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지웅 기자]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은 여전히 ‘기회의 땅’으로 불리고 있다. 진출만 한다면 글로벌 제약사로 발돋움할 기회가 주어진다. 따라서 세계 의약품 시장 점유율 약 40%에 달하는 미국 시장에서의 성공은 곧 글로벌 성공으로 귀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국내외 제약사들은 하나같이 미국 진출이 결코 쉽지 않다고 말한다. 복잡한 유통 구조 속에서 과점 기업들이 철옹성처럼 자리를 지키며 경쟁사들의 발길을 차단해온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제약사들은 미국 시장의 문을 지속적으로 두드리고 있다. 들어가긴 어렵지만 한번 발을 붙이면 엄청난 과실을 챙길 수 있는 기회의 땅이기 때문이다.

복잡한 의약품 유통 구조

미국 의약품 시장의 특수한 유통 구조는 해외 기업들의 침투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미국 의약품 시장은 제약사, 도·소매상, 병원, 보험사, 보험약가관리업체(PBM) 등이 복잡하게 얽혀 각자의 이익에 따라 의약품 유통과 가격 결정에 관여하고 있다.

먼저 미국 내 의약품 공급은 도매상들이 주도하고 있다. 제약사로부터 공급되는 전체 물량의 약 60%를 도매상들이 소화한다. 특히 매케슨, 카디널헬스, 아메리소스버겐 등 3대 도매상의 시장 점유율은 80%를 넘어설 정도로 과점화됐다.

▲미국의 처방약 유통 구조. 출처=KTB투자증권

나머지 물량 40%는 약국과 구매대행업체(GPO)를 통해 병원으로 공급된다. 도매상보다 과점 현상이 비교적 덜하지만 소매상인 약국도 CVS, 월그린 등 대형 체인 사업자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미국 진출을 앞둔 제약사들은 과점화된 도·소매상과 더불어 한국에선 생소한 PBM을 공략할 방안도 준비해야 한다. PBM은 제약사, 병원, 약국, 보험사를 연결하는 매개체로 자금결제와 기록관리 및 보고 등의 행정 처리를 주로 수행한다. 애초 PBM은 각 보험사의 보험청구 업무를 대행하는 회사였으나 다년간 환자와 의약품에 대한 정보를 축적하면서 보험등재 의약품 관리와 환자의 자기부담금, 복약 사후관리 등으로 영역을 대폭 확장했다. 현재 미국 시장에서 전체 조제약 판매의 30% 이상을 PBM이 행정 처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높은 약가의 주범 리베이트 

미국 정부는 타 국가 대비 높은 약가로 고초를 겪고 있다. 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일부 소외 계층은 비싼 약값을 감당할 수 없어 의료 혜택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지난 2017년 OECD회원국을 대상으로 조사된 의약품 가격을 비교해보면, 미국은 한국보다 6배나 높은 가격에 신약이 판매되고 있다. 정부 주도로 약가를 결정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철저하게 시장 논리에 근거해 약가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또 복잡한 유통 구조 속에서 범람하는 리베이트도 약가를 올리는 주범으로 손꼽힌다.

▲미국 PBM의 리베이트 관계도. 출처=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

미국은 일반적으로 보험사와 약국, 병원 등이 약가를 공개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PBM은 실제 약가보다 더 비싸게 보험사에 비용을 청구하고 약국 및 병원에는 실제 약품비용을 지급한다. 즉 보험사로부터 수령한 약품비와 약국 및 병원에 지급한 실제 약제비의 차익으로 이윤을 남기고 있다.

이에 미국 정부는 높은 약가를 낮추기 위한 칼을 빼 들었다. 지난해 5월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높은 약가로 이득을 보는 PBM을 규제하고, 타 국가 대비 많은 약가를 지불하는 불합리함 등을 개선하겠다는 내용의 약가인하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직접 나서 제네릭 의약품의 승인 건수를 늘리고, TV 광고 내 일부의약품의 가격 표시를 추진하는 등 약가인하 정책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美 진출 시동거는 K바이오

약가 인하를 놓고 미국 정부와 제약 업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을 비롯한 해외 기업들의 진입을 막는 빗장이 조금씩 느슨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세계 최대 의약품 교역국인 미국 시장에서 국내 제약사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2017년 국내 제약사들의 의약품 수출액은 전년 대비 30.5% 증가한 40억 7126만달러를 기록했다. 이중 미국에 수출한 의약품은 3억 8600만달러 규모에 달했다. 주요 수출 상위 품목은 바이오의약품 등 면역의약품과 백신, 보톡스 등이었다.

반면 미국 의약품 시장은 최근 5년간 연평균 2.24%의 수출 성장률과 3.75%의 수입 성장률을 기록하며 적자 기조를 유지해왔다. 수출보다 수입이 더 많은 상황으로 국내 제약사들에 더할 나위 없는 기회로 여겨진다.

신유원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산업통계팀 연구원은 “내수시장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글로벌 시장 진출이 가속화됨에 따라 국내 제약사들의 의약품 수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교역 규모 확대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이어 “현재 세계 50대 기업 중 한국 제약기업은 전무한 상황으로 수출확대나 해외진출을 통한 지속적인 혁신이 요구된다”면서 “규모로 성과를 내기보다는 나름의 강점을 살린 사업모델로 양적·질적 성장을 추구한다면 해외 시장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