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바이오헬스케어 혁신정책센터(CHIP)는 1일부터 2일까지 쉐라톤 서울 팔레스 강남 호텔에서 ‘2019 CHIP 해외 자문단 초청 워크숍’ 개최한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지웅 기자

[이코노믹리뷰=최지웅 기자]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혁신에 있어서 리더다. 그러나 빅파마가 주도하는 혁신은 없다. 한국에서 큰 제약회사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의 유럽 민관협력 담당인 번드 스토와서(Bernd Stowasser) 박사는 1일 쉐라톤 서울 팔레스 강남 호텔에서 열린 ‘2019 CHIP 해외 자문단 초청 워크숍’에서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이 혁신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현실상 혁신은 말처럼 쉽지 않다. 지난 20년간 국내 제약사들이 개발한 신약은 29종에 불과했다. 이중 단 한 번이라도 100억 이상의 연 매출을 달성한 블록버스터급 신약은 5종뿐이었다. 주로 제네릭과 같은 복제의약품 개발에만 의존해온 탓이다. 미국과 유럽 등 제약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날 스토와서 박사는 국내 제약업계가 이 같은 고민에서 벗어나 단번에 혁신을 꾀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바로 '혁신의약품 이니셔티브(IMI)'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이다.

IMI는 유럽연합집행위원회와 유럽의약품산업협회(EFPIA)의 회원사들이 공동으로 출자한 바이오헬스케어 분야의 세계 최대 민관협력 파트너십(Public Private Partnership, PPP)이다. 민간기업이 단독으로 개발하기 어렵거나 사회적으로 필요한 신약 연구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2008년 처음 시행됐다.

시행 초기에는 의약품 분야에서 효과적이고 안전한 혁신신약 생산을 목표로 의약품 개발 프로세스의 효율성과 효과를 개선하는데 주력했다. 이를 첫 번째 프로그램인 'IMI1'으로 호칭한다. IMI1은 알츠하이머와 같은 신경계 질환을 비롯해 당뇨병, 폐질환, 종양학, 염증, 결핵, 비만 등에 특정 건강 문제에 초점을 뒀다. 2008년 5월 첫 연구를 제안한 이후 2013년 말까지 59개의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그동안 투입된 예산만 20억 유로에 달한다. 예산의 절반은 유럽연합의 7차 기본 계획(FP7)에서 나왔다. 나머지는 EFPIA와 회원사들의 현물 출자 형태로 지원됐다.

스토와서 박사는 "IMI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는 산업, 학계, 중소기업, 환자 그룹의 전문가들을 모아 PPP 모델의 성공을 시연했다"며 "IMI는 환자와 사회의 요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필요한 산업의 발전을 가속하기 위한 도구와 자원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의 유럽 민관협력 담당인 번드 스토와서 박사가 이날 행사에서 IMI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지웅 기자

IMI1의 성공적인 안착으로 2014년 7월 두 번째 프로그램인 'IMI2'가 공식 출범했다. IMI2는 내년까지 운영되며, 새로운 항생제와 같은 차세대 백신, 의약품 및 치료제 등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해당 기간 약 32억 유로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IMI 프로젝트는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법이 부족하거나 공중 보건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큰 질병 영역에 집중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항생제 내성과 에볼라 관련 질병에 대한 전담 프로그램을 통해 전염병에 관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또한 약물 개발이 다른 분야보다 더 오래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드는 분야인 뇌 질환은 알츠하이머병, 정신분열병, 우울증, 만성 통증 및 자폐증에 관한 프로젝트로 관리하고 있다.

현재 IMI는 또 한 번의 진화를 앞두고 있다. 3번째 프로그램인 'IMI3'가 2021년부터 본격 가동된다. IMI3는 면역학, 디지털 헬스, AMR, 규제, 유전자 및 세포치료 등을 중점적으로 연구할 예정이다.

스토와서 박사는 "IMI는 의약품 혁신을 이루기 위해 신약 파이프라인의 액셀러레이터 역할을 수행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라면서 "한국 정부와 연구자들이 유럽과 함께 IMI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잡길 바란다"라고 강조했다.

국내 제약 업계도 IMI 프로젝트의 필요성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분위기다. 실제로 5년 전부터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 전문가들이 모여 IMI 프로젝트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펼쳤다. 일각에서는 한국이 직접 IMI와 같은 모델을 만들어 운영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하지만 좀처럼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어영부영하다 보니 어느덧 'IMI3'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또 수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내년 초부터 예산 집행을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해야 IMI3에 늦지 않게 합류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이날 채수찬 KAIST 바이오헬스케어 혁신정책센터장은 한국이 2021년부터 시행되는 IMI3 프로그램에 동참할 수 있도록 정부와 업계 종사자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촉구했다. 

채 센터장은 "보건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자원부 등 여러 관련 부처 담당자들과 지속적으로 논의를 하고 있지만 (IMI 프로젝트 진행이)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면서 "선거철이 가까워지면서 마음은 콩밭에 가 있고, 혼자서는 역부족인 상황"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어 그는 "2021년에 들어가지 못하면 또 7~8년을 기다려야 한다"면서 "산업 종사자들이 자신들의 영역만 생각하지 말고 국가 전략적 차원에서 IMI 프로젝트가 필요하다는 여론을 형성해 정부가 움직일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