(University of Michigan) 자동차연구센터 명예회장인 테이비드 E. 콜은 "골프를 치는 것은 그의 모습이 아니다. 그는 오직 일에만 관심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제럴드 마이어스 전 아메리칸 모터스(American Motors)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그의 자아는 너무 거대해서 그와 반대 입장에 서면 압도되고 만다"고 말했다.

그는 1992년에 크라이슬러에서 은퇴했다. 그러나 1995년, 아이아코가는 그가 스톡 옵션을 행사하는 것을 불법적으로 방해한 혐의로 크라이슬러를 고소했다. 그러자 회사는 회사를 인수하려는 억만장자 커크 커코리안에게 기밀 정보를 주었다며 아이아코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크라이슬러와 아이아코가는 결국 1996년에 서로 합의로 소송을 마무리했다.

아이아코가는 자서전에서 이탈리아 성인 리도(Lido) 대신 리(Lee)라는 성을 사용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때가 1950년대였고 그는 포드 직원들에게 트럭 판매법을 가르치면서 동부 해안 곳곳을 여행하고 있었다.

"업무 차 장거리 전화를 많이 걸어야 했다. 그 시절에는 직접 다이얼을 돌리는 전화가 없었고 항상 교환원을 거쳐야 했다. 교환원들이 내 이름을 물으면 나는 '아이아코가'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 그들은 철자를 어떻게 써야 할지 전혀 몰라 항상 이름을 올바로 쓰게 하려면 실갱이를 벌여야 했다. 그러자 그들이 내 성을 물었고 내가 '리도'라고 말하면 비웃곤 했다. 마침내 나는 결심했다. ‘리도라는 이름 따위가 뭐가 중요해?’. 그 이후부터 나는 내 자신을 ‘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피아트 크라이슬러 자동차는 성명을 통해 아이아코가의 사망 소식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크라이슬러를 위기에서 구해냈고 진정한 경쟁력을 갖춘 회사로 만드는데 역사적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우리 회사뿐 아니라 자동차 산업 전체의 위대한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기업 정치인(business statesman)이자 자선가로서 심오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포드자동차의 빌 포드 회장은 “아이아코가는 진정한 영웅이었으며 포드에게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고 말했다.

홍석윤 기자  |  syhong@econovill.com  |  승인 2019.07.04  13:4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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