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전현수 기자] 지난 5월 25일 세계보건기구(WHO)는 ICD-11(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에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를 등재했다. 변동 사항이 없을 시 이는 2022년 1월 발효되며 전 세계 WHO 회원국에 권고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권고를 받아들이면 KCD(한국표준질병 사인분류)에 등재된다. 

문제는 해당 질병등재가 충분한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게임 산업의 경우 과거부터 부정적인 시선을 줄곧 받아왔고 몇 차례의 산업 규제를 받은 맥락이 있기 때문에 업계 및 게이머들의 반발은 더욱 크다.

WHO의 발표 이틀 뒤 국회에서 게임산업협회와 콘텐츠진흥원 인사 등이 모여 WHO 결정을 반대하는 내용의 토론회를 진행했다. 같은 날 언론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게임개발자그룹도 이례적으로 나서 공동성명서 발표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다음 날엔 한국게임학회를 중심으로 뭉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발촉식을 하고 “게임이 죽었다”는 메시지를 담은 ‘게임 장례식’도 준비해 이목을 끌었다. 그 이후에도 게임이용장애 관련한 각종 토론회는 이어지고 있다.

최근엔 의료계도 나섰다. 지난 21일 의사회를 중심으로 각종 협단체 인사들이 모여 긴급 심포지엄을 열고 WHO 게임이용장애 도입을 지지한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공대위는 이에 맞서 25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자문변호사의 질병코드 등록에 따른 ‘중독세 부가’가 가능하다는 법적 해석 결과를 발표하며 이번 질병코드 등록이 불러일으킬 산업 위축을 우려했다.

양측이 입장차를 조금도 좁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토론을 통한 설득과 합의는 결여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찬성과 반대 의견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기자는 그간 여러 토론회에 참여했지만 그곳에서 패널들의 살아있는 ‘대화’보다는 준비된 ‘대본’을 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다소 아쉬웠다.

이 논쟁은 장기전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어느 편이 더 많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느냐가 관건이다. 어느 편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는지는 양측이 한자리에 모여 논쟁을 할수록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현실과 이상이 다른 것도 인정해야 할 부분이다. 이번 문제뿐만 아니라 어지간한 현안은 대립하는 양측이 적극적으로 모여 토론하고 합의에 나서는 일은 거의 없다. 만약 한쪽이 대화를 원해도 다른 한쪽이 거부하기 마련이다. 

정부의 조율이 더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도입 반대 측인 문체부와 찬성 측인 복지부, KCD 개정을 맡고 있는 통계청 등 관계부처와 의료, 법조, 시민단체 등 전문가가 참여하는 민관협의체가 최근 구성됐다. 

가능하다면 양측의 공개된 토론도 이어지길 바란다. 특히 일부 의료계는 ‘WHO의 결정’이라는 권위와 게임중독자들의 극단적 사례를 예로 들며 “국내 게임질병코드 등재는 당연한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는 경향이 있는데, 여론의 반발이 심한 만큼 전면에 나서 납득할만한 이유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