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을 기점으로 전격 휴전에 돌입하는 모양새다. 두 나라는 상대국을 향한 고관세 부과 정책을 중단하는 한편 큰 틀에서의 협상 재개를 29일 선언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정상회담 직전 화웨이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것이라 공언한 가운데 미국이 화웨이 제재를 풀어주려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화웨이의 행보에 시선이 집중되는 가운데 국내 경제계의 반응은 일단 '다행'이라는 쪽으로 좁혀지고 있다.

▲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주가 발언하고 있다. 출처=화웨이

드디어...화웨이 '방긋'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G20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을 만난 후 기자회견을 통해 "미국 기업과 화웨이의 거래를 허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중국 화웨이의 제품을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화웨이도 마찬가지라는 점을 들어 전격적인 유화 제스쳐를 보여준 셈이다.

중국의 기술굴기를 차단하려는 목적으로 화웨이에 대한 압박을 최고조로 올리던 미국이 돌연 이를 철폐한 것은 놀랍다는 평가다. 미국은 미중 무역전쟁의 흐름이 이어지며 집요할 정도로 화웨이를 노렸기 때문이다.

화웨이는 미중 무역전쟁의 시작부터 일종의 희생양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시작은 특정 기업에 대한 각 국의 강력한 규제다. 당장 미국 반도체 회사 마이크론이 유탄을 맞았다. 푸젠성에 있는 푸저우(福州)시 중급인민법원이 지난해 7월 3일 마이크론 메모리 반도체 제품 26종의 판매를 금지한다고 판결한 것이 시작이다. 즉시 미국이 받아치며 푸젠진화는 D램 양산을 최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두 나라가 한 방씩 주고 받은 셈이다.

화웨이 사태가 심각해진 전초전은 ZTE 사태다. ZTE는 지난 2017년 3월 이란과 북한에 대한 수출 금지령을 위반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미국은 지난해 4월 16일 ZTE를 대상으로 7년간 미국 기업과 거래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제를 발표하며 압박했고 ZTE는 크게 휘청였다. ZTE는 5월9일 홍콩증권거래소에 '회사의 영업활동이 중단됐다'는 자료를 보낼 정도로 존립을 위협받았다.

자연스럽게 ZTE와 유사한 통신 사업자 화웨이가 논쟁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미국 하원은 2012년 10월 '중국 통신업체 화웨이 ZTE 관련 국가안보 문제 조사 보고서'를 통해 사실상 화웨이를 북미 시장에서 몰아내는 등 오랫동안 반감을 보인 바 있다. 그리고 미중 무역전쟁과 동시에 미국은 화웨이의 중국 정부 유착설을 제기하며 대대적인 규제에 나서기 시작한다.

화웨이는 몸을 낮췄다.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주는 지난해 7월 직원들에게 보내는 서신을 통해 "추가 미중 무역전쟁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화웨이는 퀄컴으로부터 5000만개의 반도체를 구입했다"면서 "(미국과 중국은) 적이 아닌, 친구다"고 말했다.그는 심지어 "중국은 더 발전하기 위해 관세장벽을 내려야 한다"면서 "직원들은 쓸데없는 반미감정을 부추기는 행동 등을 하지 말아야 한다"며 몸을 낮췄다.

지루한 신경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은 동맹국들을 움직여 반 화웨이 전선 동참을 독려했다. 미 언론은 지난해 11월 23일 “미국이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 동맹국가 관계자들과 통신사 경영진들에게 손을 내밀었다”며 “화웨이 통신 장비를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압박, 화웨이의 설명 패턴이 반복되는 가운데 지난해 G20 회의를 통해 미중 무역전쟁이 일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고, 화웨이를 둘러싼 논란도 잦아드는 듯 했다. 그러나 캐나다 정부가 런 창업주의 딸인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을 체포하며 사태는 다시 출렁이기 시작했다.

반격이 시작됐다. 화웨이는 유럽과의 유대를 바탕으로 미국의 주장에 반박하는 한편, 법적 공방을 불사했다. 실제로 3월 7일 화웨이는 미국 국방수권법(NDAA) 제 889조가 위헌이라고 미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궈 핑(Guo Ping) 화웨이 순환 회장은 “미 국회는 지금까지 화웨이 제품 제한을 위한 어떠한 근거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화웨이는 어쩔 수 없이 법적조치를 통해 대응하기로 했다”며 “해당 제한 조치는 위헌일 뿐 아니라 공정 경쟁에서 화웨이를 배제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미국 소비자들이 손해를 보는 것이다. 화웨이는 법원이 신뢰할 수 있는 판결을 내려 미국 국민과 화웨이 모두에게 혜택을 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영국 등 유럽이 화웨이 장비를 속속 채택하는 등 전선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나아가 화웨이는 언론전을 통해 미국의 제재는 부당한 조치며, 이는 글로벌 ICT 기술발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주장을 이어갔다.

미국은 최후의 카드를 꺼냈다. 화웨이와 자국 기업의 거래를 차단하며 최고 수준의 압박을 시도했다. 시작은 구글이다. 구글이 최신 안드로이드에 대한 화웨이의 접근을 차단한다고 밝힌 가운데, 화웨이의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전략은 크게 삐걱거릴 수 있다는 말이 나왔다. 인텔과 퀄컴 등이 화웨이에 칩과 부품을 중단하는 사례도 나왔고 영국의 암도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일본의 파나소닉과 대만의 TSMC는 여전히 화웨이의 편에 섰으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주장이 우세했다.

화웨이는 버티는 쪽을 선택했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1일 화웨이가 구글 안드로이드 배제에 대비하기 위해 독자 운영체제 훙멍의 존재를 공식 인정했다고 보도했다. '정상참작이 가능한 환경에서만 사용될 것'이라는 전제가 붙기는 했으나 화웨이가 백업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확인된 셈이다. 러시아와의 협력도 강화됐다. 러시아 통신회사 MTS는 2020년까지 화웨이 통신 장비를 통해 5G 네트워크 인프라를 구축하기로 결정했다.

중국 정부도 움직였다. 뉴욕타임스는 9일 중국 당국이 지난 4일과 5일 글로벌 기업을 불러 미국의 중국 제재 방침에 협조하지 말라는 경고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여기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포함됐다.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며 미국의 화웨이 배제 방침이 정해지는 한편 ‘하나의 중국’ 개념까지 흔들리는 가운데 중국 당국이 초강수를 뒀다는 평가다.

화웨이는 최근까지 미중 무역전쟁의 희생양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쳤다.  리우핑(Song Liuping) 화웨이 최고법률책임자는 최근 중국 선전 화웨이 본사에서 가진 간담회를 통해 혁신의 기틀이 되는 지적재산권을 정치화하는 것은 세상의 진보를 위협하는 행위라고 비판하며 "정치인들이 지적재산권을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특허 보호 시스템의 신뢰를 파괴하는 것"이라 비판했다. 최근 불룸버그 등 서구 외신을 통해 화웨이와 중국 정부의 밀착설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가운데 화웨이를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화웨이는 자사 특허를 확보하는 것 외에도, 다른 회사의 지적재산권을 합법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60억달러 이상의 로열티를 지불하고 있으며, 이 중 80%는 미국 기업에게 지급됐다는 설명도 했다. 송 리우핑 화웨이 최고법률책임자는 라이선싱과 관련해 화웨이가 특허 포트폴리오를 무기로 삼지 않고, 오히려 개방적이고 협조적인 태도로 FRAND(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인) 원칙을 준수한다고 말하는 한편 "화웨이는 언제나 5G를 비롯한 기술을 미국은 물론, 전 세계와 공유하기를 원한다. 우리 모두가 연대한다면 인류를 위해 함께 산업을 발전시키고 기술을 진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리우핑(Song Liuping) 화웨이 최고법률책임자가 발언하고 있다. 출처=화웨이

안심하기는 이르다?
미중 두 정상이 G20을 기점으로 담판을 통해 무역협상 재개를 선언하는 한편, 미국의 화웨이 제재 방침이 풀릴 조짐을 보이자 글로벌 경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기존 제재로는 화웨이와 거래하는 미국 기업의 피해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던 상황에서 미국이 한 발 물러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를 바탕으로 화웨이는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할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도 가슴을 쓸어내리는 분위기다. 삼성전자의 경우 화웨이 스마트폰이 미국의 제재로 휘청일 경우 반사이익을 받을 수 있으나, 더 큰 매출이 나오는 반도체에서는 악재가 예상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화웨이와 미국 기업의 거래가 정상화되면 큰 틀에서 이득이라는 평가다. 스마트폰 및 5G 통신장비 시장에서는 화웨이의 존재감에 주춤거릴 수 있으나, 화웨이에 부품을 제공하는 입장에서는 이득이다.

문제는 돌발상황이다. 두 나라의 무역전쟁은 휴전에 돌입했으나 '중국몽'을 중심으로 기술굴기를 추구하는 시 주석이 미국의 모든 무역협상 전제조건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고, 이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나오면 미국의 화웨이 제재는 재개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지난해 G20 당시에도 미국과 중국은 무역협상에 합의했으나 화웨이의 이란 제재를 이유로 미국이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을 체포, 평화는 단숨에 깨진 사례도 있다.

중국이 최근 미국 제재에 직면한 이란의 원유를 수입한 사실이 알려진 대목이 우려스러운 이유다. 두 정상이 큰 틀에서는 무역협상 재개에 합의했으나 완전한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한 상태에서, 이란이라는 키워드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비슷한 악몽이 시작된다면 화웨이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