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난 22일 ‘김정은 시대’의 개막을 선언했다. 현지 지도중인 김정은(왼쪽 두번째)의 모습.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한반도 정세에 격랑이 예고됐던 것과는 달리 비교적 평온한 분위기다. 북한은 김정은 체제를 공식화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현 체제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지만 의외의 변수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포스트 김정일 체제에 관해 전문가들이 어떤 시각으로 한반도 정세를 풀어가는지 가늠해본다.

북한은 지난 22일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을 ‘혁명위업의 계승자·인민의 영도자’로 명시하는 등 사실상 ‘김정은 시대’의 개막을 선언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위대한 김정일 동지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심장 속에 영생하실 것이다’는 장문의 1면 사설에서 “김정은 동지의 영도는 주체의 혁명 위업을 대를 이어 빛나게 계승·완성해 나갈 수 있는 결정적 담보”라고 밝혀 사실상 김정은 체제 출범을 공식 적으로 알렸다.

노동신문은 또 “김정일 동지의 유훈을 지켜 주체혁명, 선군혁명의 길을 꿋꿋이 걸어 나가야 한다”고 밝혀 김 부위원장이 당분간 ‘유훈통치’에 들어갈 것임을 시사했다. 이런 북한의 움직임에 대해 국내 학계 및 전문가들은 당연한 과정으로 파악하고 있다.

김정일 사망 직후 외신과 국내에서 거론됐던 북한 체제 붕괴론이나 국제 사회 개입설 보다는 김정은 권력 승계로 인한 체제유지 쪽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이미 지난 23일 국회에서는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실 주최로 열린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 토론회’에서 김정은 체제의 공고화가 4분의 1정도 완료됐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한기범 전 국가정보원 3차장은 “김정은과 김정일의 승계 준비기간이 각각 3년과 20년으로 차이가 나지만 김정은 후계체제의 기초공사는 완료된 상태로 봐야 한다”며 “앞으로 2층과 3층을 쌓아올리는 것에는 별다른 장애물이 없기 때문에 권력승계에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북한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탈북자들이나 전문가들의 전망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시각이다. 김흥광 NK지식인연대 대표는 본지와 전화 통화에서 “지난 3년간 김정은은 제2인자로서 정치 시스템 내에서 권력을 장악해왔다”며 “체제는 이미 세팅이 다 돼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김정은 체제가 단기적으로 유지된다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지만 장기적으로도 가능할 지에 대해선 조금씩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 대표는 김정은 체제는 당분간 김정일 체제의 정책들을 계승하고 유지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으로 내다봤다.

김정은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현재의 직함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국방과 군대 관리 등에 집중하는 한편 권력 기반을 굳건히 하기 위해 내치에 집중 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외교의 경우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남북관계에서는 김정은 체제의 주민 지지를 얻고 내부문제와 한계를 해소하는데 종속변수로서 ‘경제’ 문제를 활용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김 대표는 관측했다.

류길재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도 이와 유사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류 교수는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의 노선을 그대로 계승할 것으로 보인다”며 “혈통 승계이기 때문에 부친을 부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친인 김정일로부터 권리와 정당성을 계승했기 때문에 정책이나 체제 운영방향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류 교수는 그러나 “북한이 현재 불안한 상황이기 때문에 계속 안 좋아지면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예외적인 상황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여기서 다른 선택이란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집단지도체제나 김정은이 배제된 순수집단지도체제, 또는 전혀 다른 사람이 집권할 가능성 등이다. 하지만 류 교수는 현재로선 그런 가능성이 매우 낮은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이번 상황을 위기에서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돼 눈길을 끈다. 조영기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의 권력 승계는 잘 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라며 “다만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권력이 옮겨가는 과정과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차이가 있음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넘어가는 시기엔 상당한 권력 체제가 확립된 후 김일성이 사망을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며 “현재 격랑의 상태에서 위험 요인도 있지만 기회의 요인도 있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4강 외교나 통일 외교를 잘해서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낼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와 관련해서는 북한 경제가 정치 움직임에 따라 함께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한국 경제가 어떻게 그 틈새를 활용할지 전략적 고민이 필요할 때라고 조언했다.

북한 앞날 예측 4대 시나리오

현재 김정일 사후 북한 체제에 대한 4가지 시나리오가 전망되고 있다. 정보 출처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개 김정은 권력승계가 성공할 경우와 그렇지 못할 경우에 대한 가정에 따라 다른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난 22일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먼저 김정은 체제가 안정되면서 개혁개방을 추구하는 경우다.

두 번째로는 김정은 체제가 안정되더라도 폐쇄성을 지속하면서 이제까지처럼 핵을 담보로 미국과 대치, 협상 국면을 이어가는 가능성이다. 김정은 체제가 불안정 해질 경우엔 세 번째 시나리오로 주변국 개입이 유발되는 등 한반도 내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거나 장기화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네 번째는 북한 체제의 위기가 심화되면서 북한의 조기 붕괴로 이어지거나 급진적인 모험주의가 팽배해지면서 국지전이나 전면전이 발생하는 경우다.

김은경 기자 keki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