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시대 동구의 한 정치인이 당시 구소련의 지도자를 평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그 지도자를 세 번 만났는데, 처음 만날 때는 엄청난 희망을 가지고 만났답니다. 그런데

두 번째 만나고 나서는 의구심을, 마지막으로 만나고는 커다란 실망을 했다고 고백했더군요.

알면 알수록 실망이란 말이었을까요?

우리네 인생길에도 그런 경우가 충분히 있을 것 같습니다. 더 조심스러워집니다.

긴 인생길을 생각하면 그 반대의 경우는 한결같음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나와 회사 생활을 오래 한 친구 중에 이 한결같음이 어울리는 친구가 있습니다.

회사에 들어와 한 길을 오랫동안 걸어 왔는데, 그의 별명이 대쪽, 일명 칼이었습니다.

바르다고 생각한 것을 밀고 나갈 때는 아무도 말리지 못했습니다. 그런 기질이라

때로는 주변에서 궁시렁 거리기도 했지만, 그뿐이었습니다. 결국에는 그를 인정했지요.

소박하기도 했던 친구를 생각하면 크게 세 가지 장면이 떠오릅니다.

33년의 직장 생활을 마치고 퇴직하는 자리였습니다.

여러 덕담들에 대한 그의 답사 차례였는데, 노래로 대신하겠다고 일어났습니다.

그러고는 입사해서 처음 배우고 불렀던 사가(社歌)를 부른 겁니다. 물론 지금과는 다른

사가였지요. 거기 참여했던 동료들에게 어떤 말보다 잔잔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역시 ㅇㅇㅇ답다’라고들 하면서 말이죠.

다음 장면입니다.

퇴직 후 한동안 소식이 없더니 시골에 집을 마련했다고 놀러오라는 겁니다.

은퇴 후 생활 터전을 옮기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라 속을 끓이고, 의견을 물으며 주저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나도 그런 쪽입니다. 그런데 고교 때부터 서울서 생활해 온 그는 그렇게 직진해서 시골로 갔습니다. 집터를 사고, 2년여 동안 업체와 협업해서 직접 집을 지었습니다. 그 집을 찾았더니 멧돼지 방지용이라며 큰 우산을 하나 들고 나를 앞산으로 안내하는 겁니다. 그때도 내 입에서 ‘역시 ㅇㅇㅇ 답다’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얼마 전 중국인 며느리를 맞는 아들 결혼식장에서의 모습도 있습니다. 주례 없는 결혼식이었는데, 친구가 인사말을 겸해 주례사를 했습니다. 두 가지 얘기를 했습니다. 먼저 아들에게.

중국에서 아들만 바라보고 온 며느리에게 잘해주길 당부하며 ‘어려서부터 늘 보고 자란

이 아버지처럼 아내에게 양보하고, 예쁘게 봐주고, 져주며 살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딸을 먼 타국 땅으로 보내는 장인, 장모의 마음을 헤아려야한다..’

이어서 사돈 분께였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귀하디 귀한 외동딸을 멀리 이국에 보내는 어려운 결정을 해준 점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다고 했습니다. 자기는 딸이 둘이나 더 있으니,

딸네 집에 하시라도 아무 부담 없이 와서 계시라고 권하는 겁니다.

무엇 그리 특별한 미사여구는 없었지만, 하객으로 참여한 옛 동료들이 하나같이

‘역시 ㅇㅇㅇ답다’라며 감동받는 모습이었습니다.

내게는 친구가 이제까지 지켜온 한결같음을 그 자리서도 보여준 게고, 나름 인생길에서 큰 점을 찍은 것 같아 멋져 보였습니다. 수신(修身)에 이어 제가(齊家) 단계로 간 느낌이랄까요?

친구가 결혼식에서 농담으로 중국 전통에 따라서 결혼식을 중국서 한번 더하니 거기로

초청하겠다고 합니다. 이참에 갈까 생각중입니다.

한결같음을 지켜온 친구에게 길게 격려 박수를 치는 의미에서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