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고 구본무 회장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지 벌써 1년이 됐다. 29일 취임 1주년을 맞은 구 회장의 경영 전략은 합격점이라는 평가가 우세한 가운데 일각에서는 '자기만의 색은 보이지 않는다'는 아쉬움도 감지되고 있다.

선택과 집중 '대단하네'
구광모 회장은 한동안 구본준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던 시기 철저하게 현업 중심으로 경력을 쌓았다. 

실제로 (주)LG는 2018년 임원인사를 통해 소폭의 임원인사를 단행하면서 구광모 당시 상무를 승진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은 바 있다. 

구 당시 상무는 LG전자의 신성장사업 중 하나인 B2B사업본부 ID(Information Display) 사업부장을 맡는 선에서 정리됐다. 2006년 LG전자에 입사, 미국 뉴저지 법인과 HE(홈엔터테인먼트)사업본부 선행상품 기획팀, HA(홈어플라이언스)사업본부 창원사업장을 거쳐 (주)LG로 넘어와 계열사 시너지 제고와 관련된 업무를 한 후에도 여전히 최상층에는 들어가지 못했다는 뜻이다.

LG는 당시“구 상무가 오너가이지만, 빠른 승진보다는 충분한 경영 훈련 과정을 거치는 LG의 인사원칙과 전통에 따라 현장에서 사업책임자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황은 고 구본무 회장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출렁였다. 즉시 LG 특유의 장자승계원칙에 따라 구광모 회장이 취임했으나 재계에서는 '검증되지 않았다'는 우려가 나왔다. 그러나 구 회장은 이러한 전망이 무색할 정도로 초반 거침없는 행보를 보여줬다. LG유플러스 대표이사인 권영수 부회장을 그룹으로 부르며 어려운 경영환경을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한편 신성장 동력 제고에 나서는 속도전을 보여줬다.

취임 초기 전광석화처럼 움직이던 구 회장의 경영시계는 지난해 7월 중순부터 느리게 가기 시작했다. 신선한 파격은 있었다. 오너가 일원이 이사장을 맡아온 LG연암문화재단, LG연암학원, LG복지재단, LG상록재단 등 LG 재단의 이사장에 30일 이문호 전 연암대학교 총장이 선임된 것이다. 그러나 이후 구 회장은 외부활동을 자제하며 업무 파악에만 주력하는 행보를 거듭했다.

침묵이 깨진 것은 지난해 9월이다. 권영수 ㈜LG 부회장을 비롯해 안승권 LG사이언스파크 사장, 박일평 LG전자 사장, 유진녕 LG화학 사장, 강인병 LG디스플레이 부사장 등 계열사 연구개발 책임 경영진과 LG 차원의 CVC(벤처 투자회사)인 LG 테크놀로지 벤처스의 김동수 대표와 함께 서울 강서구 마곡 사이언스 파크를 찾아 본격적인 경영 행보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마곡 사이언스 파크는 LG의 미래 신성장 사업을 키우기 위한 기술의 요람이자 연구개발의 집합체다. 총 4조원이 투자됐으며 면적은 축구장 24개 크기인 17만㎡(5만 3000평)부지에 연면적 111만㎡(약 33만 7000평)규모의 20개 연구동이 들어섰다.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LG화학, LG하우시스, LG생활건강, LG유플러스, LG CNS등 8개 계열사 연구인력 1만 7000명이 한데 모여 있다. 2020년까지는 연구인력은 2만 2000명까지 늘어난다. 구 회장은 LG 사이언스 파크를 찾아 진행 중인 성장사업과 미래사업 분야의 융복합 연구개발 현황을 직접 점검했다. 구 회장은 현장에서 “사이언스파크는 LG의 미래를 책임질 연구개발 메카로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그 중요성이 계속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 구광모 회장이 마곡 사이언스 파크를 찾았다. 출처=LG

구 회장이 마곡 사이언스 파크를 찾아 신기술에서 미래를 찾겠다는 기본적인 경영콘셉을 제시했다는 말이 나오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정통성'에도 주목했다. LG 사이언스 파크는 고 구본무 회장이 그룹 70주년을 맞아 야심차게 건설한 국내 최대 민간 연구산업단지다. 구 회장이 침묵을 깨고 전격적으로 LG 사이언스 파크를 찾는 순간 LG의 후계 정통성은 대내외적으로 단단해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후 구 회장은 판토스 지분 매각 등 본격적인 후계작업에 돌입해 지난해 11월 (주)LG 최대주주에 올랐다.

올해 초 구 회장은 시무식을 통해 자기가 꿈꾸는 LG의 청사진을 전격 공개했다. 구 회장은 "1947년 창업한 이후 70여 년이 지난 지금, LG는 매출 160조원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면서 "지난해 6월 LG 대표로 선임된 후, 지금껏 LG가 쌓아온 전통을 계승·발전시키는 동시에 더 높은 도약을 위해 변화할 부분이 무엇일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어 구 회장은 "LG의 고객 가치는 한두 차례가 아닌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고객을 위한 혁신이 끊임없이 이어질 수 있도록, 구성원 개개인의 다양한 사고와 경험을 존중하고, 마음껏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역동적인 문화를 만들어 가자"고 말했다. 당시 시무식에서 구 회장은 고객이라는 단어만 30회 반복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구 회장의 시무식은 기술과 소탈함으로 평가됐다. 시무식에서 LG전자가 개발한 인공지능 로봇 클로이와 사내방송 아나운서가 무대에서 진행을 함께한 대목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클로이는 약 1년 전 미국에서 열린 CES 2018 프레스 현장에서 갑자기 먹통이 되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으나, 생활가전 기술을 로봇과 연결하려는 LG의 야심작이다. 신기술에 집중하려는 LG의 행보를 잘 보여준다.

소탈함도 눈길을 끈다. 시무식은 평소 임직원들에게 소탈하게 대하는 구 회장의 스타일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평가다. 새해 모임 시작 전의 상황을 보면, 기존에는 행사장인 트윈타워 강당 앞에서 참석자 모두 넥타이를 맨 정장차림이었고 회장단과 사장단이 임원진과 순차적으로 악수하며 새해 인사를 나누던 모습에서 이번에는 비즈니스 캐주얼 차림의 임직원들이 서로 자유롭게 새해인사를 나누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또 대형 LED 메시지 월을 통해 보여지는 동료들의 새해 희망과 의지를 담은 메시지를 보고, 포토월 앞에서는 기념 사진도 촬영했다.

구 회장은 1년의 시간 동안 명실상부 LG의 선장으로서 자기의 역할에 충실했다는 평가다. LG 4.0 시대를 맞아 LG의 미래를 창출하기 위해 다양한 고민을 하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는 것이 재계의 중론이다. 이를 통해 '젊어진 재계'의 선두주자로 확연한 입지를 마련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재계에서는 최근 한국을 방한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압둘 아지드 알사우드 왕세자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주선으로 5대 그룹과 1대1 미팅을 했고, 이를 '젊은 총수의 시대의 개막'으로 보는 분위기다. 그 중심에서 구광모 회장의 젊은 이미지는 더욱 독보적이다.

▲ LG 신년회가 열리고 있다. 출처=LG

인재 확보, 선택과 집중, 소탈함
구 회장의 LG 1년에서 가장 중요한 인사 정책의 변화로 여겨지는 것이 바로 순혈주의 타파다. 취임 직후 LG화학 최고경영자로 미국 3M 출신의 신학철 부회장을 영입한 장면이 눈길을 끈다. LG그룹이 외부에서 CEO를 영입한 사례는 LG생활건강의 차석용 부회장과 LG유플러스의 이상철 전 부회장 정도다. 한동안 잠잠하던 LG그룹의 CEO 외부수혈이 신 부회장 영입으로 얼만큼 본격화될지도 구 회장의 인사스타일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가늠자로 작용할 전망이다.

끝이 아니다. 홍범식 베인앤드컴퍼니 대표가 (주)LG 경영전략팀장으로 영입했고 김형남 한국타이어 부사장(연구개발본부장)도 품었다. 나아가 각 계열사 인재들도 지주회사로 흡수했으며 LG전자에서는 권봉석 HE사업본부장을 MC사업본부장에 겸직시켰다.

선택과 집중도 단행되고 있다. LG전자는 연료전지 사업에서 철수했고 LG디스플레이는 일반용 조명 사업에서 빠지며 자동차용 조명에 집중하고 있다. LG전자는 ZKW, 로보스타의 경영권을 인수했고 MC사업본부 생산기지는 베트남으로 이동시켰다. LG화학은 미국의 유니실 인수에 나섰다. LG유플러스는 CJ헬로 인수에 나서며 결제사업부를 매각하려 하고 있다. 

특유의 소탈함도 구 회장의 1년을 설명할 수 있다. 회장으로 취임하기 전부터 유명했다. LG 관계자는 "오너가 일원이 직원들과 어울려 다니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많이 놀랐다"면서 "같은 사람임에도 마음 한 구석에는 '이래도 되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회장이라는 직함대신 대표를 더 선호하며, 모든 업무에서는 실사구시를 원칙으로 삼은 것도 구 회장 1년의 특징이다. 매년 분기별로 진행하던 정기 임원세미나를 매달 열리는 포럼으로 전환시킨 사례가 대표적이다. 정기 임원세미나는 1998년 처음 시작, 회장의 지시사항을 전파하고 명사 초청을 통해 강의를 듣는 방식이었다. 구 회장은 이를 포럼으로 전환시켜 불필요한 회의를 줄이고 사업에 도움이 되는 방향성을 고민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역시 구 회장 특유의 실용주의에 기인한 패러다임이라는 평가다.

인화의 LG도 더욱 강해졌다. 최근 동반성장위원회가 발표한 동반성장 평가 결과에 따르면 LG는 다양한 영역에서 수위권에 올라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표방하는 SK보다 더 좋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LG 의인상은 지금도 평범한 일상의 영웅을 조명하는 중요한 무대로 작동되고 있다.

▲ 마곡 사이언스 파크 전경. 출처=LG

"무색무취는 넘어야"
구 회장의 1년은 성공적이라는 평가지만,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당장 LG유플러스 화웨이 장비 사용에 대한 국민의 비판, 나아가 SK이노베이션과의 소송 등 빠르게 해결이 필요한 난제들이 있다.

무엇보다 구 회장 특유의 경영'색'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다. 선택과 집중을 비롯해 실사구시 등의 경영행보는 기업 경영에 있어 일반적인 로드맵이다. 일반적인 로드맵도 현실로 이행하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지만, 구 회장이 추후 자기만의 색을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도 계속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