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태호 기자] 에쓰오일이 ‘석유에서 화학으로’의 대전환의 포문을 열어젖혔다. 한국 정유화학 역사 상 최고 규모인 5조원 투자된 복합석유화학 시설이 본격 가동됐다.

고부가가치 제품 비중 확대에 따른 수익성 향상과 포트폴리오 확대로 인한 사업 안정성 제고 등이 기대되는 지점이다. IMO 환경규제도 원활히 대응할 수 있을 전망이다.

26일 에쓰오일(S-OIL)은 서울 신라호텔에서 복합석유화학 시설(RUC/ODC) 준공 기념식을 개최했다. 상업가동 이후 8개월 만에 준공식이 열린 셈이다. 업계는 시설 가동 안정 시기와 주요 내빈 방한시기 등을 고려하다보니 다소 늦어졌다고 풀이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문재인 대통령,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에쓰오일 최대주주인 사우디 아람코의 아민 H. 나세르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경제계 주요 인사 500여명이 참석했다.

고도화 비율 확대로 수익성 향상 전망

준공식 대상이 된 RUC/ODC에는 4조8000억원이 투자됐다. 한국 정유 · 석유화학 산업 역사상 최고 규모의 투자다.

잔사유 고도화시설(RUC) 가동으로 에쓰오일의 고도화 설비 비율은 기존 22.1%에서 33.8%로 증가했다.

고도화 비율은 정제능력 대비 고도화 설비 용량을 의미한다. 고도화 비율이 높아졌다는 것은 이른바 ‘찌꺼기 기름’인 잔사유 등을 재처리해 휘발유, 프로필렌 등 보다 가치 높은 제품을 더 많이 생산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즉, 수익성이 이전보다 향상됐다는 의미다.

▲ 에쓰오일 영업이익 변동 추이. 출처=한국신용평가

RUC 가동으로 에쓰오일의 중질유 제품 판매 비중은 기존 12%에서 4%로 낮아질 전망이다.

특히 이번 RUC에 도입된 잔사유 분해시설(HS-FCC)로 고부가가치 제품 수율은 더욱 높아졌다. 분해시설에는 에쓰오일 대주주 사우디 아람코 주도로 개발된 고온 촉매반응 이용 신기술이 본격 적용됐다.

S-OIL 관계자는 “새로 도입한 잔사유 분해시설(HS-FCC)에는 사우디 아람코와 JX닛폰(JX Nippon), 악센(Axens) 등이 공동 개발한 최첨단 공정 기술이 적용됐다”라며 “프로필렌 수율이 25%까지 높아졌고, 특히 원유보다 값싼 고유황 잔사유를 사용하기 때문에 원가 경쟁력 면에서도 탁월하다”고 말했다.

이도연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RUC/ODC 가동이 올해 3분기부터 600억원 이상의 이익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라고 분석했다.

IMO 규제 대응도 ‘문제없어’

고도화 비율 상승으로 오는 2020년 발효될 국제해사기구(IMO) 환경규제의 수혜를 더욱 크게 볼 수 있게 됐다.

IMO 규제 발효 이후 선박 연료 황 함유량은 기존 3.5%에서 0.5%로 대폭 낮아져야 한다. 즉, 중질유 대신 경질유가 사용돼야 하며, 이는 곧 경질유 수요가 대폭 늘어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경질유 수요가 늘어나면 답보 상태인 정제마진 개선도 이뤄질 수 있다. 업계는 IMO 규제 발효 직전인 올해 4분기부터 경질유 수요가 늘어나 정제마진 개선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정제마진 추이 및 전망. 출처=대신증권

즉, 에쓰오일은 고도화비율 상승을 통해 IMO 규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매출 확대할 수 있으며, 동시에 경질유 수요 확대에 따른 정제마진 개선으로 수익성 향상이라는 간접적 효과도 얻을 수 있다.

한상원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IMO 규제 강화로 정제마진이 올해 4분기부터 개선될 전망”이라며 “2020년 정제마진은 정유업 호황기인 지난 2015년~2017년 평균과 유사한 수준까지 상승할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한상원 애널리스트는 “에쓰오일의 경우 IMO 효과로 오는 2020년 영업이익은 올해 예상치 대비 83.2% 상승한 1조468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된다”라고 전망했다.

포트폴리오 다각화로 사업안정성 확대

RUC 등에서 생산된 프로필렌 등은 올레핀 하류시설(ODC) 등에 투입돼 폴리프로필렌, 산화프로필렌 등 고부가가치 석유화학 제품으로 전환된다.

에쓰오일은 ODC 가동을 통해 폴리프로필렌 연간 40만5000톤, 산화프로필렌 30만톤을 추가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즉, 정유 부문 비중이 낮아지고 대신 고부가가치의 석유화학 비중이 높아지는 것이다. 에쓰오일에 따르면 화학 비중은 기존 8%에서 13%로 확대될 전망이다. 수익성 확대를 의미한다.

특히 ODC 가동으로 올레핀 비중이 기존 대비 4배 확대되면서, 에쓰오일은 올레핀 37%, 파라자일렌 46%, 벤젠 17% 등 더욱 균형잡힌 포트폴리오를 갖추게 됐다.

▲ S-OIL 올레핀 하류시설(ODC) 전경. 자동차 내장재, 단열재 등의 기초원료로 쓰이는 폴리프로필렌, 산화프로필렌 등 고부가가치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한다. 사진=에쓰오일

포트폴리오 다각화는 곧 사업안정성 확대를 의미한다. 유가 변동 등 특정 제품 시황에 상대적으로 덜 예민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홍석준 한국신용평가 연구위원은 “RUC/ODC 설비 가동이 주요 생산체계의 수직계열화와 제품기반 다변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분석했다.

이인영 나이스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정유부문의 고부가가치 제품군, 석유화학부문의 올레핀계 제품군의 확대로 수익창출기반이 강화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5조원에 7조원 더… 석유화학 2차 프로젝트 시동

에쓰오일은 이번 준공식 대상인 RUC/ODC 프로젝트를 잇는 석유화학 2단계 프로젝트 ‘SC&D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에쓰오일은 오는 2024년까지 약 7조원을 추가 투자할 전망이다. ‘석유에서 화학으로’의 대전환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는 셈이다.

SC&D 프로젝트를 통해 에쓰오일은 나프타와 부생가스를 원료로 에틸렌 및 기타 석유화학 원재료를 생산하는 스팀크래커 시설을 연간 150만톤 규모로 확대하며, 동시에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등 올레핀 계열 제품 생산시설을 더욱 늘릴 방침이다.

프로젝트는 원활히 진행되고 있다. 에쓰오일과 대주주 사우디아람코는지난 25일 전략적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 에쓰오일은 최대주주 사우디아람코와 신규 석유화학부문 투자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사진 뒷줄 왼쪽부터 아민 H. 나세르(Amin H. Nasser) 사우디아람코 사장&CEO, 김철수 S-OIL 이사회 의장, 에이 엠 알-주다이미(Abdulaziz M. Al-Judaimi) S-OIL 이사, 아랫줄 왼쪽부터 후세인 알-카타니(Hussain A. Al-Qahtani) S-OIL CEO, 아하메드 코웨이터(Ahmad O. Al-Khowaiter) 사우디아람코 CTO. 사진=에쓰오일

에쓰오일 관계자는 “에쓰오일은 기존 경험을 활용해 사우디아람코의 신기술 상용화에 협력하며, 사우디 아람코는 전문지식과 판매역량 등으로 프로젝트 성공을 적극 지원할 것”이라며 “대규모 투자로 에쓰오일이 아로마틱, 올레핀 분야에서 글로벌 강자로서의 입지를 굳히고 정유/석유화학 업계의 일대 지각 변동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다만, SC&D 프로젝트가 본격 시작될 경우 에쓰오일의 차입금은 현재보다 더욱 증가할 수 있다. 이번 준공식 열린 RUC/ODC 프로젝트로 에쓰오일의 올해 1분기 연결 순차입금은 전년 동기 대비 80% 상승한 5조881억원을 기록한 바 있다.

홍석준 한국신용평가 연구위원은 “신규 투자 확정될 경우 중대한 영업 및 재무적 변동요인으로 작용될 수 있다”면서 “관련 자금조달 계획 및 투자성과, 현금창출력과 재무구조 변화 등에 대해서는 지속적 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