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부티크와 트렌디한 레스토랑으로 뉴욕의 젊은 층이 즐겨 찾는 웨스트 빌리지에 있는 한 술집은 언뜻 지나치면 전혀 상점인 것을 알 수 없도록 만들어져있다.

삼거리가 만나는 골목에 위치한 이 점포의 외관은 마치 창고처럼 굳게 닫힌 철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문 위에 보안 카메라가 달려있는 것 외에는 간판이나 상호도 찾기 어렵다.

문을 자세히 보면 술집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지만 굳게 잠겨있다.

나름 유명하다는 이 술집을 찾아온 외국인 관광객들은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이곳이 맞는지 의아해하다가 그냥 지나쳐 가거나 문을 열어보려 애쓰기도 한다.

이곳은 안으로 들어가려면 문 옆에 달려있는 작은 초인종을 눌러 안에서 열어줘야 들어갈 수 있는 구조로 지어졌다. 일부러 찾아온 것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스쳐 지나갈 것이고, 알고 있더라도 초인종을 눌러야만 한다는 사실을 모르면 영업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기가 쉽다.

무슨 영업점이 이렇게 고객들을 끌기는커녕 내쫓나 싶지만 뉴욕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이런 종류의 술집을 ‘스피크이지(Speakeasy)’라고 부른다. 1920년대 미국 금주령 시대에 몰래 술을 팔던 불법 술집에서 유래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최근 아는 사람만 아는 히든 술집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하는데 미국에서는 1919년 금주법이 통과된 것이 스피크이지가 생겨난 이유다.

금주법 통과로 1920년부터 미국 내에서는 술을 양조하거나 판매, 운반, 수출입 등을 일제 하지 못하게 됐다.

금주령은 당시 세계대전 참전으로 인한 식량 절약 목적과 함께 술에 취해서 업무를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취해진 조치였다. 적국인 독일이 주로 만드는 맥주 등에 대한 반감 등이 섞여서 만들어진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술과 관련된 산업은 당시 미국 내에서 5번째로 큰 산업이었는데 이를 완전히 봉쇄한 것이다.

당시 종교단체를 위시한 보수단체들이 금주령에 적극 동참하고 나섰는데, 이 같은 조치를 취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술을 쉽게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평생 죄 한번 지은 적 없이 살던 평범한 사람들이 금주령으로 인해서 순식간에 범죄자가 돼버리니 쉬쉬하면서 몰래 술을 먹게 된 것이다.

이때 탄생한 것이 바로 ‘스피크이지’다. 겉으로 봐서는 술집인지 전혀 알 수 없게끔 마치 가정집이거나 창고인 것처럼 간판도 달지 않는다. 약국이나 이발소로 들어가서 뒷문을 열면 술집이 나오도록 비밀 장소를 만들기도 했다.

불법으로 술을 만들어 파는 술집을 뜻하는 스피크이지라는 표현은 ‘술을 먹고 크게 떠들거나 소란을 피우면 경찰의 의심을 받게 되니 조용히 하라’ 혹은 ‘남들에게 공공연하게 알리지 않고 아는 사람들끼리만 조용히 알고 지내라’는 뜻에서 기인했다.

금주령 시대에 술을 구매할 수 있는 합법적 방법은 약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처방받을 경우가 유일했는데, 이 때문에 당시 스피크이지중에서는 약국에서 몰래 술을 파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

현재 뉴욕에서 인기 있는 스피크이지 술집 중에서도 당시 약국에서 술을 몰래 제조하던 것을 본떠 약국 제조실과 비슷하게 만든 바에서 약사처럼 가운을 입고 판매를 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현재도 뉴욕에 남아있는 스피크이지인 21클럽은 경찰의 급습을 당한 이후 술집처럼 보이지 않도록 문을 철문으로 바꾸고 버튼만 누르면 선반에 있는 모든 술병이 쓰레기통을 통해 바로 강에 버려지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또한 비밀 와인셀러를 만들어서 이후 단 한 번도 단속에 걸린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금주령은 사람들의 술 소비를 중단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늘렸고, 더욱 큰 문제는 마피아가 술 판매를 통해 세력을 키우고 돈을 벌어들이는 부작용을 낳았다.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이름인 뉴욕의 마피아 알 카포네도 금주령 당시 밀주를 만들어 팔면서 막대한 부와 함께 세력을 불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