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반이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반이다.

하지만 권력이 높아갈수록 나를 싫어하는 사람의 수가 늘어간다. 권력의 허기 사이에 악착같이 버티고 서서 권력을 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권력에 대한 탐욕이 크면 클수록 적을 제거하고 싶은 욕망이 크다. 하지만 권력을 잡는 기회라는 것이 쉽게 오지 않는다.

이미 권력을 쥔 사람들, 그들도 똑같은 과정을 밟아왔기 때문에 위험에 노출되지 않게 안전한 방어 태세를 갖추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법이다. 아무리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다 해도 치명적인 실수는 있다.

단지 적에게 노출되었느냐 아니면 숨겨져 있느냐다. 그렇기에 권력을 탐하는 자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언제 어느 때나 적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다.

실수의 기회를 노리고 있던 사람에게 약점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먹잇감이다. 권력을 탐하는 자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법이다. 적을 제거하는 방법도 시대에 따라 변했다.

과거에는 힘으로, 지금은 머리로 싸워야 하는 시대인 것이다. 즉 과거에는 암살자를 고용했다면 지금은 도덕적 결함만 찾으면 된다. 신념과 행동 사이의 불일치를 폭로함으로써 상대를 공격하는 방식이다.

도덕적인 측면을 내세워야만 대중과 정치적 지지를 얻을 수 있고 또한 권력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의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대중에게 가장 영향력이 큰 언론매체를 활용해 적극적인 공세를 펼쳐야 한다.

성공적인 암살
프리드리히 퓌거의 <카이사르의 암살>

<카이사르의 암살>

연도 미상, 캔버스에 유채, 빈 미술시 박물관 소장

역사적으로 권력자의 적은 대중이 아니라 측근에 있다. 대중들은 권력자의 근황을 모르기 때문에 절대로 그를 해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권력자 측근에게 암살을 당하게 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권력을 쥐었지만 자기기만에 빠져 암살 위험으로부터 방어하지 못한 인물이 카이사르다.

카이사르는 전 세계에서 최고 권력자의 대명사로 불릴 만큼 천재성을 겸비한 최고의 통치자로서, 비록 황제의 자리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로마에 기여한 공헌은 로마의 다른 황제들보다 크다.

카이사르는 공화정 제도를 개혁해 강력한 중앙집권체제의 제국을 이끌었다.

그가 세금과 종교의 자유 그리고 하층민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함으로서 로마 시민들은 편안하고 자유로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지만, 로마 공화정을 옹호하는 사람들과 원로회의 귀족들은 자신들의 설 자리가 잃어가자 불만이 고조되었다.

기원전 44년 3월15일, 카이사르는 꿈에서 불길한 징조를 보았다는 아내 칼푸르니아의 말을 무시하고 원로원으로 갔다. 카이사르는 자신을 노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았지만 로마 왕정복권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원로원 의원들에게 독재 정권으로 이어지고 있는 카이사르의 권력을 무너뜨리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를 암살하는 것이었다.

원로원 황금보좌에 앉은 카이사르에게 자객이 다가가 그의 옷을 잡았다.

그것을 신호로 모든 음모자들은 카이사르 보좌를 둘러싸고 단검으로 그를 찔렀다.

카이사르는 23군데 칼로 찔렸는데 브루투스가 찌른 곳을 포함한 3군데 치명적인 상처 때문에 죽었다.

그 순간 카이사르는 양아들 브루투스를 발견하고 “브루투스, 너마저 저들과 함께 나를?”이라고 마지막으로 말했다. 브루투스는 마지막 공화주의자 카토의 조카이자 카이사르의 사생아였다. 원로회의 귀족들은 카이사르의 암살은 성공했지만 후에 정권을 잡는 것에는 실패했다.

퓌거의 <카이사르의 암살>은 카이사르가 암살당하는 극적인 순간을 묘사했다.
붉은색 옷을 입은 카이사르는 단검을 든 암살자들에게 둘러싸여 쓰러져 있다.

카이사르가 손으로 가리키는 인물이 암상 주동자이자 그의 양아들 브루투스다. 브루투스의 한 손은 카이사르를 가리키고 있고 다른 손은 그를 죽이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카이사르의 목을 겨냥하고 있는 암살자의 흰색 옷과 카이사르의 붉은색은 극적인 대비를 이루면서 화면의 긴장감을 더해주고 있다. 또한 붉은색은 암살을 암시한다.

프리드리히 퓌거(1751~1818)는 이 작품을 제작하면서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게 재현했다. 카이사르는 3월14일 붉은색을 입고 원로회에 나갔으며 그는 자신의 적이었던 폼페이우스 조각상 앞에서 쓰러져 죽음을 맞이했다.

이 작품에서 인물 뒤에 보이는 조각상이 폼페이의 조각상이며 빛의 대비로 극적인 순간을 연출하고 있다.

실패한 암살자
르네 마그리트의 <곤경에 처한 암살자>

<곤경에 처한 암살자>

1926년, 캔버스에 유채, 뉴욕 현대 미술관 소장

세상의 모든 일은 실패를 염두에 두어야만 하지만 성공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자신에게 불운이 닥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사건은 예측하지 못한 사소한 곳에서 터지기 마련이다. 사소한 것도 넣어 치밀하게 계획해도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일을 하는데 한순간도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마음을 놓는 순간 그동안 계획했던 모든 일은 실패로 돌아가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온다.

일은 성공했으나 살해 위협을 받고 있는 멍청한 암살자를 그린 작품이 마르리트의 <곤경에 처한 암살자>다.

벌거벗은 여자가 침대 위에서 피를 흘리며 누워 있고 남자는 축음기 앞에서 음악을 듣고 있다.

축음기 앞의 의자에 놓여 있는 외투와 중절모는 남자가 떠나기 직전임을 암시한다. 암살에 성공한 남자는 성공의 여유로움으로 노래는 듣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몽둥이와 그물을 들고 있는 남자 두 명이 문 앞을 지키고 있고 방 뒤 발코니 뒤로 남자 세 쌍둥이가 살해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암살자는 자신의 성공에 취해 있지만 무표정하고 부동의 인물들은 암살자를 위협한다. 암살자는 살해에는 성공했지만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살해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르네 마그리트(1898~1967)의 이 작품은 추리소설과 영화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했지만 그것과 차별되고 있는 것은 정상적인 인물들이다.

살해 현장과는 전혀 상관없는, 중절모에 넥타이를 맨 정상적인 부르주아 신사들로서 통속적인 추리소설과의 다른 차원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