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카치위스키 협회가 위스키 원액이 반드시 참나무 통에서 숙성되어야 한다는 오래된 규칙을 완화하기로 결정했다.    출처= SHUTTERSTOCK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스카치위스키 협회(Scotch Whisky Association)가, 데킬라식 숙성 위스키 같은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는 회원 주류업체의 요구에 굴복해 수 세기 동안 이어져 내려온 위스키 제조의 핵심 규칙을 완화하기로 결정했다.

스카치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 원액이 스코틀랜드에서 맥아 보리물로부터 증류되어 3년 동안 참나무 통에서 숙성되어야 한다. 스카치위스키 협회는 그동안 스카치 위스키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시장에서 어떻게 유통되어야 하는 지를 규제해 왔다. 이에 따라 증류업체들은 원액을 오래 동안 전통적으로 사용해 온 참나무 통에서만 숙성시켜야 했으며 생산 품목도 주로 셰리주(sherry, 백포도주), 코냑, 버번, 포트 배럴 위스키 등으로 제한됐다.

그런데 이제 협회는 증류업체들이 데킬라, 메즈칼(mezcal, 멕시코의 증류주), 카샤사(cachaça, 브라질 전통주), 소주(shochu, 焼酎), 바이주((白酒) 등 다른 과일주들을 숙성시키는데 사용했던 다양한 통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할 계획이다.

사실 스카치위스키 협회가 이러한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지만, 주조 방식의 혁신을 꾀하고 스카치위스키의 시장 점유율 하락을 막기위해 규제 완화를 꾸준히 요구해온 증류업체들의 로비가 얻어낸 결과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보도했다.

위스키 협회는 그동안 참나무통 숙성은 스카치의 명성을 보호하기 위해 필수적이라면서 업계의 요구를 거부해 왔다. 숙성 통의 다양화를 끊임없이 요구해 온 업계의 압박이 높아지고 시장에서 위스키의 위상이 이전 같지 않다는 상황을 확인하고 업계의 요구를 수용하기로 한 것이다.

카렌 벳츠 위스키 협회 최고경영자(CEO)는 "이제 변화를 줄 때가 되었다”고 말하고 “이 변화가 스카치의 유산을 지키면서 미래를 위한 우리의 기반을 더 튼튼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바스 스카치위스키(Chivas Brothers Scotch)를 만드는 페르노리카(Pernod Ricard SA)의 장 크리스토프 쿠뜌어 CEO는 “새로운 규칙으로 시바스는 기존의 애주가들뿐 아니라 젊은 사람들도 좋아할 수 있는 ‘새로운 맛’을 경험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위스키 업계를 추적하는 국제주류연구소(IWSR)에 따르면, 세계 위스키 시장에서 스카치의 점유율은 2008년 59%에서 지난해 47.4%로 떨어졌다. 그러나 같은 기간 미국산 위스키는 19.5%에서 25.4%로 성장했다. 일본과 아일랜드산 위스키도 지난 10년 동안 점유율이 늘어났다.

투자은행 제프리스(Jefferies)의 에드워드 먼디 애널리스트는 "스카치위스키를 숙성시키는 통의 범위에 대한 유연성이 높아지면 더 많은 혁신과 새로운 뉴스가 이어질 것"이라며 "이번 규제 완화가 업계에 바람을 몰고 올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스코틀랜드 세인트 앤드루즈(St. Andrews)에 있는 에덴 밀 디스틸러리 앤 브루어리(Eden Mill Distillery & Brewery)의 소유주인 폴 밀러는 숙성 통의 범위가 더 넓어지면 가격도 인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일반 버본 통은 100파운드(15만원)가 넘는 비용이 들고, 와인 통도 산지에 따라 80파운드(12만원)에서 200파운드(30만원)까지 들어가 회사의 가장 큰 비용지출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 그러나 전통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스카치 위스키는 그 색깔, 맛 그리고 오래 동안 지켜 온 전통으로 판단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출처= Scotch Whisky Association

WSJ은 지난해, 조니 워커와 J&B 등을 만드는 세계 최대 스카치위스키 제조업체 디아지오(Diageo PLC)가 스카치위스키 제조 방식에 대한 업계의 규칙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스카치의 미래’(Future of Scotch)라는 내부 실무그룹을 설립했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당시 디아지오는 스카치위스키 협회에 돈 홀리오(Don Julio) 데킬라를 숙성시키는 통에 스카치 위스키를 숙성시켜도 되는지 물었지만 협회가 이를 거부하자 회사의 임원은 협회의 결정이 ‘지나치다’며 비판했었다.

이번에 스카치위스키 협회가 규칙을 완화함에 따라 스카치위스키를 만드는 업체들은 와인이나 맥주를 만들던 통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매실이나 복숭아 같은 핵과류를 사용한 술을 만들 때 사용했던 통은 안 된다. 발효나 증류 첨가된 과일 향이 배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세계 스카치위스키 시장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스카치위스키 협회의 가장 큰 회원인 디아지오가 지난해 협회에 문의했다 퇴짜 맞았던 데킬라 숙성 통으로도 위스키를 만들 수 있게 돼, 회사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젊은 고객의 기호에 맞는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숙성 통을 다양화하는 것은 시장에서 스카치 위스키의 위상을 회복하려는 업계의 최근 노력 중 하나다. 디아지오는 여성을 겨냥한 제인 워커(Jane Walker)와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에서 영감을 받은 화이트 워커 스카치(White Walker Scotch) 등 한정판 조니 워커를 출시했다. 이는 냉장고에서 바로 위스키를 꺼내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회사는 또 향후 3년에 걸쳐 1억 5천만 파운드(2200억원)를 투자해 증류소 방문 센터를 재정비하고 에든버러(Edinburgh)에 조니 워커 테마 관광지를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전통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스카치위스키 협회의 규칙 변화로 큰 차이가 생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영국 외교관 출신으로 스카치위스키 협회의 CEO를 역임한 개빈 휴이트는 "진정한 스카치 위스키는 그 색깔, 맛 그리고 오래 동안 지켜 온 전통으로 판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약 당신이 데킬라 맛이 나는 위스키를 마신다면, 분명히 그것은 스카치 위스키가 아닐 것입니다."

실제로 모든 증류업체들이 이 변화를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글래스고 디스틸러리 (Glasgow Distillery Co.)의 리암 휴즈 CEO는 숙성 통 다양화는 찬성하지만 더 이상 스카치 위스키 제조 원칙이 흔들리는 것은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카치 위스키에 관한 한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것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