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작가의 데뷔작인 소설 <표백> 속 ‘나’는 복학생이다. 조금 엉뚱하기도 하고, 아직 철도 덜 든 데다, 복학생 특유의 허풍도 아직 남아 있는 탓에 기성세대의 ‘너도 크면 알아’, ‘내가 너 때는 말이지’, ‘열정과 패기를 가지고 살아야 돼’ 같은 말들이 아직 불편한 사람이다. 이런 모난 성격 탓에 결국 나는 사고를 치고 만다. 바로 취업 선배들과의 대화 행사 도중 소위 꼰대짓을 하는 선배들에게 바른 말을 하고 만 것.

이 사건으로 나는 선배들에게 단단히 찍혀버리고 만다. 하지만 그의 이 모습을 보고 새로운 친구들이 접근한다. 세연, 휘영, 병권, 추가 바로 그들. 바른 말 하는 나에게 접근한 걸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이들도 뭔가 세상과는 조금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특히 이중에서도 후배 정세연은 무언가 독특하다. 학교 내 모든 학생들의 부러움을 사는 ‘21세기 지도자 장학생’이었고, 얼굴도 예쁜데다, 사람들의 마음을 쥐락펴락 하는데도 능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세연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은 채 말이다. 사건을 조사한 경찰이 내린 결론은 실족사. 그것도 깊이 50cm에 불과한 학교 연못에서 일어난 일이다. 도무지 나로서는 해석이 안 되는 죽음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5년 뒤, 좌충우돌 끝에 공무원이 된 나는 사실 그녀의 죽음이 자살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더불어 나와 어울리던 친구들이 하나 둘 그녀의 뒤를 따라 자살을 준비해왔다는 사실까지도 말이다.

그럼 이들은 왜 자살을 하려고 하는 걸까? 이들이 자살로 얻으려는 것은 무엇일까? 이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살 선언은 완성된 사회에서 표백 세대가 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저항 운동이다. 그것은 극단적이면서 저항이 불가능한 사회에서 유일하게 논리적으로 기능하는 저항운동이기도 하다.” 표현은 꽤 거창하지만 결국 답은 이게 아닐까 싶다. 다시 말해, ‘이 세상은 불평등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사회적 불평등의 관점으로 볼 것이냐, 개인의 문제로 볼 것이냐에 따라 입장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회적 불평등의 관점이야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루었으니 이번 글에서는 조금 제쳐두고, 후자의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바로 ‘노력해도 얻을 수 없음’을 개인의 문제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인 쇼펜하우어는 이를 꽤 효과적으로 설명한 인물이다. 그는 이러한 문제가 의지의 무한함과 충족의 불완전성에서 나오는 괴리 때문에 일어난다고 보았다. 조금 쉬운 표현으로 설명해보자. 의지는 말하자면 일종의 욕망에 해당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욕망은 늘 충족되기 어렵다. 또한 충족되었다고 하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욕망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게 마련이다. 고통 또한 마찬가지이다. 간신히 벗어났다 싶으면 또다시 새로운 고통을 마주하게 될 뿐이다. 쾌락이나 행복은 고통이 없어졌을 때 잠시 찾아오는 것에 불과하다. 때문에 인생은 고통이며, 이 세계는 최악이다.

그럼 자살은 옳은 답일까? 이와 관련해서는 <표백> 속 등장인물들도 명백한 답을 내리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는 세연을 따라 자살을 선택하고, 또다른 누군가는 자기 나름의 답을 내린다. 휘영이 그렇다. “자살 선언에 대한 내 반론의 핵심은 모든 사람이 위대한 일을 할 필요는 없다는 거야. 세연은 세상을 바꾸고 사람들의 존경을 얻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무가치한 것처럼 얘기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잖아.”

쇼펜하우어는 우리가 이런 어려움을 벗어나는 하나의 선택지로서의 ‘자살’은 잘못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그 이유로 자살이라는 선택지가 의지 자체를 없애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환생 혹은 윤회를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만약 윤회라는 것이 없다면 자살은 옳은 선택지 혹은 해결책일까? 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이 책을 쓴 장강명 작가는 자기 나름의 답을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통해 전달하고 있지 않나 싶다. 세연과 그의 친구들이 자신들이 자살을 하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한 홈페이지 와이두유리브의 공지사항을 통해서 말이다.

“안녕하세요. 와이두유리브닷컴 사이트 운영자 메리입니다. 그동안 많은 회원님이 문제점으로 지적해주신 서버 속도 문제를 해결하고 회원 등급제를 도입하기 위해 사이트를 완전히 개편하기로 했습니다. (중략) 많은 회원이 정치 게시판과 문화 게시판 등을 새로 개설해줄 것을 요청하고 계시지만 이는 사이트 설립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판단 아래 만들지 않기로 했습니다. 다만 이 같은 주제를 모두 다룰 수 있는 ‘잡담 게시판’을 하나 둘 생각입니다. (중략) 빠른 시간 안에 정상화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