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PO 없이 NYSE 직상장을 선택한 사무용 메신저 회사 슬랙(Slack)이 참조가격 보다 50% 높은 가격으로 거래를 마감했다.   출처= NYSE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5년전 게임 프로젝트에 실패한 후 문을 닫으려던 회사가 이제 200억 달러(23조 2000억원) 이상의 가치가 있는 회사가 되었다.

기술업계와 미디어 업계에서 인기있는 사무용 커뮤니케이션 도구(메신저) 회사 슬랙(Slack)이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거래를 시작하면서 올해 월가의 기술 유니콘 대열에 합류했다. 그러나 슬랙은 대중 앞에 나서는 방식에서 좀 더 파격적인 접근법을 취했다.

슬랙은 투자은행을 상장 주관사로 선정하고 공모를 거치는 전통적인 IPO 대신 기존 주식을 거래소에 직상장하는 방식을 택했다. 지난해 음악스트리밍 업체 스포티파이(Spotify)도 이런 방식으로 상장했었다.

슬랙은 20일 주당 38.50달러로 거래를 시작했다. 전날 NYSE가 산정했던 기준 가격(reference price, 공모가와는 다름) 26달러보다 50% 가까이 오른 가격이다. 장중 최고 45달러가지 치솟았지만 내내 호조세를 이어가다 38.62 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종가 기준으로 슬랙의 시장가치는 약 230억 달러다.

슬랙의 공동창업자 겸 최고기술책임자(CTO)인 칼 헨더슨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전통적인 상장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한동안 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우리는 따로 자본을 조달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IPO를 거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슬랙은 소프트뱅크, 악셀(Accel), 앤드리스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 등 저명한 투자자들로부터 이미 10억 달러 이상의 벤처 자금을 조달했다. 직상장 방식을 택할 경우 주관사가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상장업체가 추가 자금을 확보할 수 있고 기존 주주들은 주식 시장에 주식을 내다 팔아 이를 현금화할 수 있다.

이처럼 특이한 방식으로 상장하는 회사는 대개 특이한 뒷이야기를 갖고 있게 마련이다.

슬랙의 공동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스튜어트 버터필드가 자신이 창업했던 사진 공유 사이트 플리커(Flickr)를 야후에게 판 후 사직서를 남기고 회사를 떠난 일은 이미 잘 알려진 일화다.  2009년에 타이니 스펙(Tiny Spec)이라는 게임 회사를 설립하면서 그는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아마도 나는 형편없는 사장이 될 거야. 적어도 난 그걸 알고 있어.”

2년 후 타이니 스펙은 글리치(Glitch)라는 온라인 게임을 출시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충분한 고객을 끌어들이지 못하자 결국 2012년에 회사의 문을 닫겠다고 발표했다. 헨더슨 CTO는 "우리는 분명 큰 야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펼치지 못했다"고 그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나 한 줄기 희망이 있었다. 타이니 스펙은 게임은 실패했지만, 게임 외에 적용할 수 있는 독특한 메시징 기술을 개발했고 이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기로 한 것이다. 이 메신저가 뒷날 회사 내에서 동료들 끼리 파일, GIF, 앵무새 이모티콘 등을 서로에게 보낼 수 있는 협업 도구인 슬랙이 되었다.

슬랙이 거래소에 제출한 공개 신청서에 따르면, 2019년 첫 3개월 동안 매일 10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 메신저의 무료 및 유료 버전을 사용했다. IBM, 리프트(Lyft) 그리고 CNN 같은 회사의 여러 부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되었다.

다른 많은 기술 회사들처럼, 슬랙도 수익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 손익분기점에 도달하지못했다. 슬랙은 지난 4월 말로 끝난 분기에 1억 348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67% 성장한 것이다. 이 기간 동안 3190만 달러의 손실을 보였는데, 이 또한 전년의 2490만 달러보다 늘어났다.

올해의 가장 유명한 기술 IPO 회사 중 두 곳인 우버와 리프트는 지금까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슬랙처럼 상장 시장에서 잘 나가고 있는 기술 회사들도 적지 않다.

지난 4월 상장 시장에 데뷔한 화상회의 서비스 회사인 줌(Zoom)도 현재 IPO 가격의 3배 가까이에서 거래되고 있으며, 역시 지난 4월에 상장한 디지털 운영 관리 플랫폼 페이저듀티(Pagerduty)도 IPO 가격보다 2배 이상 올랐다. 지난 5월 상장해 화제가 되었던 식물성기반 고기업체 비욘드미트는 IPO가격 보다 무려 7배 가까운 165.17달러로 20일 장을 마감했다.  

슬랙의 헨더슨 CTO는 "우리는 기업 소프트웨어 회사로, 기업들이 손쉽게 쓸 수 있는 사업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어떻게 모형화해야 하는지 잘 이해할 것입니다. 예측하기가 쉬우니까요. 그것이 우리가 올해 IPO를 한 다른 기업들과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