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일 국회의원회관 제2간담회의장에서 열린 '개인도산제도 현황 및 개선점 모색 토론회'에서 발제자와 토론자 등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양인정 기자

[이코노믹리뷰=양인정 기자] “현재까지 100만명이 넘는 사람이 개인파산·회생 제도를 통해 빚 조정을 받았지만, 우리는 아직도 빚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하고 생을 마감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25일 국회 제 2간담회의장에서 열린 ‘개인도산제도 개선점 토론회’에 앞서 조현욱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은 지난 5월 어린이날 채무문제로 일가족이 생을 마감했던 소식을 언급하며 채무조정 제도가 서민 경제생활에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를 재차 강조했다. 

이와 같은 채무조정 제도 가운데 개인파산제도가 방대한 준비서류와 엄격한 재판심사로 채무자의 제도 접근을 방해하고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이 때문에 소득이 없는 채무자가 무리하게 개인회생을 이용했다가 중도 포기하게 된다는 지적이다.

서경환 서울회생법원 수석부장판사는 이날 국회 제2간담회장에 열린 개인파산·회생제도의 개선안 토론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개인파산은 빚을 진 금융소비자에 대해 법원이 재판으로 채무를 탕감하는 제도다. 법원은 채권자에게 나눠 줄 재산이 있는지 따져 본 후 빚을 탕감한다. 개인회생은 빚을 진 금융소비자가 일정한 소득이 있는 경우 법원이 채무를 일부 감면하고 최장 5년 동안 나눠 갚는 제도다.  

두 제도 모두 ‘성실했지만 불운하게’ 빚을 진 서민이 경제적으로 도태되지 않고 다시 경제생활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다. 

발제로 나선 서경환 판사는 "대법원도 법령에서 요구하고 있지 않은 서류를 요구하는 하급심 재판관행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며 "파산법조계에서는 파산에 앞서 필요한 서류가 너무 많아 '파산신청이 장관 임명청문회보다 더 어렵다'라는 하소연이 나오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서 판사는 이어 "법원의 엄격심사 방식을 탈피하고 수년 동안 채무로 인해 고통 받는 채무자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며 "법원이 빚을 면책하는 재판에 필요한 최소 자료만을 선별하는 제도로 전면적인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판사의 이 같은 발언은 전국에서 가장 많이 개인파산 사건을 처리하는 서울회생법원의 수석부장판사의 주장으로 토론회 관계자들로부터 일제히 주목을 받았다. 

법원은 파산절차에서 채무자와 친족의 재산과 소득을 증명하기 위해 본인, 부모, 배우자, 자녀들의 재산과 소득과 관련된 평균 30종의 서류를 요구하고 있다. 

2005년 한국개발연구원에서 법원행정처의 요역의뢰를 받아 실시한 실증조사에 따르면 파산신청 과정에서 경험한 불편에 대한 채무자의 응답으로 가장 많은 30% 정도가 '신청서류가 많다'라고 응답했다. 이 같은 기조는 법원이 2007년 엄격심사주의를 거치면서 현재 파산신청 서류가 더 까다롭고 방대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 파산채무자, 건강기능판매직 할 수 없다?... 전근대적인 차별 여전해

파산절차를 거친 채무자에 대한 차별적 대우를 규정한 법률도 여전히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법률로 파산선고를 받은 채무자가 가질 수 없는 직업만 모두 200여개가 된다는 것이다. 이들 법률을 종합하면 파산선고를 받은 채무자는 건강기능식품판매, 담배판매를 할 수 없고, 보험설계사, 일반경비원, 아이 돌보미 직업에 종사할 수도 없다. 또 국민참여 배심원, 아파트 동별 대표자, 전통 소싸움경기 소 주인 조차의 될 수 없고, 국비유학시험의 응시자격도 없다. 

채무자회생법에는 "누구든지 파산 및 회생 등의 절차 과정에 있다는 이유로 정당한 사유 없이 취업의 제한 또는 해고 등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서경환 판사는 “파산선고를 받은 청년이 유능해서 국비유학시험 응시할 경우 오히려 정부가 지원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의사 등과 같이 입김이 센 직업군에 대해서는 이미 이와 같은 차별 규정을 철폐했으면서도 그렇지 않은 직업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 조속히 법률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 판사는 이어 ”개인파산 절차가 까다롭기 때문에 소득 없는 채무자가 무리하게 채무를 정기적으로 갚아나가는 회생절차를 이용한다“며 ”무리하게 개인회생을 중도에 포기하고 다시 파산신청을 해야 하는 악순환이 생긴다“고 말했다.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개인파산신청은 2015년 5만3865건, 2016년 5만288건, 2017년 4만4246건, 2018년 4만3397건이 법원에 제출됐고, 개인회생신청은 같은 기간 각 10만 96건, 9만 400건, 8만1592건, 9만1205건이 제출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8년말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7.7%에 이르고,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7년말 159.8%에서 2018년말 162.7%로 상승했다. 지난 4년간 우리나라 가계부채 비율 상승폭은 13.8% 중국(16.2%)에  이어 세계 2위다. 

▲ 토론회 참석자들이 발제와 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양인정 기자

◇ 인사이동 잦은 회생법원, 전문법원 명칭 무색...“정부,법원 전산망 접근권 달라”획기적 제안도 

토론회에서는 이밖에도 현행 파산제도의 적지 않은 문제점들이 지적됐다. 채권자가 채무자의 면책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사건에서 채무자의 파산절차를 필요이상으로 길게 재판하거나 파산을 신청 채무자에 대해 채권자의 독촉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특히 서울회생법원이라는 전문법원이 설치됐음에도 법관들의 근속기간이 짧아 전문법관 양성에 미흡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국민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영역의 재판에서 법관이 인사이동이 자주 있으면 제도의 취지와 운용에 항상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미국 연방파산법원의 경우 소속의 법관의 임기는 14년이다.  

이어 발제자로 나선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백주선 회장(법무법인 상생)은 “자본주의를 표방하는 나라는 빚 조정제도를 잘 갖춰야 한다”며 “우리나라는 금융공급은 과잉으로 하고 빚 조정제도는 보수적으로 운영해 채무자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발제에 이어 토론에서는 획기적인 제도 개선안들이 제안됐다. 행정기관과 법원 전산망의 접근해 서류부담의 경감을 줄이자는 것이다. 

토론자로 나선 서울변협 안창현 변호사(법무법인 대율)는 “채무자가 파산신청을 위해 동사무소와 세무서 등 다수의 행정기관을 다녀야 하는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며 “채무자가 방대한 준비서류를 정부와 법원 전산망의 접속해 발급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안 변호사는 또 “채권자  가 채무자의 면책에 이의를 하지 않는 사건에서는 파산관재인의 조사를 생략하고 신속히 면책결정을 내리는 간이 면책제도의 도입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채무상담과 채권소각 운동을 하는 시민단체 주빌리은행 홍석만 사무국장은 상담사례를 통해 "최근 센터에 상담 후 연락을 끊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소득이 없는데 젋다는 이유로 파산신청이 기각되거나, 개인회생에서 인정되는 생활비가 너무 적어 다시 고리의 사채를 쓰는 사례가 줄지 않는다"며 "채무자의 현실을 외면하고 제도개선을 논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에 참석한 법무부와 서울회생법원 관계자는 토론에서 언급된 내용을 입법 제안하고 재판정책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토론회는 더불어 민주당 박주민 의원과 제윤경 의원, 대한변호사협회,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가 공동 주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