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긴 몰라도, 필자에게 돌출입 수술을 받은 후 남녀관계에서 사랑의 역학이 바뀐 사례가 적지 않을 것이다. 돌출입 수술은 인상의 변화가 커서 친구들조차 누군지 몰라보고 지나쳐버릴 정도가 되기도 한다. 여친 혹은 남친이 다른 사람으로 바뀐 것으로 오해받는 코믹한 일도 생긴다. 그러니 남녀관계의 ‘밀당’도, ‘갑을’도 뒤바뀌기 일쑤다.

이혼사건은 절대로 맡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변호사 친구는, 의뢰인의 첫마디가 ‘대학교 때였습니다’ 로 시작한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스무 살 때 이야기부터 시작해 언제 그 사연을 다 들어주냐는 것이다. 그만큼 남녀관계는 제각기 사연도 많고 복잡하다.

필자가 돌출입 수술을 해준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기억에 남는 네 커플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첫 번째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가 되고 싶은 마음은 미혼의 여성이라면 누구나 가질 것이다. 결혼을 앞 둔 커플이 필자를 찾아와 자주 묻는 질문이 있다. 바로 웨딩 촬영 날까지 예뻐질 수 있겠냐는 것이다. 성형외과 전문의 20년차가 되어 ‘촉’이 좋아진 필자가 먼저 ‘곧 웨딩사진 찍을 예정이신가요?’ 하고 물어보면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사실 결혼과 같은 대사를 앞두고는 몸조심 하라고 하는데, 돌출입 수술을 위해 수술대에 올라간다는 것은 환자 입장에서는 대단한 용기이고 집도의에 대한 신뢰의 표현이다. 물론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수술 결과가 달라지진 않는다. 필자에게 돌출입수술은 늘 하는 친숙한 일일뿐더러, 예비신부니까 더 예쁘게 해주겠다는 식의 욕심이나 사심 없이 하는 수술이 더 결과가 좋다.

돌출입 수술이 끝나고 두 달쯤 지나, 예비신랑과 병원을 찾은 그녀는 아름다웠다. 예비신랑 입장에서는 신부가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청첩장을 내밀었다. ‘원장님이 완성해주신 청첩장이예요’

받아 든 청첩장의 표지 사진에는 입매가 예뻐진 신부가 멋진 신랑과 다정하게 웃고 있다.

내 손으로 더 아름다운 신부를 만들어준 결혼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제 자식 시집 보내는 부모 마음까지는 아니겠지만, 뭔가 벅차고 뿌듯한 느낌, 좋은 일을 한 느낌이 든다. 필자는 진심을 담아 축의금을 건넸다. 평생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기를 축복한다.

두 번째 이야기

세상 모든 사랑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필자가 예비신부에게 돌출입 수술을 해준 그 커플은 결국 이혼했다. 돌출입 수술이, 아니 돌출입 수술로 예뻐진 얼굴이 모든 인생을 질곡없이 만들어줄 수는 없다. 그러나 다른 시각으로 보면, 그 두 사람 입장에서는 이혼을 한 것이 둘 다를 위해 더 행복하고 발전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그 후에 들은 소식은 이렇다.

필자에게 돌출입수술을 받고 결혼하자마자 이혼한 여자는 좋은 남자에게 시집 가 예쁜 아기 낳고 잘 살고 있고, 이혼한 남자는 최고 학부에 편입해서 남들 부러워하는 훌륭한 직업, 아름다운 신부, 귀여운 아이를 모두 얻었다고 한다.

돌출입수술 후에 여자가 무의식적으로 갖게 된 외모의 자신감과 한껏 높아진 자존감이, 그 커플 사이의 상황을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데 일정부분 기여했을지도 모른다. 돌출입 수술 후에도 인생의 바퀴는 구른다. 사랑이 인사할 수도 있지만 이별이 찾아올 수도 있다. 수술은 수술일 뿐이다. 마음이 돌아선 연인을 아름다워진 외모로 다시 되돌릴 수 없다. 돌출입 수술을 통해서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이 인생에 플러스 요인인 것은 맞지만, 마술처럼 다른 상황을 조정하거나 지배할 수는 없다.

세 번째 이야기

나이 차이가 두세 살 정도였던 그 평범한 커플은 여자 환자의 돌출입 상담을 하러 와선 병원 문을 나설 때까지 단 한 번도 손을 놓지 않았다. 여자가 피검사를 받을 때에도 남자는 옆에서 나머지 한 쪽 손을 놓지 않았다.

여자는 심한 돌출입이었다. 웃을 때 잇몸이 보이는 정도가 잇몸 많이 보이는 것으로 웃기는 모 개그맨 못지않았다. 남자는 여자의 그런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너무나 사랑했다. 예쁘지 않으면 사랑받지 못하는 거냐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자기들 눈에는 서로 예뻐야 사랑한다. 요즘은 여자들도 잘생긴 남자에 열광한다. 아름답고 멋진 이성에게 이끌리는 것은 진화생물학적인 본능이다.

콩깍지가 씌운 그 남자의 눈에는 여자친구의 돌출입이나 잇몸은 아예 안보이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자의 지금 모습이 사랑스럽다면, 과연 돌출입 수술하는게 잘하는 일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다행히 돌출입 수술 후 어떤 비극도 생기지 않았다. 여전히 남자는 여자의 손을 놓지 않았다. 사실, 예쁘고 멋진 외모를 가진 연인을 마다할 사람은 없다. 둘이서 손 꼭잡고 영원히 예쁜 사랑을 했으면 한다.

네 번째 이야기

두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인 40대 중반의 그녀는 남편과 함께 필자를 찾았다.

아주 심한 상악 돌출입으로 입을 다물기 어려운 정도였던 아내는 ‘다음 생에는 이렇게 태어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하며 살아왔다고 한다. 그 말이 너무 담담해서 서글펐다. 남편은 필자에게 ‘이번 생애에서 아내의 소원을 풀어줄 수 있는 게 실감이 안나요’ 하며,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수술 당일 날,  ‘좋은 날이네요. 다음 생애가 아니라 이번 남은 생애를 아름답게 사시도록 해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하던 필자는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환자가 울고, 남편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새장가 가는 날이 되실거라는 싱거운 농담을 뒤로 하고 수술장으로 향했다.

돌출입수술을 끝내고 나오는데 남편이 잔뜩 상기된 얼굴로 수술장 앞을 어슬렁거리다가 수술장에서 나오는 필자 어깨를 주무르는 시늉을 했다. ‘힘드셨죠?’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전해져왔다.

아내는 이제 아름다운 여인으로, 남편은 아름다운 아내를 둔 남자로 살 것이다. 그럴 자격이 있는 마음씨 고운 부부다.

런던을 배경으로 열한가지의 각기 다른 사랑을 그려낸 옴니버스식 구성의 로맨틱코미디 영화 ‘러브액츄얼리(2003)’에는, 소리없이 찾아오는 사랑에 설레하고 지나가버린 사랑에 아파하는 형형색색의 사랑이 녹아 있다.

사랑은 준비없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준비된 사람에게 더 잘 찾아오고, 더 오래가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