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중국이 '대장정' 전략으로 나오면서 미중 무역 전쟁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출처= 주중 미국대사관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미국과 중국과의 관계가 지난 수십 년 만에 그 어느 때보다도 멀어질 것 같은 분위기지만, 많은 사람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번 주에 만나 양자 관계가 다시 회복되기를 바라고 있다.

두 지도자는 모두 잃어버린 국가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외치고 있고, 시 주석은 '중화민족의 대부흥’(Great rejuvenation of the Chinese nation)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양국 관계를 안정시키지 않고는 미중 어느 쪽도 그 야망을 이룰 수 없을 것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가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러나 지난 2년간 지속된 양국의 협상 역사가 실책으로 범벅되어 있음을 보면,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 합의를 이룰 가능성은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다.

6주 전에 양국은 역사적인 합의를 눈앞에 둔 것처럼 흥분했다. 그러나 타결 목전에서 협상이 결렬된 이후 두 나라 사이의 분열은 더 확대되었다. 상호 불신과 양국 정부 핵심에서 터져 나오는 정치적 수사를 감안하면,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3월 1일까지 요구했던 포괄적 무역협정 수준과 지속적인 협력 관계를 회복한다는 선에서 타결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종종 자문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허드슨 연구소(Hudson Institute)의 중국전문가 마이클 필즈버리 교수는 "두 사람 모두 어중간한 협상을 할 경우 비판자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의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 사람 다 다른 사람들이 정말로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 정부가 협상 막판에 잠정 합의문 문구를 다소 완화할 것을 요구하자 미국은 중국이 합의를 어겼다며 중국 상품 2000억달러에 대한 관세를 2배 인상하고 3000억달러에 추가 관세 부과 절차를 밟겠다고 맞섰다. 또 중국의 가장 유명한 글로벌 기업인 화웨이의 미국 부품 조달을 막으면서 중국 기술의 야심을 꺾었다.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 분쟁 해결보다는 중국의 초강대국 지위를 약화시키는 데 더 관심이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중국은 트럼프 정부의 벼랑 끝 전술을 통한 위협을 반복적으로 겪으면서 과연 트럼프 정부와 어떤 형태의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 지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주석이 만남을 앞두고 있지만 오늘날 두 사람은 상대방을 폄하하는 강경 발언을 하는 참모들에 둘러싸여 있다. 시진핑 측근 관료들은 미국이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영향력이 쇠퇴해 중국에 양보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고, 트럼프의 참모들은 중국 경제와 금융 부문에 약점이 있다고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수치를 보라, 특히 내가 집권한 2016년 이후 미국 경제는 크게 성장했지만 그들은 크게 떨어졌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태평양을 사이에 둔 미중 양국의 무역 분쟁을 그대로 놔 둔 채 자국 경제만 홀로 저어 나갈 수 없다.

미국은 실업률이 50년 만에 최저치를 유지하고 있지만, 성장은 둔화되고 있고 경기 침체의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는 올해 말 금리 인하까지 검토하게 되었다.

중국 또한 마찬가지로, 시 주석은 사상 최고의 부채를 떠 앉고 25년 만에 가장 낮은 실적을 향해 가고 있는 중국 경제와 씨름하고 있다.

그러나 어쩌면 시주석이 트럼프 대통령보다 유리할 수 있다. 시 주석은 지난 수십 년 이후 가장 강력한 통치자다. 그는 정부 지출을 늘리고 인민은행에 금리를 인하하거나 대출을 늘리게 할 수도 있고, 위안화 가치를 약화시키도록 지시함으로써 세계 시장에서 중국 상품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 금리와 달러 가치는 독립적인 연준의 관할 문제이며 트럼프 대통령의 통제를 벗어나 있다. 2017년 법인세와 소득세 인하에 따른 수조 달러의 재정적자로 인해 경기 둔화가 가속화될 경우 정부의 부양책을 고려하는 그의 능력은 중국에 비해 제한적이 될 수밖에 없다.

버락 오바마 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중국정책을 총괄한 라이언 하스 전 외교담당관은 "시주석은 재정과 통화 레버를 모두 장악하고 있지만 트럼프는 그렇지 않다. 또 시주석은 재선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중국 내부의 언로를 통제한다. 구조적으로 유리하다”고 말했다.

‘미국 경제가 강해지면 중국은 괴로울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잦은 언급으로, 중국인들은 트럼프의 목표가 미국의 무역 불만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중국을 모욕하거나 중국의 상승을 막으려는 것이라는 우려를 품게 됐다.

승자가 독식하는 맨해튼 부동산 사업에서 연마된 트럼프의 거침없는 협상 스타일이 엘리트 중국 정치의 현실과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허드슨 연구소의 필즈버리 교수는 "미국이 중국인들을 당황하게 했다"면서 이것이 시 주석으로 하여금 1934년 국공내전에서 공산당이 후퇴하면서 내건 ‘대장정’(大長征, Long March) 전략으로 대응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미중 회담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의 경우에서 보듯이, 무역과 상관없는 일에 대해서도 관세를 지렛대로 사용하는 데 도취해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는 모든 것을 제로섬 게임으로 보지만, 그런 전략이 중국에게는 잘 안 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견제와 고통스러운 관세로 중국이 자신의 요구에 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자주 말해왔지만, 모든 수단을 동원한 사람처럼 행동하지는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대만에 대한 20억 달러 무기 판매 계획의 의회 통보를 보류했고, 중국의 또 다른 약점인 인권 문제를 거론할 것으로 예상됐던 펜스 부통령의 연설을 연기시켰다. 또 화웨이에 대한 국가 안보 우려가 완화될 수 있음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유화 제스처는 시주석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시 주석은 두 나라 간 경제적 이혼은 "상상할 수 없다"며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동에 동의했다.

전 중앙정보국(CIA) 중국 분석가인 데니스 와일더는 “미국이 과연 거래에 관심이 있는가, 아니면 중국을 무너뜨리는 데 관심이 있는가? 어느 쪽인가? 라는 문제로 중국 정부 내부적으로 고위층간 논쟁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이제 다시 한번 협상에 임할 때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안 되면 미국과의 전쟁이 대안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결론에 따라 중국은 미국과의 완전한 결렬을 피하고 반도체 같은 중요한 부품에서 미국 공급자들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가속화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가들은 말했다.

시 주석은, 보잉 항공기 등 특별한 제품을 피하고 중국이 다른 곳에서 살 수 있는 미국 제품을 타격하는 동시에 다른 무역 상대국에 대한 관세를 인하하는 등 보복 관세를 맞춤식으로 조정했다.

마오쩌둥과의 회담에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통역을 맡았던 전 외교관 찰스 W 프리먼은 "중국 측에서 매우 분명한 전략이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할 수만 있다면 싸움을 피하고 자립을 강화하자."

오사카에서 어떤 타협이 이루어지든 중국의 강제 기술이전 정책과 무역 비밀 도용, 무역적자 급증에 대한 트럼프의 불만을 해소하는 길은 여전히 요원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