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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태산 서평] “6·25 전쟁, ‘이런 전쟁’이 실제로 일어났다”
   

<이런 전쟁> T. R. 페렌바크 지음, 최필영·윤상용 옮김, 플래닛미디어 펴냄.

‘1950년 6월 24일 토요일, 어둠이 깔리기 시작해서야 인민군 2군단 작전장교인 28세의 리학구 총좌는 담배 한 대 피울 여유가 생겼다. 모든 인민군 공격부대는 전날 자정을 기해 38도선에 인접한 남침용 진지들에 배치 완료됐다. 서울의 토요일 밤은 휘황찬란했다. 대한민국 육군 총참모장 채병덕 장군도 ‘전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미군들과 술자리였다. 같은 시각, 美군사고문단장(윌리엄 린 로버츠 준장)은 보직이 끝나 미국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그는 귀향 전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남한은 미국 본토를 제외하고는 전 세계 최강의 군대를 갖고 있다”고 장담했다.’(제1장 요약)

이튿날 새벽 4시, 김일성의 북한이 기습 남침했다. 고함소리와 함께 새까만 인민군 야포들이 흐린 남측 하늘을 향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차가운 동해에서부터 안개 낀 서해까지, 서울로 향하는 모든 축선을 따라 불길과 소음이 끝없이 이어졌다. 한국군의 전선은 무방비였다. 인민군이 전투 배치된 23일 자정, 이상하게도 한국군 지휘부는 비상경계령마저 해제하고 장병들을 외박과 모내기 휴가로 내보냈다.

로버츠 단장의 말은 사실과 달랐다. 한국군에는 전투기나 탱크가 없었다. 중구경 야포와 박격포, 무반동총도 없었다. 트럭 등 수송자산에는 교체할 부품조차 없었다. 미 국무부 산하 군사고문단은 한국군이 ‘애처럽게’ 요청하던 총과 전투기 지급을 끝내 거부했다. 무초 주한 미국대사는 ‘남한이 북한 공산정권을 공격할 기회를 줘선 안 된다’는 본국 훈령을 받고 있었다.

6·25 전쟁은 3년 만에 명확한 결론 없이 휴전을 맞았다. 이 기간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마을과 도로, 계곡과 고지, 그리고 능선 곳곳에서 희생됐다. 남한은 초토화됐다.

책은 전쟁 발발 이전의 시대적 상황, 전쟁 발발의 배경부터 짚는다. 뒤이어 오산에서 개전후 첫 전투를 수행한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의 패배, 낙동강 방어선 사수, 인천상륙작전과 서울 수복, 압록강을 향한 유엔군의 진격, 중공군의 개입, 장진호 전투, 미 해병대의 흥남 철수, 정전회담과 휴전협정 체결 등 주요 사건들을 시간의 흐름을 따라 서술한다.

모든 내용은 공식 기록, 작전계획, 전문(電文), 증언, 일기, 역사 기록물, 회고록, 신문 등을 토대로 구성됐다. 증언은 고위 지휘관이 아니라 한반도 전역에서 소규모 부대를 이끌고 온 몸으로 격전을 치룬 미군 소대장들의 육성으로 이뤄졌다. 미 2사단 72전차대대 지휘관으로 참전했던 저자 본인의 경험과 감정은 배제됐다. 이 책이 주는 권위와 감동은 사료의 방대함과 치밀한 검증작업, 그리고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객관적 시각에서 비롯됐다.

이 책은 미국판 징비록이다. 미국에 대한 비판은 매우 혹독하다. 저자에 의하면, 미국인들은 전통적으로 싸울 준비 태세를 갖춰왔지만, 한편으로는 고된 전투 준비를 꺼리는 모순적 태도를 보여왔다. 2차대전 이후에는 자신들이 어떤 세계에 사는지, 어떤 의지의 시험과 맞닥뜨릴 지, 그 시험에서 이기려면 어떤 기강이 필요한 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실제로 6·25전쟁은 ‘힘’을 시험한 전쟁이 아니라 ‘의지’를 시험한 전쟁이었다. 소련을 완전 파괴할 힘이 있느냐가 아니라 미국 지도자들이 광적인 폭력에 무릎 꿇지 않고 질서정연한 세계를 만들기 위해 싸울 의지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 지도자들은 싸울 의지가 없었다.

그들은 북한의 남침 가능성에 대한 정보를 무시했고, 중공군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오판했다. 처음부터 6·25전쟁(war)을 한국분쟁(conflict)으로 축소해 부르면서 곧 끝날 것으로 여겼다. 핵무기를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될까 두려워 소련과의 전면전을 피했다. 그럼에도, 자신들이 바라는 세계 질서를 지키고자 잘 알려지지도 않은 한국의 전쟁에 뛰어들어 병사들을 희생시켰다. 미국은 그제서야 자신들이 무슨 노력을 하든 완전히 승리할 수 없는 세상이 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자는 책에서 ▲공산주의의 위협을 무시하면 극단적인 위험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모든 종류의 전쟁에 대비하지 않는 국가는 국가정책에서 전쟁을 포기해야 한다. ▲피비린내 나는 지상(地上)작전에 대비하지 않은 채 군인과 시민을 지상 작전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것은 범죄에 가까운 어리석은 짓이다. ▲싸울 준비가 되지 않은 국민은 항복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6·25전쟁의 교훈은 바로 ‘이런 전쟁(this kind of war)’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책은 뜻밖에도 소설처럼 읽힌다. 첫 장만 읽어도 생생한 전장(戰場) 속으로 타임 슬립하여 빠져 나오기가 힘들다. 총 823쪽 두께가 부족하다 싶을 정도다. 1963년 출간되었지만 오늘날에도 미국의 외교·안보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6·25전쟁을 다룬 '최고의 책'(존 매케인 전 상원의원)으로 꼽힌다. 미 육군사관학교와 미 육군 지휘참모대학의 필독서로 지정돼 있다.

어설픈 상업영화로 제 나라 역사를 배우는 참으로 가벼운 시대, 지금도 한반도 운명을 뒤흔들고 있는 6·25 전쟁 만큼은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일독을 권한다.

주태산 주필  |  joots@econovill.com  |  승인 2019.06.22  10:3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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