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객이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무인 옷가게 제이엠진에서 무인기기를 이용하는 모습. 사진= 이코노믹리뷰 임형택 기자

[이코노믹리뷰=최동훈 기자] 오프라인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 유통가 업체들이 무인화 서비스를 속속 도입하고 규모를 확장하고 있지만 전체 사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다. 해외 일부 선진국들은 무인화 역사에 있어서는 한국과 시기적 편차를 보이지 않지만 서비스 수준은 사뭇 큰 격차를 보인다.

국내 무인 편의점엔 직원 손길 여전…대형마트 무인계산대에서도 도움 받아

편의점 업계에서 가장 전형적인 무인화 서비스가 공급되고 있는 반면 전체 점포 수 대비 무인화 비중은 미미하다. 이마트24의 전체 점포 4011곳 가운데 무인 및 스마트 점포 비중은 1.3%에 불과하다. GS25(0.05%), CU(0.09%), 세븐일레븐(0.1%) 등 주요 3사의 비중도 극미한 수준이다.

이 가운데 상품을 매장에 공급하고 진열하는 등 기업과 매장 간 유통 과정을 비롯한 점포 외적 요소 외 모든 부분에서 인력이 배제된 점포는 더 적다. 이마트24가 ‘무인편의점’이라고 부르는 점포 52곳 가운데 온전한 의미의 무인점포인 ‘셀프(self) 매장’과 ‘세이브(save) 매장’은 절반 정도인 23곳으로 집계됐다.

셀프 매장에서는 고객이 매장 내 셀프계산대에서 직접 상품 바코드를 찍고 가격을 지불한다. 세이브 매장에서 다루는 상품들은 모두 자판기로 판매된다. 환불이나 상품 교환을 원하는 경우에는 매장 안에서 이마트 24 고객센터나 점포 관리자의 연락처를 확인한 다음 전화를 걸어 문의해야 한다. 이외 주간에는 종업원이 판매와 매장 관리를 담당하고 야간에만 무인 운영되는 하이브리드 셀프·세이브 매장 등 2종의 점포 수는 총 29곳에 달한다.

GS25와 CU, 세븐일레븐 등 세 개 브랜드의 무인 점포에도 안면인식이나 음성인식, 가상현실(VR) 등 첨단 기술이 도입돼 사람 손길을 대체하고 있다. 하지만 매장마다 최소 한 명 이상의 직원이 상주하거나 일정 시간 동안 투입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형마트 업체들이 점포에 가장 흔히 도입한 무인계산대에도 직원이 2명 정도 배치돼 방문객을 지원한다. 이 직원들은 기기에 익숙하지 않아 헤매는 고객을 돕거나 기계가 오작동 하는 등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업무를 맡는다. 이마트가 올해 4월 서울 가양점, 남양주점 등 전국 5곳에 국내 대형마트 최초로 시범 도입한 사전 주차정산 서비스에도 직원 도움이 따른다. 매장 내 비치된 키오스크와 실내 주차장 출구에 직원이 1명씩 일부 시간대에 배치돼 방문객을 안내한다.

▲ 업태별 키오스크 도입 사업장 비율. 출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무인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키오스크는 패스트푸드점 매장에 비교적 널리 도입됐지만 외식업계 전반으로 확산되진 않은 형편이다. 대기업 프랜차이즈를 제외한 가맹업체 등 중소기업 시장에서는 이 같은 현상이 더욱 심화한다.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외식업 경영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조사 대상 중소 외식업체 3000곳 가운데 주문용 키오스크를 도입한 사업장은 27곳(0.9%)에 불과했다.

주로 키오스크를 운영하는 패스트푸드점(154곳)이나 카페 등 비알콜 음료점업(226곳) 등 업태의 사업장은 이번 조사대상 가운데 소수다. 다만 고객들이 불특정 점포를 이용한다고 가정할 경우 이번 조사 결과는 소비자가 무인화 추세를 실감하기 어렵다는 점을 방증한다.

업계에서는 국내 무인점포가 확산되기 어려운 이유로 무인 매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에 대한 소비자와 사업자 모두의 우려가 존재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한다. BC카드 디지털연구소는 상품 환불 시 고객 불편, 도난 및 기물 파손 우려, 업무 특성 상 인력 배제 불가 등을 무인화 지연 요인으로 지목했다. 무인 점포에 사람 손길이 필요할 수 있다는 역설적 가정은 매장이 가진 매력을 떨어트릴 수 있는 요소라는 관측이다.

BC카드 디지털연구소 관계자는 “무인 점포 사업은 인건비 상승, 첨단 기술 발전 등 여건에 의해 우리나라에서 대두돼왔지만 리스크도 내포하고 있다”며 “업체들은 나름의 전략으로 매장에 잠재된 위험성을 최소화시키며 무인화 트렌드에 발 맞추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국가별 무인화 현황. 출처= 업계, 후생노동성, 경제산업성, 비씨카드 디지털연구소, 아이미디어리서치

미국 월마트, 셀프 계산대 이어 로봇 투입…일본선 정부가 편의점 무인화에 투자

미국 일본 등 일부 선진국에서 무인 점포에 대한 논의와 상용화가 시작된 시점은 우리나라와 불과 1~2년 정도 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이에 비해 무인화 서비스의 양적 규모나 기술 수준은 한발 앞선다. 현지 업체들이 우리나라보다 큰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사업을 영위해오며 거대한 자본력을 갖추고 있는 점은 경영진의 사업 추진력을 높이는 요소다. 인구 구조 이슈로 무인화 서비스 도입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잘 형성되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서 무인 점포 확산을 견인하는 주체는 IT 대기업 아마존과 마트업계 공룡기업 월마트 등 2곳이다.

아마존은 아직은 유통업계에서 막대한 입지를 갖고 있는 오프라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세계 최초 무인 매장 ‘아마존 고’를 설립했다. 2016년 12월 미국 시애틀 소재 아마존 본사 건물 1층에서 직원 대상으로 가오픈한 뒤 지난해 1월 대중에 개방했다.

아마존 고의 연면적은 1호점 기준 212㎡로 국내 편의점(83㎡)의 2.5배 수준이다. 고객은 매장에 들어가기 전 스마트폰 앱을 구동한 후 상품을 진열대에서 꺼내 담고 매장을 나서기만 하면 된다. 계산원을 대면하거나 카드를 꺼내 결제하는 등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다.

아마존은 올해 2월 기준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등 현지에 아마존 고 9곳을 운영하고 있는 상태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아마존은 올 연말까지 50개 설립 후 2021년까지 3000곳을 설립할 예정이다.

월마트는 앞서 2017년부터 대형매장 일부 지점에 스마트폰 바코드 결제 시스템을 도입하고 매장 관리용 인공지능(AI) 로봇 ‘보사노바’를 배치하는 등 첨단 기술을 선보여왔다.

지난해 11월에는 미국 댈러스에 무인매장 ‘샘스클럽 나우(Sam’s Club Now)’를 열었다. 샘스클럽 나우는 아마존 고와 비슷한 원리로 운영된다. 샘스클럽 나우의 모태격 매장인 샘스클럽은 창고형 회원제 할인매장으로 국내에 잘 알려진 매장 코스트코와 동종으로 분류된다. 현지에 매장 600여개 매장이 운영돼오다 지난해 10% 가량인 63개가 폐점했다. 온라인 쇼핑 추세가 더욱 심화하고 업계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수익성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엣지 바이 애센셜이 발표한 ‘2018 온라인 소매사업자 톱10’ 자료에 따르면 월마트의 지난해 전자상거래 매출액은 28억달러로 2위에 올랐지만 1위인 아마존(82억달러)와 큰 격차를 보였다. 월마트는 경쟁력 강화의 일환으로 샘스 클럽을 기업 유통 혁신의 전진 기지로 삼았다.

일본은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뒤 경제활동 인구가 감소하고 경제가 위축되는 문제를 겪고 있다. 이 같은 사회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무인화 서비스를 적극 개발하는 상황이다.

일본의 인력 부족 수준은 악화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등에 해당하는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현지 구직자 대비 일자리 비율을 의미하는 ‘유효구인배율’은 지난해 기준 1.61배로 집계됐다. 구직자 1명 당 1.6개 수준의 일자리가 주어진다는 의미다.

출산율이 낮은 가운데 일본 베이비부머 인구인 1947~1949년생 단카이(團塊) 세대가 경제활동을 내려놓음에 따라 노동력 공백이 생긴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재취업 활성화, 근로환경 개선 등 고용정책을 새롭게 펼치는 동시에 편의점업계에 무인화 서비스를 도입하는데 공들이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17년 ‘편의점 전자태그 1000억장 선언’을 공표했다. 세븐일레븐, 패밀리마트, 미니스톱 등 현지 주요 업체 5개사와 함께 오는 2025년까지 모든 취급 상품에 1000억개의 전자태그를 부착할 계획이다. 일본 전역 5만개 점포에 전격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일본 정부는 이 전략을 위해 라벨링 소재 생산업체 ‘에이버리 데니슨(Avery Dennison)’과 손잡았다. 에이버리 데니슨의 RFID 기술이 적용된 라벨이 상품에 부착되면 고객 편의가 높아질 수 있다. 방문객이 특수 장바구니에 RFID가 부착된 제품을 담은 후 로봇계산 시스템에 올려두면 계산이 자동으로 이뤄진다. 직원 관여도가 그만큼 줄어드는 셈이다.

일본 편의점 업체들은 앞서 2002년부터 셀프 계산대를 활발히 도입해왔다. 올해도 셀프 계산대를 비롯해 고객이 직접 구매 절차를 실시할 수 있는 기계를 매장에 구축할 방침이다. 미니스톱은 오는 10월까지 현지 점포 1만 4000여개 모든 곳에 셀프계산대를 도입할 계획이다. 세븐일레븐도 지난해 7월부터 고객이 스스로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해 향후 모든 매장에 적용할 예정이다.

중국에는 앞서 모바일 결제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온라인 뿐 아니라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직원 개입 없는 거래 양상이 확산될 토대가 마련됐다. 유통업계에서 무인 서비스를 주도하는 기업은 IT 대기업 알리바바다. 알리바바는 온·오프라인 소매 및 물류 등의 융합을 의미하는 ‘신유통’을 추진하면 무인화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2017년 7월 얼굴인식, 자체 결제 앱 알리페이 등 기술을 활용한 무인점포 ‘타오 카페’의 콘셉트 매장을 선보였다. 매장 내 카메라가 소비자 행동을 인식하고 기계가 상품을 스캔함으로써 자동 결제가 이뤄지는 기술이 도입됐다.

같은 시기 회원제 신선제품 매장 ‘허마셴셩’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고객이 매장에서 상품을 고른 뒤 모바일 기기에 미리 설치한 허마 앱으로 포장지 QR코드를 인식하면 알리페이로 결제가 진행된다. O2O 플랫폼으로써 ‘매장 3㎞ 반경 지역에 30분 이내’ 원칙을 두고 배달 서비스도 제공한다. 허마셴셩 점포 수는 작년 말 기준 120곳으로 이 가운데 100곳은 지난해에 설립될 정도로 급성장해왔다.

알리바바를 비롯해 스타트업 등 다양한 사업자들이 모바일 금융 시장 인프라를 바탕으로 무인 점포 사업에 적극 참여하며 시장이 활성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중국 시장조사기관 아이미디어 리서치에 따르면 중국 무인 편의점 시장 규모는 2017년 389억위안(6조 6542억원)에서 2022년 1조 8000억위안(307조 9080억원)으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무인화를 전면 도입할 수 있는 기술력이 충분히 마련됐지만 무인 서비스라고 부르기에는 규모나 상용화 수준이 애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일각에서는 서비스 발전 속도에 비해 소비자의 적응도가 충분히 뒷받침 되지 않기 때문에 보편화가 다소 지연되는 것으로 분석한다.

김시월 건국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선진적인 기술력을 갖고 있음에도 무인화 서비스의 이용 계층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보편화가 다소 늦다”며 “서비스 활용도가 높아지기까지 업체들도 서서히 도입 수준을 높여야 하는 만큼 무인화엔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말했다.

무인화 이전 유통 시장 구조가 고착화한데다 신기술에 대한 규제가 존재하는 업계 환경으로 인해 혁신이 쉽게 일어나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무인화 서비스의 핵심 구성요소인 모바일 및 금융 분야에 대한 규제 완화가 서비스 보편화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주장이다.

정주용 칼럼니스트 겸 비전크리에이터 대표이사는 “중국의 경우 편의점 열풍이 무인화 추세와 함께 대두됨에 따라 업계에 서비스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며 “무인화의 근간에 모바일 서비스가 위치하고 있는 만큼 국내에서 금융과 모바일 두 분야의 혁신이 함께 이뤄지는 것도 트렌드 확산에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