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을 고조시키던 미중 무역전쟁이 G20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휴전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미중 두 정상이 협상에서 서로를 향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는 등 전쟁이 다시 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미국의 제재를 무시하고 이란산 원유 수입을 강화하면서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 우선 휴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무역협상 재개에 합의한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을 기점으로 극적인 타결점을 찾았다는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은 90분간 이어진 담판이 끝난 후 "(두 나라는) 다시 정상궤도로 돌아올 것"이라면서 "(시 주석과의 만남은) 훌륭했다"는 말을 남겼다. 두 나라는 서로를 향한 관세폭탄을 중지하는 한편 확전 자제를 통해 무역 정상화에 나서기로 합의했다.

두 나라의 극적인 합의는 이미 예고된 바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7일 미중 무역전쟁이 휴전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보이며, 미국과 중국 모두 추가 관세부과와 희토류 수출 제한 조치를 추진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로버트 라이저 미 무역대표부 대표와 류허 중국 부총리가 지난 24일 전화통화를 통해 정상회담의 의제를 잡는 과정에서 이러한 합의안이 도출됐다는 설명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이 정식 담판 직전인 28일 오후 비공식 회담을 가진 것으로 알려지며 무역전쟁 휴전에 대한 기대감은 더 높아졌다. G20에서 두 정상이 만나기 직전 실무자 선에서 굵직한 합의가 끝났고, 두 정상이 정식회담 직전 비공식 회담을 통해 업다운 방식의 합의를 공고히했다는 평가가 나왔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전쟁은 지난해 3월 22일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수입품 500억달러에 관세를 부과하며 시작됐다. 이어 중국의 대미 투자제한 등을 담은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확전되기 시작됐다. 중국은 지난해 4월 즉각 미국산 제품 8개 품목에 25%, 120개 품목에 15% 관세를 부과하며 맞불을 놨고 미국은 연속으로 관세폭탄을 던지며 판을 키웠다.

지난해 말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G20을 기점으로 두 나라는 휴전에 돌입하나 싶었으나 미국이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을 이란 제재 위반으로 체포하며 일이 틀어졌다. 이어 지난 5월 두 나라는 무역협상에 나섰으나 끝내 결렬됐고, 미국은 화웨이와 자국 기업의 거래를 제한하는 등 본격적인 제재 카드를 던졌다. 중국은 희토류 전략 무기화까지 검토하며 전면전을 준비한 바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경제를 넘어 글로벌 패권을 둘러싼 전투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두 나라의 전선이 경제는 물론 정치, 외교, 국방 등으로 크게 확대됐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홍콩의 송환법 반대 시위의 국제 이슈화다. 홍콩 시민들이 일방적인 당국의 송환법에 반대하며 100만명 이상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이 과정에서 미국이 홍콩 시민의 입장에 힘을 실어주는 등 미묘한 힘의 충돌이 벌어졌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송환법의 무기한 연기를 선언하고 시민들에게 사과했으나 홍콩 시민들은 '홍콩 독립'까지 외치며 격렬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국양제'를 기본으로 홍콩을 통치하던 시 주석의 리더십에 큰 타격이 왔고, 이는 미중 무역전쟁의 일부로 활용되며 미국이 가진 '하나의 압박 카드'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미중 무역전쟁은 경제에 국한된 싸움이 아니라는 뜻이다.

미국과 멕시코의 관세분쟁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멕시코 이민 문제와 관세 부과를 하나의 거래로 묶었고, 멕시코 정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미국과 중국 모두 '윈윈'을 선택했다는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중국과의 무역분쟁을 오래 지속시킬 경우 지지도에 악영향을 받을 수 있고, 무엇보다 자국 기업의 피해가 커지는 것도 부담스럽다. 최근 구글이 미 상부무에 화웨이와의 거래를 재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는 보도가 나온 행간이다. 나아가 거대한 단일 시장을 가진 중국의 매력은 여전히 크다. 결론적으로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과의 분쟁을 통해 얻을 것은 빨리 얻어내며 사태를 종결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거대한 단일 시장과의 거래도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절대권력 체계를 구축한 시 주석도 미국과의 분쟁이 계속되면 내부의 동요를 막을 수 없다. 천안문 광장 30주년, 홍콩 시위 등 민감한 정치적 논란까지 연결된 상황에서 빠른 해결이 필요했다는 평가다. 미국이 의례적 표현이라며 한 발 물러서기는 했으나 대만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는 등 동아시아 패권을 흔드는 것도 사전에 차단할 필요가 있다. 시 주석이 최근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만나 양국의 우의를 다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불씨는 '여전'
두 나라가 무역협상 재개를 선언했으나 아직 불씨는 여전하다는 평가다.

이번 담판을 통해 무역협상 재개에 나설 것으로 보이지만 두 나라의 입장이 극적으로 갈리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과의 담판에서 "우리는 공정한 무역협상을 원한다"면서 중국을 압박했다. 중국이 자국 기업에 대한 과도한 지원을 통해 일종의 유착관계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불공정한 무역을 추구하며 미국에 피해를 주고 있다는 기본적인 문제의식이다. 그러나 시 주석은 1971년 미중 수교의 마중물이던 핑퐁외교의 사례만 들어 트럼프 대통령의 비판에 확답을 피했다. 시 주석은 "중미 협력이 양국에 이익이 된다"면서 "마찰보다 대화가 좋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

두 나라가 상대를 향한 관세폭탄을 중지하기로 합의했으나, 추후 상황에 따라 언제든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G20 당시 벌어진 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G20 지도자들은 미국의 심기를 자극하지 않는 등 각별한 신경을 썼다. 보호무역과 지구 온난화 등 문제를 두고 미국이 민감해하는 이슈는 공동성명에 담지 않는 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체면을 살려주는 분위기가 감지됐다는 후문이다. 미중 무역전쟁의 휴전을 끌어내기 위해 미국에 명분을 주려는 포석이다. 

그 결과 휴전이 공표됐다. 세라 샌더스 당시 백악관 대변인은 G20 회의가 열렸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성명을 발표해 “미국과 중국은 90일 동안 지식재산권 보호와 비관세장벽, 사이버 침입, 절도 등 문제에 대한 구조적인 변화를 위한 협상에 나설 것”이라면서 20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부과하고 있던 관세율 10%를 25%로 인상하려던 계획을 보류한다고 밝혔다.

미중 무역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들며 일각에서는 퀄컴의 NXP 재인수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ZTE 제재에 나서는 한편 9부능선을 넘었던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까지 막아서자 중국은 퀄컴의 NXP 인수를 차일피일 미루는 전략을 구사했고, 결국 퀄컴은 NXP와 지분을 나누는 선에서 인수를 포기한 바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어도 퀄컴이 다시 NXP 인수를 추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이러한 가능성이 제기된 것 자체가 미국과 중국의 화해 분위기를 상징한다는 말이 나왔다.

미중 무역전쟁의 포성이 잦아들며 글로벌 경제가 모처럼 기지개를 켰으나 ‘호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캐나다가 미국의 요청으로 런청페이 화웨이 회장의 딸인 멍완저우 CFO를 체포하며 두 슈퍼파워 사이에 이상기류가 감돌았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멍 부회장이 지난 1일 캐나다에서 체포됐으며, 멍 부회장은 미국의 대이란 제재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은 현재 화웨이 장비가 이란에 제공되는지 여부를 조사하는 중이며, 만약 위반혐의가 확인될 경우 상당한 수준의 제재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아시아 기술증시는 화웨이 쇼크로 크게 휘청였다. 올해 G20을 통해 미중 무역협상이 재개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으나, 지난해와 같은 '아슬아슬한 유리공 던지기 게임'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중국이 미국의 제재를 무시하고 이란 원류 수입을 강행하는 등, 두 나라의 공조가 여전히 엇박자를 내는 점도 불안요소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9일 탱커트래커스의 자료를 인용해 중국에 약 100만 배럴의 이란산 원유를 실은 이란 국영유조선회사(NITC) 소유의 유조선 ‘살리나'호가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G20을 통해 미중 무역전쟁의 휴전이 선포됐으나 미국이 멍 화웨이 부회장의 이란 제재 위반을 매개로 휴전 파기를 선언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심상치 않은 일이라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