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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진 칼럼 : CEO만 보세요] ‘언제 한번’의 유효기간은 언제까지일까?
   

한국 사람들은 성인이 되면서부터 모두가 거짓말쟁이가 된다.

“언제 한번 소주 한잔 해요.”

“언제 한번 점심 먹어요.”

“언제 한번 한 게임 합시다.”

“언제 한번 산에 같이 가요.”

가장 자주 하는 거짓말이 ‘언제 한번’이 아닐까? 공적인 관계건 사적으로 만나는 사이이건 만나기만 하면, 아니 굳이 만나지 않더라도 입버릇처럼 자주 하게 되는 말이다. 친한 관계이든 아니든 간에 그냥 헤어지자니 섭섭해서 ‘언제 한번' 같은 말로 여운을 남긴다. 사실 말한 사람들이 ‘언제 한번’ 하자고 한 약속을 잘 지키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워낙 많이 쓰다 보니 하는 사람도 ‘언제 한번’이 언제인지 규정하지 않고, 듣는 사람도 그 ‘언제 한번’이 언제가 될지 크게 궁금해 하지 않는다.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게 되면서 ‘언제 한번'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렸다. 어느 정도 경륜이 쌓이기 전까지는 만나기 힘든 사람들과 만날 구실조차 만들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약속이라고 하기도, 아니라고 하기도 힘든 이 말을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하든 저쪽에서 하든 ‘언제 한번'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를 절호의 기회로 삼고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무슨 핑계라도 만들어서 만나고 싶었는데, ‘언제 한번'은 놓칠 수 없는 계기였다. 무턱대고 약속을 잡자고 하면 서로 부담되기도 했지만 ‘언제 한번'이라는 말은 언제 어디서나 자연스러웠다.

 

‘언제 한번'의 마법으로 우연을 필연으로 바꿔라

한국인의 습관적인 멘트 ‘언제 한번’이 어느 정도의 유효기간을 가질 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정해 놓은 기간은 2주였다. 우연한 연락이나 만남에서 얻어낸 ‘언제 한번’이라는 말만큼 좋은 핑계거리가 없었다. 다이어리에 메모해서 기억해 뒀다가 2주를 넘기지 않은 적절한 시점에 반드시 다시 연락해서 제대로 된 약속을 잡았다. 

서먹한 관계일 때, ‘언제 한번'이라는 말을 얻었다고 다음날 바로 연락하는 것도 부담이다. 또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애써 기억을 되살려 내는 것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즉각적이지도 않고 너무 길지도 않게 적절하다고 생각한 시점이 열흘에서 2주 이내 정도였다. 

스쳐 지나가듯 한 약속이라도 내뱉은 이상 꼭 지켰다. 절대 빈말하지 않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어떤 약속도 철저히 지키는 신뢰 가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내가 한 ‘언제 한번'은 그냥 남들이 하는 ‘언제 한번'과는 달랐다. 스스로 정한 그 기간 내에 제대로 된 약속을 잡는 것이 약속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었다.

오며 가며 빈말만 주고 받는다면 제대로 된 관계라고도 할 수 없다. 우연히 스쳐 지나가던 인연에서 제대로 된 만남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관계의 발전을 의미한다.  만날 시점이 정해지면 상대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 제대로 된 만남이라는 결실이 꼭 필요하다.  ‘만남’은 그 사람에 대한 관심의 결과이자 또 다른 시작이다. 우연을 필연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히 수반되어야 한다. 

언제 한번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또 듣는 사람도 그 약속이 제대로 실행이 될 지에 대해서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가볍게 하는 말이고 별다른 구속력이 없는 말이기도 해서 책임을 질 소지도 잘 없다. 하지만 내가 원칙으로 생각해 왔던 것은 실행으로 옮길 수 없는 말이라면 이런 류의 가벼운 말이라도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 시내 출퇴근시간에 웬만한 도로는 거북이걸음이다. 가다 서다 반복하는 짜증나는 상황이 매일 같이 반복된다. 내부순환도로, 강변북로, 동부간선도로 같은 자동차 전용도로를 번갈아 타고 내리며 출퇴근을 했는데 거의 하루걸러 크고 작은 교통사고를 목격하곤 했다. 작은 접촉사고나 고장으로 인해 흐름이 꽉 막혀 버린다. 좌우에서 차들이 비집고 들어오는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운전대 앞에서는 야생마처럼 거칠어진다. 

 

시간이 남아돌아서 남에게 신경 쓰는 게 아냐

그런데 희한하게도 끼어든 앞차가 비상등을 두세 번 깜빡여 주면 울컥했던 마음이 마법처럼 씻겨 나간다. ‘그대의 차량 앞 공간으로 들어가게 해 줘서 감사하고 미안하다’는 뜻을 나타내주는 신호다. 같은 상황이라도 비상등을 켜지 않고 그냥 들어와 떡 하니 앞에서 버티고 달리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지나가는 말로 얘기했는데 들은 사람은 시간을 투자해서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주는 사람이 있다. 시간이 남아 돌아서 남의 일에 신경 써주나 싶지만 그런 사람들일수록 살면서 시간 낭비라는 걸 하는 법이 없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나중에 큰 사안을 말할 때 아무에게나 하지 않는다. 작은 부탁이라도 인연이 바탕이 된 사람에게 하게 된다. 

기업 대 기업의 일은 주로 계약에 의해 이루어진다. 문서로 되어 있건 구두이건 간에 청약과 승낙이 있다. 서로 약속한 대로 진행하고, 어느 한 쪽에서 합의한 대로 제대로 진행하지 않을 경우는 배상 한다. 기업이 아니더라도 사람들 간에는 거래 관계가 대부분이다. 쇼핑, 식당, 대중교통은 물론 집 안에서 가스, 물, 전기를 사용하는 일상 생활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와 개인간의 거래에 의한 것이다.

하지만 언론과의 커뮤니케이션 관계는 이런 계약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잘 없다. 뉴스가 때로는 계약관계에 의해서 제공되기도 하지만 그건 특수한 상황일 때다. 계약 관계에 의해서 뉴스가 생산된다면 그 뉴스는 볼 가치도 없다. 때문에 뉴스의 생명은 계약이 아닌 그냥 관계에서 나온다. 아무리 취재에 능한 사람이라도 혼자 모든 것을 하는 경우는 없다. 주위에 수많은 취재원들이 있기에 가능하다. 작은 사건사고 같은 경우도 사고 기록 열람이나 사고현장을 목격한 사람들 즉 취재원이 있다. 취재가 있어야 뉴스가 나올 수 있다.

‘뉴스는 뉴스일 뿐이요, 남의 일이다’는 사람은 이제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매일 꼼꼼히 본다고 해서 개인의 생활이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내 일 같이 느껴지는 세상이다. 삼성과 애플이 새로운 스마트폰 모델을 내놓기 무섭게 현실생활로 파고든다. 해외에서 새로운 트렌드의 어떤 제품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면 장소와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아마존 사이트 몇 번 클릭하면 손 안에 쥘 수 있다. 서울역에 가는 만큼이나 인천공항 문턱도 낮아졌다. 

언론에서도 경제, 산업이 날이 갈수록 비중이 높아지고 있기에 언론과 커뮤니케이터는 더욱 가까운 관계가 될 수 밖에 없다. 윈윈을 생각하게 된다. 기업에 이로우면서 언론도 새로운 사실의 보도에 입각한 본질적인 역할에 충실하게 되는 그런 관계가 좋다. 서로의 입장이 겹치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순식간에 진행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한 쪽은 들추어 내기를 좋아하고 다른 쪽은 덮어야 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일 경우도 많다. 그래서 둘 사이는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이고 티격태격이 늘 존재한다. 큰 기업의 이슈들도 항상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은 못하고 작은 회사의 크지 않은 일도 가끔은 조명을 받는 경우가 있다. 그런 배경에는 다 관계가 있다. 

관계의 기본을 유지하는 것이 절대 언어 세 가지다. 다른 관계도 마찬가지지만 세 가지 절대 언어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는 말을 전제로 깔고 시작하면 관계는 유지 발전하게 된다. 사랑한다는 표현은 직접 말로 하기는 힘들고 행동으로 보여 줄 수 밖에 없다면 절대 언어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20여 년 커뮤니케이터 생활에서 가장 많이 한 말도 바로 이 두 가지다.

“미안하지만 잠깐 시간 좀 내 주시겠습니까?”

“회의 중에 연락 드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너무나 기본적인 톤앤매너이고 사실 ‘이렇게 하지 않는 사람도 있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은 경우도 많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전 직장 선배라는 이유로, 친해졌다는 이유로 막 대하는 사람들을 의외로 많이 봐왔다. 친구처럼 편해서 막 대한다는 사람이 많은데, 죽마고우로 자라온 친구지간에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여보세요, 어 김 기자님, 있잖아요 ….”

“잠깐 잠깐만요. 저 지금 회의 중이라서요….”

“예 ….”

이렇게 통화가 끝나버리면 다시 하기가 부담된다. ‘진짜 바빠서 못 받는 것인지, 아니면 귀찮거나 싫어서 핑계를 댄 것인지’ 괜한 생각을 하게 된다. 사소한 차이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절대언어 세 가지는 관계를 유지 발전시키는 원동력이자 베이스다. 언제 한번 있을 지 모를 사소한 것도 잊지 않는 관심과 노력 그리고 상대를 배려해주는 절대 언어 3종 세트가 바로 커뮤니케이션의 출발점이 되겠다.

구동진 칼럼니스트·홍보인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19.07.16  15:3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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