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웬지 가을밤에 어울릴 듯한 가곡의 밤 음악회에 갔었습니다.
8층에 위치한 음악홀 야외에서 바람을 맞는데, 실제로 비가 그친 뒤끝이라 그런지
여름을 건너뛰고 가을이 온 듯 했습니다.
시에다 곡을 붙인 가곡들의 제목들도 사랑하게 하소서, 솔바람 소리, 옛 친구, 동행,
가을의 기도, 눈 오는 밤에 등으로 자못 그런 기분을 갖게 했습니다.
무엇보다 임승환의 시에 곡을 붙인 ‘동행’이란 곡에서 동행이 여러 의미로 변주되는
것을 들으니 제법 감상적인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내 안의 원을 좀 크게 그리면, 당신은 어디에 있는지요..
당신과 나를 하루치의 꽃향내에 풀어놓아 주세요 .. 힘겹게 같은 곳을 바라보는 눈길은..‘
칠십여 년에 가까운 부모님의 동행, 삼십여 년이 넘어가는 나와 집사람의 동행도..
80대 중반의 부모님이 생존해 계십니다.
육이오 끝날 무렵, 내겐 조부님들의 일방적 주선으로 학생 처지의 남편에게 엉겁결에
시집 와서 두 분이 살아 오신지가 칠십여 년 가까이 이르고 있습니다.
공립학교에서 퇴직 후, 특수학교에서 봉사 직으로 책임을 맡고 있다가,
몸이 불편해진 어머님의 병원 나들이 돕겠다고 70대 후반에서야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간 아버지는 일방적으로, 어머니는 순종하며 산 세월이었지요.
작가 김훈이 아버지에게 그간 아버지의 부재를 항의하자
‘광야를 달리는 말이 마구간을 돌아볼 수 있겠느냐’라 했다지요.
그렇게 순전한 뜻으로 두 분이 함께 있게 될 즈음부터 묘하게도 아버지가
귀가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아버님의 일방적, 큰 목소리 시대는
끝나고, 어머님의 큰 목소리가 집안의 풍경이 되었었지요.
그렇게 해야만 소통이 되었을까 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어머님은 불편한 몸으로 남편의 조석은 당신의 책임이라며 꼭 그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그런데 또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이제 어머니도 적당히 귀가 어두워졌습니다.
이제 서로에게 공평해진 듯합니다. 때로 그런 풍경들이 안쓰럽게 보이다가도
이인삼각하며 긴 세월 함께 한 그 세월들이 말 그대로 동행 같아 마음을 펴게 됩니다.
내 동행도 생각되어 집니다.
서로 직장 생활 십여 년 달려왔을 때 서로에게 힘이 되자고, 위로가 되자고
어린 아이들을 맡기고 자유 여행식 유럽 여행을 떠났었습니다.
베르사이유 궁전에 앉아서 햇빛을 받고 있는데, 우리 앳된 대학생 처자가 혼자 오는 겁니다.
사연을 물으니 같이 온 친구와 싸우고 혼자 다니는데 불안하다고 했습니다.
걱정되는 마음에 이제 친구 만나면 반가워서 같이 다닐 수 있지 않을까라고 권했었습니다.
그러며 집사람에게 우리는 싸워도, 돌아서서 바로 후회할 일은 만들지 말고
붙어있자고 했었는데 집사람은 기억이나 하는지..
이제 나도 삽십 여년이 넘게 집사람과의 동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부자는 용감했다가 아니고, 부자는 여러 면에서 닮는 가 봅니다.
엄한 아버지상은 탈하리라 했는데, 일방적인 것은 어쩌지 못하고 미안함을 쌓아 왔지요.
귀가 어두워져 집안 풍경이 바뀌기 전에 자연스런 동행이 되고 싶습니다!